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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 벗고다녀...'미국인' 특성 5가지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by 제인

먼저 양해를 구한다. 한국인의 미국 이민 역사가 100년이 훌쩍 넘었고(※ 이민선이 1902년 12월에 인천을 출발해 1903년 1월에 호놀룰루에 도착했다고 한다) 미국에 사는 우리 교민들이 200만명 가까운데, 석 달도 안 살아 본 사람이 미국이 이렇고 저렇고 하는 것 자체가 주제넘고 정확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주마다 색깔이 뚜렷해서 내가 있는 노스 캐롤라이나와 다른 주가 많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지상태의 이방인인 만큼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해 보이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내가 경험하며 느낀 미국인들에 대해 솔직하게 적어보려고 한다.


▶ 세상 의미 없는 ‘하우 아 유(How are you)’

그 긴 세월을 하와유-아임파인 땡큐를 쌍으로 외워 댔건만, 막상 미국에 와보니 이 말만큼 허무한 말이 없다. 누군가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미국인들은 자동적으로 How are you, How’s it going 같은 인사를 한다. 하지만 이건 정말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내 건강과 기분이 어떤지 묻는 말이 아니다. 그냥 ‘내가 너라는 사람을 인식했다’ 정도의 신호랄까.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할 일을 하며 저 말을 할 때도 있다. 인사를 받는 상대 역시 Good, Fine 이라고 응수하지만 역시 큰 의미는 없다. 이런 상황은 특히 식당이나 마트 계산대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이다.


처음엔 ‘와, 저 사람이 나에게 안부를 물어봐줬어! 이렇게 친절할 수가!’ 라며 감동(?)해서 얼굴 가득 과한 웃음을 띄고 답변하고 ‘땡큐’까지 외쳤지만…이제는 그냥 나도 무덤덤하게 ‘굿’ 한 마디하고 지나간다. 내가 굿이든 안 굿이든 어차피 저분들은 노 관심!


▶ 조금만 다가가도 싫어하는…‘공간주의자’들

길거리를 걷거나 공공장소에 가면 여기저기서 시도 때도 없이 ‘오우, 익스큐즈미(Excuse me)’가 들린다. 대부분 누굴 치거나 발을 밟거나 이런 게 아니라 상대와의 거리가 좁혀졌을 때 저런다.

흥미로운 건 좀 과도하다는 거다. 지구의 물리법칙으로 절대 부딪힐 일이 없는 상황인데도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면 서로가 아주 익스큐즈미라고 몸서리를 친다. 워낙 넓은 국토와 낮은 인구밀도에서 띄엄띄엄 살아서인지, 개인주의 문화가 강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두 가지 다 일거다.

경험상 미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중국·인도 등 아시안들은 별로 그렇지 않은데 서양 사람들이 유독 심한 것 같다. 덕분에 나도 쇼핑 카트를 끌거나 공공장소에 가면 최대한 사람들과 멀찍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뭐가 그렇게 위축돼 있는지 익스큐즈미라고 하면 될 걸 나도 모르게 자꾸 ‘쏘리 쏘리’를 해대서 겸연쩍지만.


▶ 안 춥나? 젊은이들의 하의실종

미국 대학생들이 교복을 입을 리는 없다. 하지만 대학 근처의 젊은 여학생들은 마치 복장 규정을 맞춘 것 마냥 하나같이 레깅스를 입고 다닌다. 레깅스가 아니라면 아주 짧은 스포츠 반바지다. 너무 짧아서 엉덩이 라인이 보이는 사람도 있다. 이모의 심정으로 다가가서 ‘학생, 남자 애들도 많은데 좀 길게 입고 다녀’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남학생들도 대부분 긴 바지보다는 반바지다.


그에 비해 상의는 긴 팔, 두터운 후드티가 많다. 옷차림이야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거다. 상체는 가리고 하체는 내놓는 느낌이랄까. 제일 충격적인 건 겨울에도 남녀를 불문하고 위에는 목도리에 패딩 잠바까지 입었으면서 아래는 반바지 차림의 사람들이 꽤 있다는 거다. (물론 40대 이상 중·장·노년층은 그렇지 않다) 노스 캐롤라이나도 겨울엔 아침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질 정도로 꽤 추운데 말이다. 미국 사람들은 허리 아래는 추위를 안타나? 긴 바지나 긴치마 산업이 안 발달했나? 하의를 길게 입지 않는 뿌리 깊은 문화가 있는 건가? 말도 안 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조금 다른 얘긴데 사실 미국 사람들 다리가…이쁘다. 길이도 동양인에 비해 길고 알통도 없이 매끈하다. 남자들도 상체에 비해 종아리가 정말 날씬하다. 북한산, 관악산에서 자주 봤던 알통이 꽉 박힌 장딴지는 한 번도 못 본 것 같다. 그저 부러울 따름.

산책하다 그런 ‘이쁜 다리들’ 뒤를 따라가다 보면 늘씬늘씬한 자기 다리가 예쁜 줄 아니까 자신이 넘쳐서 되도록 내놓고 다니나 보다, 라는 심오한 결론에 달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정말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좀 진지하게 미국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생각해 본 건데 겨울에도 짧은 하의를 입고 다니는 이유는 대충 이런 이유들 때문인 것 같다.


- 미국인 중엔 추운 것보다 더운 것을 ‘너무나’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 미국에는 아침에 춥다가도 낮이 되면 기온이 크게 오르는 곳들이 많다.

