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Aug 12. 2023

미국에서 한국차가 쫌 보인다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7~8월은 미국 연수자들의 ‘물갈이’ 시즌이다. 가을학기 시작을 앞두고 작년에 왔던 사람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는 연수자들이 속속 도착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정착할 때 집 다음으로 중요한 게 차다. 워낙 땅덩이가 커서 뉴욕이나 보스턴 같이 지하철과 버스가 아주 촘촘히 연결된 대도시가 아닌 다음에야, 차가 없으면 당장 어디 놀러 가기는커녕 장 보러 가기도 어려우니 말이다. (차 없이 1년을 살아낸 나, 무모했지만 칭찬해!)


유치하지만 외국에서 한국 차를 보면 괜히 반갑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 도로는 일본차가 꽉 잡고 있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머문 노스캐롤라이나만 해도 10대 중 적어도 6대는 혼다·도요타·닛산·렉서스·마쓰다·스바루 같은 일본 차인 것 같다. 다음으로 포드·GM·지프 등 미국 브랜드, 벤츠·BMW·폴크스바겐 등 독일 브랜드가 있고, 그 나머지의 나머지에 현대·기아차가 있는 느낌이다.     


일본차의 인기 비결은 명확하다. 이미지가 막 ‘꿈의 차’ 이런 건 아닌데  ‘한번 사면 고장이 없다’는 거다. 튼튼하면서도 처음 성능을 오래오래 유지하니 신경 쓸 일 없고, 자잘한 수리비도 아낄 수 있다는 보증수표같은 이미지다.


실제로 작년 이맘때 카맥스나 카바나 등 미국 대표 중고차 판매소를 둘러보니 일본 브랜드 가격대가 단연 높았다. 당시 미국 중고차 시장은 코로나 여파 등으로 가격이 정점을 찍었는데, 10만㎞를 넘긴 ‘혼다 시빅’(경차보다 쬐끔 더 크다)이 한화로 3000만원이 넘어가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다 킬로수가 10만 아래인데 2만 달러 초·중반에 나온 차가 있으면 서로 차지하려고 난리가 났었다.     

최근 미국 중고차 소매업체 '카맥스' 홈페이지. 확실히 1년 전보다 시세가 떨어지긴 했다.

일본차의 입지와 평판은 여전하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요즘 ‘생각보다’ 한국차가 눈에 많이 띄어서 놀라고 있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인 2020년 겨울 미국 휴스턴에 갔을 때만 해도 도로 위에 한국차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전엔 심지어 바로 옆에 기아차 공장이 있는데도 애틀랜타(조지아주 수도) 근처에서 기아차를 보기가 어려웠고, 그보다 더 오래전엔 샌프란시스코·뉴욕·LA 같은 차 많기로 유명한 곳에서조차 ‘누가 먼저 한국차를 발견하나’내기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확실히 한국차가 많아졌다. 얼마 전 뉴욕에서도 제네시스 SUV를 몇 대나 봤고, 전기차 아이오닉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특히 내가 사는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은 대학생 등 학교 관계자들이 많은데, 가성비 높은 차로 현대·기아차 인기가 높아졌다고 한다.      

미곡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의 주차장들. 일본차 브랜드가 많지만 한국차도 꽤 보인다.

한국차들이 북미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려고 같은 가격에 각종 좋은 옵션을 다 넣어준다는 건 이미 유명한데, 동시에 차를 살 때 가장 중요한 안전성과 내구성에 대한 인식도 꽤 좋아진 것 같다.

미국 자동차 내구품질조사(2022년). 구입 후 3년 된 차량을 대상으로 100대당 불만 건수다. 기아차가 mass-market 브랜드 중 1위, 제네시스가 럭셔리 중 1위다.

현지에서 듣기로는 예전에 한국차가 솔직한 말로 ‘돈 없는 대학생, 흑인들이나 타는 차’였다면 요즘은 ‘합리적 소비를 할 줄 알면서 디자인과 성능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타는 차’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거다. 나는 현대·기아차랑 사돈의 팔촌까지 따져도 아무 이해관계가 없지만 아무튼 한국 사람으로서 듣기에 기분 좋은 소리다.


물론 한국차는 여전히 고급차 이미지가 부족하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눈에 띄는 한국차 역시 대부분 소울 아반떼(엘란트라) K5 쏘나타 스포티지 등이다.

아찔한 속눈썹을 붙인 차가 있어 다가가봤더니 기아 소울이었다. 하하.

이와 관련해서 현대차는 미국에서 ‘아제라(AZERA)’란 이름으로 그랜저를 팔았었는데 불과 몇 년 전에 판매를 중단했다. 그랜저 대신 더 비싼 ‘제네시스’를 팔기 위해서였는데 아직은 전략이 확 통하는 거 같지 않다. 한 현지인은 “아제라 정도면 사려고 했는데 단종돼서 안타깝다. 그보다 더 비싸면 굳이 한국차를 사진 않겠다”고 했다.


그래도 반도체와 첨단 배터리가 들어가는 미래차 시대로 옮겨가기 시작하면서 내연차 시대보다는 한국 브랜드의 위상이 높아질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분위기다.

 

실제 현지의 한 소비자는 “미국에선 장거리 운전할 일이 많은데 한국차엔 반자율 주행 기능이 기본사양으로 들어가 있어서 좋다”고 평가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디트로이트에서 만난 한 우버(Uber) 기사의 경우 아이오닉 하이브리드를 몰고 있었는데 “내가 진짜 서치를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하고 차를 샀는데, 이만한 차가 없다. 너무나 만족한다”며 극찬을 했다. (다시한번, 나는 현대·기아차와 아무 관련이 없다…)


여기엔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선진국이고, 참신한 소프트파워가 풍부하다는 인식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특히 일본차보다 안전성과 내구성은 살짝 떨어질지 몰라도, 디자인이나 첨단 기능이 뛰어난 ‘젊고 다이내믹한’ 이미지가 있다고나 할까. 이걸 어떻게 돈 많은, 중장년의 소비자들에게 소구 하느냐가 관건일 거다.

  

미래가 얼마나 빨리 다가오든, 자동차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일 거다. 애국심이 솟구칠 만큼 외국생활을 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의 기술이 세계인들의 일상에서 인기있는 제품이 된다면 뿌듯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결국 ‘I♥NY’ 배지는 사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