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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n 11. 2023

미세먼지에 난리난 미국 “한국은 일상다반사거든요?!”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미국에 연수 온 뒤 완전히 잊어버린 단어가 있다면 바로 ‘미세먼지’다. 미국 가정은 ‘환기’란 개념이 별로 없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누군가 “365일 공기가 늘 좋고 야외 활동이 많아 굳이 실내에 머물며 환기를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맞는 말인지 아닌지를 떠나, 거의 모든 미국 내에서 공기는 일상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양호하단 건 사실이다. ‘미국이 축복받은 단 하나의 이유’를 대라면 주저없이 ‘공기’라고 대답하겠다.


물론 캘리포니아주 등 서부에선 건조한 기후로 ‘와일드파이어(wild fire)’라는 산불이 종종 일어나고, 큰 항구가 있는 지역은 컨테이너 선박에서 나오는 매연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산불은 계절별로 드물게 나는 일이고 보통 며칠 뒤 사라진다. 항구 매연 역시 최근 규제가 엄격해졌고 그 영향을 받는 지역이나 시간도 제한적이다. 환경과 관련한 정부 기관이나 학자들이 아니고서야 대중들이 일상생활에서 ‘오늘 미세먼지가 어떤지 확인해보자’고 할 경우는 없다는 소리다.      


늘 깨끗한 대기상태인 노스캐롤라이나 하늘.

내가 있는 노스캐롤라이나는 미국 동부지역으로 더더욱 공기가 좋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하늘을 보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나 맑고 파랗고 깨끗하고 높은 하늘. 그런 하늘이 매일매일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나의 감격과 감동을 죽었다 깨도 이해 못 할 거다. 처음 몇 개월은 습관처럼 여기서도 미세먼지를 확인했었다. 그러다 그 뒤엔 자연스럽게 그만뒀다. 볼 필요가 없이 늘 ‘미세먼지 매우좋음’ 이니까. 아마 여기 주민들은 ‘미세먼지’란 단어조차 모를거다.     


지난 6월7일. 나는 미국 남부 플로리다주의 탬파(Tampa)란 곳에 있었다. 한낮 기온이 32도를 찍을 정도로 더워서 산책하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노스캐롤라이나 교민들이 모여있는 온라인 단체방이 카톡 카톡 알림음을 내며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들여다봤더니 캐나다에서 산불이 나서 그 여파가 미국 동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였다.      


산불이 나면서 그 재가 바람을 타고 미국까지 내려와 이미 캐나다와 가까운 뉴욕·워싱턴DC 는 하늘이 온통 누렇게 뒤덮인 사진도 올라와 있었다. 계속 아래로 내려오는 오염물질 탓에 노스캐롤라이나에도 대기오염 경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실제 오랜만에(!) 공기질 앱을 켜서 확인해 보니 과연 공기질 수치가 매우 좋지 않았다. 지역 뉴스들은 전쟁이라도 난 듯 앞다퉈 공기 문제를 다루고 사람들에게 ‘행동 요령’을 알리고 있었다.     

캐나다 산불 영향이 가장 심했던 6월7일 미국 뉴욕 맨해튼 모습.

다음날 아침. 나는 노스캐롤라이나로 돌아오기 위해 일찌감치 탬파공항으로 갔다. 탑승게이트에 도착한 나는 좀 놀랐다. 여기저기 마스크 쓴 사람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일찍 코로나19 방역 규제가 풀려서 지난해 가을부터 공항에서조차 마스크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 날은 분위기가 달랐던 거다.     

아니다 다를까. 사람들은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웅성웅성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제는 당연히 산불과 공기였다.

“지금 상황이 어떻대요?”

“공기가 얼마나 안 좋은 거죠?”

“언제 공기가 좋아진대요?”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캐나다 산불 영향으로 뿌연 노스캐롤라이나 도심.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 한 분도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며 “공기 때문에 걱정이다. 너는 그걸 알고 있느냐.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해서 나도 “뉴스보고 알았다. 걱정이다”라고 대꾸를 했다.     


