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피는 장미같은 일상
그녀는 나와 주파수가 꼭 맞는 친구이다. 주파수가 맞는다는 것은 완벽하게 모든 것이 똑같아서 서로를 질리게 만든다는 뜻과는 다르다. 나무의 멋진 결을 살려서 만든 가구처럼 딱 맞게 재단 된 느낌에 가깝다.
한편 그런 생각을 한다. 가족도 완벽하게 믿지 못하면서 타인을 믿겠다고 맘먹는 건 오산이 아닐 수 없지 않겠냐고. 누군가 언젠가 말한 적 있다. 자주 보지는 못해도 오래 봐요. 나는 콧방귀를 뀌며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것은 기약 없는 약속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걸어보고 싶었다. 사실 약속보다 그를 믿어보고 싶었다. 실망스러움과 기대감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다 지쳐갈 때쯤. 바쁜 일상 속에서 약속 따위는 초점을 잘못 맞은 사진처럼 희미해져 갈 때쯤. 그는 그 약속을 지켜냈다.
그래서 나도 그녀에게 걸어본다. 우리는 자주 보지 못해도 오래오래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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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여름인지, 봄인지, 가을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이 애매하게 뒤죽박죽 섞인 계절. 이런 계절을 위해 사계절 말고 다른 계절을 하나 더 만들어 명명해야만 한다. 계절과 계절 사이의 시간이니 틈새 계절이 어떨지 혼자서 정해본다. 정의가 애매한 것들을 마주치면 늘 자신감을 잃는다. 알 수 없는 호의, 이유 없는 미움, 사고 같은 불행. 선 후 관계를 따질 수도 없고 어떤 원인으로 비롯된 결과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것들은 불안을 야기한다.
틈새 계절 사이에서 만난 그녀는 불안감을 주지 않는 친구이다. 애매한 것을 애매한 채로 받아들이는 마법이 그녀와의 시간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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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역에서 10분을 걸어 브런치 가게에 도착했다. 열두시가 되려면 아직 한참이었는데도 사람들이 이미 가게 앞에서 줄을 서있었다. 기다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줄의 길이를 가늠하며 망설일 때 그녀는 단박에 괜찮다고 기다려보자고 말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의 일상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서로가 알 수 없던 시간에 대한 일상의 공유는 어쩐지 흥미롭다. 줄의 길이는 어느새 잊은 채 이야기에 몰두하게 된다. 짧은 시간처럼 느껴진 기다림의 시간을 뒤로하고 먹기도 아까운 브런치를 마주하니 금세 군침이 돌며 잊었던 식욕이 올라온다.
맛있는 브런치 다음엔 맛있는 커피라며 정해둔 카페로 배를 두들기며 가다가 외관에 끌려 처음 보는 찻집에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마주치는 돌발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기에 이런 계획에 없던 발견은 너무나도 즐겁다. 커피도 맛있고 디저트인 흑임자 치즈 케이크도 조합이 좋다.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입에 여유로운 시간들을 같이 씹어 삼킨다. 어떤 이야기들은 씹어 삼키고 쭉 배설되어도 무방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있고, 어떤 이야기는 입안에 길게 남는 흑임자 향처럼 너무 나도 아쉬워서 금방 커피로 내리기 싫을 정도로 감칠맛 나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나왔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그녀는 ‘그러면 참 좋지. 매일을 가을같이 보내는 것처럼’이라는 표현을 썼다. 머릿속으로 재빨리 밑줄을 긋고는 두고두고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저장했다. 매일이 가을 같은 나날을 상상하다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녀와 만나는 날만이라도 가을과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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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닐을 모으며 이태원은 나에게 가고 싶은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현대카드에서 운영하는 바이닐 앤 플라스틱에 들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이닐을 청음 해 보겠다고 카드까지 발급했으나 이상하게 맘을 먹고 나니 도무지 갈 일이 생기질 않았다. 그러던 찰나에 커피를 먹고 산책하다가 발견한 것이다. ‘어? 여기에 있었어?’
어떤 계획은 지키는 것이 맞지만, 어떤 계획은 지켜지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그리고 어떤 계획은 반드시 세워야 하지만, 어떤 계획은 세우지 않아도 이뤄지는 것이 있다.
누구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을 애매한 계절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매한 그 계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다지도 많다는 사실이 한 손에 가득 용기를 쥐여준다.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불안이 아닌 행운으로 가끔 불러도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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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닐 가게에서 나는 김광석 베스트앨범을, 그녀는 CALL ME BY YOUR NAME OST 앨범을 골랐다. 턴테이블 앞에 나란히 앉아 헤드셋을 같이 끼고 각자가 고른 앨범에서 두 곡씩 나란히 들었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mystery of love>를 들을 때 살짝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유 없는 슬픔이었다. 애매한 슬픔. 그냥 애매한 채로 놔두기로 했다. 그래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위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귀한 소장품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소지품도 맡기고 장갑도 끼게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희귀한 바이닐이 참 많았다. 지금은 절판되어 찾기 힘든 바이닐도 거기에 있었다. 윤종신과 이소라, 신승훈의 앨범을 골라 또 나란히 턴테이블에 앉아 음악을 감상했다. 이소라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으며 언제 들어도 좋은 곡에 대해 생각했다.
