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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13. 2023

Live with 와인(1) - 미국에선 1/3 가격!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미국에 오기 전 단단히 오해한 것이 바로 먹거리는 쌀 거라는 생각이었다. 웬걸. 미국의 식품 물가는 결코, 절대 싸지 않다. 한 5년 전쯤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코로나 이후 최근 1~2년 사이엔 말이다. 심지어 내가 연수온 곳은 미국 동부 중간쯤의 노스캐롤라이나주다. 대체로 물가가 싼 것으로 알려져 있어 예전부터 미국의 은퇴자들이나 예산이 넉넉지 않은 유학생이나 연수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지역이다.

     

하지만 이곳 역시 최근 물가가 치솟고 있다. 다른 것 다 떠나서 가장 기본이고 필수인 음식·식재료 물가만 봐도 확 느껴진다. 물론 품목별로 한국보다 확실히 싼 것들도 있다. 대형 식품마트를 기준으로 고기(육류), 과일 중에서도 바나나와 파인애플, 냉동피자, 애플파이 같이 디저트로 먹는 달달한 빵류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살치살 같이 맛있는 부위나 지방이 좀 적은 안심·등심, 멀티 곡물로 만든 식사빵, 유기농이나 조금 알이 크고 상처없는 과일들은 여지없이 가격이 올라간다. 일례로 일반적인 긴 봉지에 든 식빵의 절반 사이즈가 6달러, 보통보다 살짝 작은 사이즈의 사과 6~7알 정도 든 것이 10달러, 방울토마토보다 약간 사이즈가 큰 토마토 10알 정도가 4달러 등이다. (고급 식료품점이 아니라 그냥 대중적인 마트 가격이다)      

가장 저렴한 서민 식재료인 계란값도 많이 올랐다.

치즈는 더하다. 슬라이드나 막대형태 등 가공치즈야 PB제품 등 싼 것도 있지만 자연치즈는 작은 여자 손바닥만한 게 10달러에 가까운 게 대부분이다. 브리·카망베르·고다·페타 등 종류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역시 자연치즈냐 가공치즈냐에 따라 가격이 확 달라진다. 지방이 적고 칼로리가 낮은 염소치즈나, 두부처럼 물컹물컹한 생 모차렐라 치즈는 과장 없이 애기 주먹만 한 게 5~6달러 한다.      

미국인들조차 좀 과격한 사람은 “이대로라면 폭동이 날 지도 모른다”고 말할 만큼 최근 생필품 물가 상승률은 가파르다. (그러니 점심에 15~20% 팁이 붙는 식당 외식은 내 처지엔 엄두도 못 낸다. 쳇)  


실컷 물가 비싸다는 불평을 했지만…진짜 하려는 얘긴 ‘와인만큼은 싸서 좋다’는 얘기다. ^^ 와인을 애정하는 와인 러버에게 미국은 아직까지 좋은 나라다. 어떤 음식(물건)을 많이 생산하는 곳에 가까울수록 가격이 저렴한 건 당연하다. 미국은 땅덩이가 넓은 만큼 포도가 자라기 적합한 지역도 많고 저 유명한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를 비롯해 주마다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 많다. 노스캐롤라이나만 해도 빌트모어라는 유명한 와인 생산지가 있다. 당연히 가격도 싸고 소비자 입장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도 많다.

  

한국의 이마트처럼 대부분의 큰 식품마트엔 와인 코너가 아주 대대적으로 마련돼 있다. ‘이달의 와인’ 같은 행사도 자주 한다.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딱 10~15달러 안팎이면 꽤 좋은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제발 환율은 생각하지 말자. 흑흑) 미국에선 10달러짜리 와인이 결코 싸구리 와인이 아니다. 4~9달러 와인도 잘 고르면 충분히 기분좋게 마실만한 것들이 많다. 나같이 거의 매일 한두 잔을, 말 그대로 ‘데일리’로 즐기는 사람이라면 사실 4~5달러 와인도 결코 만만한 가격은 아닐거다. 실제 미국 사람들은 최근 와인(따위의) 가격이 너무 올랐다며 불만이 많다.       