아마도 노스캐롤라이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주제일 거 같은 공기 대화는 비행기 안에서도 이어졌다.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중년 남성은 마스크(보건용은 아니었다)를 끼고 나에게 “주말에 테니스모임을 하는데 취소할지 말지 고민”이라고 했다. 나는 앱으로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공기질 수치를 보여주며 “테니스같이 격렬한 야외운동은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줬다. 그러자 그는 깜짝 놀라며 “그런 걸 어디서 보는 거냐. 나도 가르쳐달라”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의 습관 때문인지 미국에서도 공기 앱을 2~3개 깔아놓고 있었다)     

아저씨와 공기 얘기를 하던 나는 왜 그랬는지 순간 울컥해서 “이런 공기는 내 나라 한국에서는 일상이다”라고 터트리듯 말했다. 그는 눈이 똥그래지며 “한국은 선진국이라고 알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런거냐”고 물었고 나는 ‘그걸 몰라서 묻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오며 알 수 없는 분노 같은 걸 느꼈다.      


나는 한국의 자체적인 문제도 있지만, 중국의 대규모 공장단지에서 바람을 타고 중금속 오염물질이 넘어오는 게 가장 크다, 이런 지 꽤 오래됐고 이건 한국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한국에서는 (니가 쓰고 있는 일반용이 아니라) 집집마다 의료용 전문 마스크(KF)를 쌓아놓고 있다, 미국 사람들은 스스로 복 받은 줄 모를거다, 한국인은 선진국 기준에서 안 좋은 공기를 1년 중 300일 정도 마시며 살고 있다(사실이다)고 뭐에 홀린 듯 쏟아냈다.      


나의 서툴지만 쉬운 단어들을 쓴 영어는 주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낸 듯했다. 미국 승객들은 “너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맞다. 우리는 그동안 누리는 공기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살았다” “환경을 지키지 않으면 미국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등의 말을 건넸다.


이 글을 쓰는 6월10일에도 노스캐롤라이나 공기는 좋지 않다. 느리게 수치가 떨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미세먼지가 평상시의 2~3배 이상 높다. 급기야 미국에선 평소엔 그렇게 친한 관계인 캐나다를 탓하고 욕하는 여론까지 들끓고 있다.     

미국에서 공기오염의 원인이 된 캐나다를 탓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한 뉴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3가지에 씁쓸해하고 있다.     


1. 미국 동부지역에선 대기정보 집계 이래 최악의 공기질이라며 비상이 걸렸지만…사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나타나는 수치 정도는 한국에선 ‘보통’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아예 뉴스에 ‘조심하라’고 나오지도 않는다. 늘 청정한 공기를 마시고 사신 미국인 여러분에겐 안 좋은 공기가 한국에선 그나마 ‘감지덕지’인 공기란 소리다. (속상해서 비아냥거리는 걸 이해해주세요)     


2. 확실히 미국은 선진국인가보다. 한국 기준으로 미세먼지 80~90㎍/m³ 정도의 수치에 줄줄이 스포츠 경기, 야외행사, 학교 야외수업 등이 ‘공식적으로’ 취소됐다. 봄가을 심할 때 미세먼지 300㎍/m³이 다 돼도 마라톤 행사를 강행하며 미세먼지 때문에 약속 미루자는 사람을 정신병자, 유별난 사람 취급하는 한국과 온도 차이가 크다.


3.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나아질 희망이 있다면 견딜 수 있다. 캐나다발 오염물질이 미국에 피해를 입히자 미국 대통령은 당장 이를 언급하고, 캐나다 총리와 통화해 산불 진압 지원에 들어가고, 유럽 국가의 수장들도 이에 합세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세계 각국이 일제히 공기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해결을 위해 결집하는 ‘척’이라도 하는 거다.


나는 솔직히 이 점이 제일 부럽다. 한국은 그런 게 없다. 매일매일 일주일 넘게 공기가 좋지 않아도 이제 정부는 얘기조차 하지 않는다. 뉴스에서도 기상 리포터가 날씨 기사 마지막에 “오늘은 호흡기 건강에 주의해 주세요~” 멘트를 붙이는 정도다. 중국과 몽골에서 내려와 한반도를 뒤덮어 버리는 오염물질 앞에 정부가 손을 놓아버린 모습이다. (중국은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책임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한국에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과 아이들 사이에서도 폐암 환자가 늘고 있다. 미세먼지로 인해 호흡기질환이 잦아지고 운동·휴가·여행 등에 불편을 겪는 등 삶의 질도 크게 떨어진 지 오래다.

언젠가 나아질 수 있을까. 언젠가 적어도 일반 사람들은 ‘공기질’ 같은 전문적인 수치는 신경쓰지 않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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