-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미국에서도 대화형 인공지능이라는 ‘챗지피티(ChatGPT)’가 뜨거운 이슈다. 연수하는 대학에서 관련 강의를 듣고 집에 와서 이것저것 질문을 넣어보는데 재미가 쏠쏠했다. 이 인공지능이 창작까지 한다고 하길래 떠오르는 대로 ‘조 바이든에 대한 시를 해리포터 스타일로 써줘’라고 입력해 봤다. 그랬더니만,
“권력의 전당에
의연하고 명석한 지도자
용기를 북돋우고
조 바이든은 현명하게 이끌었다
(… 중략 …)
그리고 그 길을 통해 길고 힘들었다
조 바이든은 변함없이 경계하며 서 있었다
그리핀도르의 용기와 허플퍼프의 마음으로
(… 중략 …)”
순식간에 이렇게 오글거리는 그럴싸한 시를 한편 만들어 냈다. 재미가 들려서 ‘나는 언제 어떻게 죽을까’ 같은 질문까지 하려다 이건 뭐 사주팔자나 타로카드 점을 보러 온 것도 아니고 머쓱해져서 멈췄다.
미국은 신기술에 매우 우호적이지만 학계에서는 당장 학생들이 챗지피티를 돌려서 과제나 논문을 쓴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객관적인 정보를 빠르게 알아보는 데 활용하는 건 유용해도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개인의 능력 평가에 대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거다. 실제 챗지피티는 문장은 매끄럽지만 내용은 기본적으로 인터넷상에 떠도는 것들을 짜깁기한 것들이다. 한 교수님은 “Sleeky(교활하다)”고 날을 세웠다.
무엇보다 정보 자체가 틀린 경우가 많다. 실제로 ‘○○ 주제에 대한 논문을 찾아달라’고 하자 저자부터 발행연도까지 완벽한 형식으로 여러 논문이 뜨는데, 이 중엔 핵심 단어들을 연결한 가상의 제목이라든지 논문을 쓰지도 않은 관련 교수들을 붙여서 보여주는 것들도 꽤 많았다. 머신러닝을 통해 컴퓨터가 이거다 싶은 것들을 이것저것 모아 붙여서 문법과 형식에 맞게 보여주는 거라 무조건 믿을 수만은 없는 거다.
더 큰 문제는 이 챗지피티가 사용하는 데이터가 사람이 직접 입력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이전 버전인 ‘GPT3’ 모델이 웹상에 있는 정보들을 가지고 머신러닝을 했다면, 이번 챗지피티는 사람들이 입력한 피드백을 추가로 반영해 훈련시킨 시스템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제 정말 중요한 건 누가 오픈에이아이(Open AI, 챗지피티를 개발한 회사)와 투자기업의 보드멤버(이사회)에 들어가 있느냐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내가 조 바이든에 대해 써보라고 한 시도 그를 찬양하는, 정치적으로는 미국 민주당 성향이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 간 영토분쟁 문제나, 경제적으로 파장이 큰 판결, 이해관계가 나뉘는 의사결정에 있어 챗지피티를 함부로 사용할 경우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 한국을 식민지배한 일본이 한국의 근현대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이런저런 근거를 대며 아주 중립적이고 학구적인 문장체로 설명한다면,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억하고 널리 퍼뜨릴 수 있으니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환영할 일이다. 인터넷이나 GPS, 스마트폰 등이 우리 삶을 얼마나 편하게 만들었나. 인간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또 얼마나 우리 일상이 편리해지고 다채로워질지 기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는 ‘사람’의 덕을 참 많이 보는 것 같다. 시스템과 각종 용어가 낯선 외국에서 지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별의별 (주로 안 좋은)일이 벌어질 때가 많다.
처음엔 렌트비가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건지, 도대체 convenience fee라는 게 뭔지, 중고차를 살 때 자동차 가격은 뭐고 Out the door 가격은 뭔지, Current Due는 뭐고 Regular Due는 뭔지, 보험에서 Confirmation page와 Declaration page는 뭐가 다른지…단어 하나하나는 아는데 붙여놓으면 모르겠는 게 너무 많았다. 뭘 잘 모르면 결국 실수로 돈을 더 내거나, 반대로 안 내거나 늦게 내서 벌금을 물거나 아무튼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고 애간장이 탄다.