- 미국인들은 주로 자기 차를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으니까 추위에서 자유롭다.

- 긴 하의보다 짧은 하의가 생활하는 데 편하다.

- 선천적으로 동양인보다 에너지가 많고 추위를 덜 탄다.

- 가볍게 입고 다니는 게 건강하고 진취적이고 힘이 넘친다는 인식이 있다.

- 남자의 경우엔 털이 많아 굳이 긴 바지를 입지 않아도 보온 효과가…;

- 멋진 다리에 자신이 있다. (이건 아무리 진지하더라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 느리지만 열심히 일한다

처음 미국 비자를 신청하고 부동산 등을 계약하고 할 때 속된 말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한번 문의를 하면 ‘알겠다’고 하면서 일주일, 보름 넘게 답이 안 오는 게 일상다반사였고, 단일 창구에서 처리하면 될 일 같은데 그걸 또 세분화해서 이 부서 저 부서를 옮겨 다니느라 하세월인 경우가 많았다. 퇴근은 또 좀 빠른가. 오후 5시면 모두 책상 앞을 떠난다. ‘동양인은 죽어라 일하고 서양인은 일 안 한다’는 인식이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면서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한국에 비해 느린 건 100% 맞다. (한국만한 나라가 없어요) 하지만 미국인은 원래 ‘돈 버는 것’에 유럽인들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그래서 소위 장사하는 곳은 예상외로 늦은 시간까지 하고, 토요일 일요일 심지어 공휴일도 인터넷으로 상담을 해 준다든가 하는 곳이 많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각종 서비스는 오프라인으로든 온라인으로든 적어도 최소한 ‘매일 돌아가는’ 느낌이다. 사회적으로도 그게 뭐가 됐든 ‘자기 일을 가지고 열심히 한다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독려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세계 최고의 멀티태스킹 능력에 빨리빨리를 자랑하는 한국인이 봤을 때 그 ‘열심히’가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 우리가 1시간이면 끝낼 것을 미국인은 열심히 하루 걸려 한다. 게다가 일을 재촉하거나 ‘이렇게 하면 더 빨리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다른 방법을 제안하는 걸 이해 못 하는 것 같다. 왜 그래야 하지? 난 지금 열심히 하고 있고, 계속 이렇게 잘 살아왔는데…. 뭐 이런 느낌이다. 미국에서 사업하면서 명함을 한국에서 주문하는 사장님도 봤다.


미국에서 오래 산 한국분이 이런 말을 했다.

“미국에서 일 보는 거요? 느리죠. 한국 생각하면 속 터져 죽어요. 그래도 정말 중요한 건 반드시 어떻게 해서든 결정적인 기한에 맞춰서 되게 해요. 그래서 선진국인 것 같아요.”


▶ 개가 많고 크다

좀 과장하면 거의 모든 미국인들이 개를 키우는 것 같다. 그것도 아주 큰 개를. 한국 기준으로 보면 중형도 아니고 대형견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 같다. 산책로에서 다가오는 큰 개들을 볼 때마다 긴장될 때가 많다. 아무래도 큰 견종이다 보니 색깔도 흰색이나 옅은 색보다 검고 짙은 갈색인 개들이 많다. 실제로 날 보고 좋다고 퍽퍽 흔드는 개 꼬리에 허벅지를 맞았는데 작은 몽둥이에 맞은 듯 꽤 아팠다.


분명한 건 미국에서 개는 어느 곳에서나 사람과 거의 비슷한 권리를 인정받는다는 거다. 식당이나 행사장 등 동물 입장이 금지된 곳도 있지만 적어도 그럴 때 마인드가 ‘못 들어오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지, ‘왜 이런 데 개를 데려 오려고 해요’가 아니다. 결과는 같아도 큰 차이다.


미국인들이 개를 많이 키우는 이유는 워낙 개를 좋아하기도 하고 서구권 문화가 실외뿐 아니라 실내에서 개를 키워와서겠지만 실질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바로 호신용이다. 미국은 알려진 대로 정말이지 영토가 넓어서 아파트나 콘도미니엄 형태가 아니고서야 집과 집이 멀리 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CCTV를 촘촘히 설치하기도 어렵고 ‘도와주세요!!’ '사람살려!!' 소리쳐도 아무도 못 듣게 생겼다. 비명이든 뭐든 누가 가까이 살고 근처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있어야 들을 텐데 이곳 노스 캐롤라이나만 해도 한낮에도 길을 가다 둘러보면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때도 많다. 이 경우 믿을 건 언제 도착할지 모를 경찰이나 보안관보다는 개다. 나를 지켜줄 만큼 크고 용맹스러운 개.


개인적으론 불만도 있다. 공원이나 산책로를 다닐 땐 줄을 묶어 다니는 게 규정인데도 2~3살짜리 아이 키 만한 개를 그냥 풀고 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개를 무서워하거나 소형견에만 익숙한 사람에겐 좁은 길에서 시커먼 큰 개가 흙먼지를 날리며 경쾌한 리듬으로 뛰어오면 공포의 순간이다. 무엇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젊은 학생들이 많이 사는데 반려견 교육을 전혀 안 한 경우가 많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집채만 한(?) 개가 탄력 있게 튀어나와 버리거나 밤이고 새벽이고 개들이 짖어대는데, 큰 개들은 울림통도 커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미국 사람들이 저마다 큰 개를 키우는 건 너무나 이해한다. 관건은 역시나 타인에 대한 배려다. 이곳 역시 그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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