술에는 당연히 세금이 붙는다. 노스캐롤라이나의 경우 현재 기준으로 판매세가 전체 미국 50개 중에서도 꽤 높은데 7.5%다. 한국의 주세에 해당하는 와인 품목세(excise tax)는 1갤런(약 3.8리터)당 1달러. 아무튼 각종 세금을 더해도 최종 소비자가격이 한국에서 사먹던 와인에 비하면 꽤 싸다. 예를 들어 ‘대통령 와인’으로 알려진 ‘더 페더럴리스트’ 와인은 한국에서 약 4만~6만원 정도인데 미국 마트에선 15달러 정도다. 오리가 그려진 캘리포니아산 ‘디코이’ 와인도 한국에서 거의 10만원에 육박하는데 여기선 17~19달러 정도다.  

    

미국 워싱턴주에서 생산되는 '샤또 생 미셸' 와인들. 프랑스 이름같지만 대표적인 미국와인이다.

미국에서도 비싼 와인은 비싸겠지만 확실히 서부 캘리포니아주나 그 위 북쪽 끝에 있는 워싱턴주(동부의 워싱턴 DC가 아니다) 등 미국 본토에서 나는 와인들은 ‘이게 웬 횡재냐’ 싶을 정도로 한국과 비교하면 가격이 내려간다. 자꾸 한국과 비교하는 버릇 때문에 나도 모르게 밥거리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덜컥 덜컥 와인을 사 과소비를 하게 된다.      

지난가을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의 포도밭 모습.


무엇보다 미국은 와인을 그 자체로 ‘사치품’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물론 미국에도 기왕 같은 가격이면 프랑스나 이탈리아 와인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그걸 마시려는 사람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맥주 한 잔 마시듯, 소주 한 잔 기울이듯 와인도 그냥 일상에서 마시는 술 중 하나란 인식이 일반적이다.


특히 와인은 맥주에 비해 뭔가를 축하하거나 선물하기 좋고, 위스키나 보드카에 비해 알코올 도수도 낮아 여기저기 쓰임새가 많은 ‘착한 술’ 정도의 느낌이 있다. 게다가 함께 먹는 음식의 맛을 확 살려주는 효과가 있어서 ‘밥 자리’를 위해서라도 집에 몇 병씩은 구비해 두는 사람들이 많다.


한 예로 식구가 많거나 모임 등으로 대량의 와인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정수기(!)처럼 와인을 빼 마실 수 있는 박스형태의 와인이 인기다. 이 박스와인은 일반(750㎖) 와인 4병에 해당하는 와인이 들었는데 한 달 정도 처음 그대로의 맛을 즐길 수 있고 가격도 17~20달러 정도로 아주 저렴하다.     

이 밖에 미국엔 레드나 화이트, 스파클링(샴페인) 등 와인 종류에 따라 최대한 맛과 온도, 기포 등을 유지시켜 주는 마개와 텀블러, 실내·실외용 잔 등이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어 확실히 와인 문화가 일반화한 느낌이다. 와인은 부자들이 즐기는 사치스러운 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인이라면 누구나 언제라도 즐기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식문화인 한 셈이다.       


그래서 대형마트나 주류전문점에 가도 품질대비 가격이 싼 와인이 있던 선반이 가장 먼저 텅 빈다. 직원에게 저렴한 와인을 찾는다고 문의해도 ‘형편도 안 되면서 왜 와인을 찾는담?’ 이런 식으로 눈치주기는 커녕 오히려 그게 너무 당연한 분위기라 마음이 편하다.     

대형마트의 와인코너. 지역별·종류별로 분류돼 있다.

참고로 와인을 전량 수입하다시피 하는 한국의 경우, 와인 원가와 운임(주로 선박), 환율로 영향받는 부분을 제외하고도 세금이 어마어마하다. 자유무역협정(FTA)이 맺어진 미국·유럽 와인이라 관세가 없는데도 국내에서 주세·교육세·부가가치세만 해도 수입원가의 약 70%가 된다. 여기에 유통 전에는 세관통과비·창고비·내륙운송비, 유통단계에서는 수입상·도매상·소매상의 마진까지…. 1만원 짜리 와인이 4만~10만원이 훌쩍 넘어버리는 거다. 뭐든 편하게 소비하려면 결국 가격이 중요한데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래도 최근엔 국내 대형 유통사들이 현지 대량구매, 직접 수입 등의 방법으로 와인을 들여와 소비자 가격도 많이 떨어지는 추세긴 하다. 부디 한국에서도 와인을 좋아하고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 가격이 합리적이면서도 맛도 좋은 와인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론 와인에 붙는 각종 세금도 좀 간소화하면 좋으련만…이건 갈수록 나라 재정이 어려워지는 추세라 빠르게 기대할 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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