몰라서가 아니더라도 일례로 사정이 생겨서 비행기 항공권 일정이나 옵션을 바꾸려 할 때 해외 항공사를 상대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하다못해 내가 온라인으로 산 물건이 배달됐다고 하는데 도착한 게 없을 때, 아무리 기다려도 호텔에서 보증금으로 결제한 카드 금액이 취소되지 않을 때, 실수로 결제한 멤버십 가입비를 취소하고 싶을 때, 딴 지 석 달이 지난 운전면허가 우편으로 오지 않을 때 등등…과장 좀 보태면 일 없이 맘 편히 지나가는 날이 드물게 느껴질 정도다.
이럴 때 큰 도움을 받았던 게 다름 아닌 채팅이다. 미국에 와서 놀란 게 의외로 인터넷 고객 서비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공공부문의 행정절차는 물론이고 한국에 비해 사람들 일하는 속도가 워낙 느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IT 서비스’가 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좀 큰 기업의 경우엔 상당히 신속했다.
여기서 말하는 인터넷 서비스는 쉽게 말해 채팅이다. 아무래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 전화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데, 문자로 하는 채팅창은 외국인 입장에선 훨씬 맘이 편하고 접근하기도 좋다.
물론 고객 서비스 채팅도 처음엔 ‘챗봇’처럼 시작한다. 소위 사이버 상담원 같은 초기단계 AI가 상용구 같은 인사와 함께 뭘 도와주면 되겠느냐, 어떤 분야에 대해 질문을 할 거냐 클릭 클릭하며 고르라고 하거나 너의 회원번호와 주문번호 등을 쳐라 등등 개인 정보를 통해 예약이나 주문내역을 검색한다.
하지만 내가 해결하고 싶은 상당수의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해결이 안 된다. 고르려 해도 내 문제가 주어진 보기사항에 없어서 한참 클릭하다 보면 다시 처음 고르기 단계로 돌아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아니요, 해결이 안 됐다’ ‘뭔가 다른 걸 원한다’ 등의 옵션을 고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채팅창에 어김없이 ‘우리 전문 상담원과 대화하길 원하시나요?’ 또는 ‘흠, 뭔가 사람의 손길(Human Touch)이 필요한 것 같군요’ 등의 문장이 뜨는데 그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냅다 ‘네. 상담원과 대화를 원해요’를 선택하면 잠시 후 재키·사이먼·데이비드·수잔 같은 이름을 소개하는 ‘진짜 사람’이 등장한다. 그리고선 주저리주저리 내가 뭐가 문제고, 왜 이렇게 됐는지 그 사람과 말 그대로 채팅을 하는 거다. 나는 이렇게 해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었다. 역시 휴먼이 최고다!!
챗봇은 그 분야에 빠삭한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머리를 맞대고 만들었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막상 내 일이 되고 보면 여전히 챗봇으로 해결이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 내 사정을 설명해야 하는데, 나는 지금 이런 조건에서 이런 걸 원한다는 걸 말하고 싶은데, 어려운 거 알겠는데 어떻게 좀 방법이 없겠냐고 도움을 받고 싶은데…그게 도저히 AI나 기계로는 안 되는 거다.
언어가 같고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는 한국에서도 사람들은 문제가 생겨서 급히 해결해야 할 때 수많은 옵션 중에 ‘상담원과 통화’를 원한다. 더 급하고 답답하면 아예 지점이나 대리점을 찾아가서 직접 직원을 보고 말한다. 꼭 인터넷이나 모바일 기기에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휴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도 발전하고 있는 AI 때문에 앞으로 많은 직업이 사라질 거라고 한다. 아마 그럴거다. 그런데 한편으론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밖에는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풀지 못하는 그런 문제들이 아주아주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더구나 현대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며 불확실성이 점점 커진다고 하지 않나. 불확실성 아래에선 수많은 변수가 생기고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터지기 마련이다. 여기에 머리와 가슴에 저마다 모두 다른 우주를 가지고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그래서 무슨 결정과 행동을 할지 누가 알겠는가.
컴퓨터와 AI의 발전은 실로 경이롭다. 하지만 나는 요즘 그게 아무리 단순한 친절이나 응대, 작업이라고 해도 사람이 가진 능력이 참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