잠깐 일어나 봐 깨워서 미안해
난 모르겠어 윤오의 진짜 마음을
같이 걸을 때도(거기 어디니)
한 걸음 먼저 가
친구들 앞에서(혼자 있니)
무관심할 때도 괴로워
(어디 가지 말고 거기 있어 내가 갈게)
시시콜콜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를 곁에 둔 화자의 축복이 부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결국 어떤 위로로도 고통이 상쇄되지 않을 것이다. 그 마음을 알아채는 것이 싫었다. 세상에 뿌려진 수많은 고통 중에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의 범위가 넓어지길 바란 적은 단연코 없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건 언제나 자신 있었다. 경험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라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큰 아픔을 겪으면 큰 사람이 될 줄 알았다. 모든 아픔을 다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자애로운 사람이 되자는 거창한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누군가를 끌어안아줄 때 더 힘껏, 더 넓게 포용해 주는 것이 가능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선택엔 잘도 대가가 따르면서 아픔을 겪었다고 해서 큰 사탕바구니를 내밀어 주진 않았다. 아픔 뒤에 좋은 일이 잘도 오지 않을 수도 있구나. 그것을 깨달은 날 깊이 좌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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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말한다. 이제 아픈 일 다 겪었으니 좋은 일만 올 거야. 바보 같아 보이지만 아직도 행복 총량의 법칙을 믿는다. 사람마다 행복의 양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불행만 오는 건 불공평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순수하게도 나에게 남은 행복의 날들을 셈해보는 시간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엄청난 불행을 겪었다고 해서 엄청난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라는 걸 배웠다. 등가교환처럼 딱 맞춰서 같은 가격으로, 같은 중량으로 교환을 해주지 않는다.
눈치도 못 챌 만큼 사소하고도 소소하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떠오르는 아침 해가 무섭고, 스스로 손목을 그어본 적이 있던 질퍽한 과거를 벗어나 별일 없는 일상의 궤도에 들어온 지금이 행복이라는 걸 빨리 깨달아야 한다는 것. 과거의 나에게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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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억울할 수 있지.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로또 1등짜리 행운은 아니더라도, 짜릿한 행운은커녕 이렇게 시시한 게 행복이라고? 이게 내가 가진 행복의 총량이란 말이야? 아직도 억울한 마음이 드는 사람들에게 (나를 포함한) 누군가 해 준말을 공유하고자 한다.
-농담을 진담처럼 신중하게 하고 진담을 농담처럼 가볍게 하라는 말이 생각나. 행복이나 행운은 공기같이 가벼운 것이라 농담처럼 오는 거래. 우리 진담처럼 살아가고 농담같이 행복해지자.
농담처럼, 거짓말처럼 아픔을 잊는 약이 있다면, 과거를 싹 지우고 살면 네 맘이 편해지겠니?
쉽게 답하지 못했다. 고민하다가 고개를 내젓고 아니라고 말했다.
엄마를 두고, 세상에서 제일 미워서 버리고 싶은 나도 두고 그렇게 막상 버리고 오라 그러면 또 못 버리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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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큰 슬픔이나 아픔을 겪으면 더 이상 농담이 농담처럼 안 들리고, 진심이 진심처럼 안 보인다는 구절을 읽은 적 있다. 피가 말라버린 심정으로 텅 빈 눈을 하고는 여러 번 읽어 내렸다. 다시는 예전처럼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절망감에 손이 발발 떨렸다. 이제 누구와도 웃지 못하고, 어떤 고민도 나에겐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하며, 어떤 진심도 우스운 장난 같겠지. 어떻게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랑을 하고 울고 웃을까.
묵직한 겨울 뒤에 얇은 종이 한 장이 나풀거리는 봄이 찾아오리라 왜 사람들은 철석같이 믿는 걸까? 왜 하필 무거운 계절 뒤에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계절을 두셨을까. 의문을 품는 와중에도 세상은 봐주지 않고 시간을 달리하더니, 별일 없는 시시콜콜한 내 일상도 가볍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거짓말처럼 혹은 농담같이 찾아왔다.
밀도가 높을수록 가벼운 것을 갈망해야 한다. 무거운 것은 곤두박질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양껏 밀도를 높인 생각이 절벽이라도 만나는 날에는 큰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누구보다 헬륨 풍선처럼 바람에 몸을 맡길 줄 알아야 한다. 애매하게 행복해도 그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믿으면서. 아니, 사실은 거짓말처럼 정상 궤도를 찾은 고마운 일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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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애매한 저녁에 헤어지면서 혼자 4호선에 몸을 맡기고 오래전 자주 듣던 노래 하나가 생각이 났다. 굳이 씨디플레이어를 장만해서 씨디를 직접 들고 다니면서 듣던 노래.
꽃 향기를 좋아하지는 않아
하지만 때로는 나도 꽃을 안고 싶어
눈치 없이 달콤한 것은 싫어
하지만 이 순간 난 네 곁에 앉고 싶어
늘 꿈꾸던 건 홀로 있되 서럽지 않은 것
깃털같이 나비처럼 바람결을 탈 것
진한 색깔, 향기를 쫒아가지 않는 것
앉는다면 바로 그 자리에 활짝 피게 할 것
넌 내 세상을 바꿀 거야
네 등 뒤로 감춘 꽃다발 하나면 아마 충분할 것 같은 걸
한 없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
어린 소년 시절 깜빡 놓쳐버린 헬륨 풍선처럼 아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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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 가사처럼 되고 싶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지난날을 지우면 편하긴 할 것이다. 상처 준 기억들을 완벽하게 표백하고 싶으니까. 그러나 가끔 이렇게 지우고 싶지 않은 기억이 끼어드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순간에 사소한 이유로 끼어들어서 훼방을 놓는다. 좋은 의미의 훼방이다. 분명한 것들에 훼방을 놓고 경계를 흩트리는 것에 대해 덜 불안해하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난 약에 의존하는 환자니까 이런 말이 허풍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걸 간과하면 안 되겠다. 다만, 자꾸만 끼어드는 이런 사소한 훼방이 초조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짐을 조금씩 해방시켜주는 선선한 가을바람이라면?
5월은 역시 장미의 계절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장미는 가을에 피는 장미를 더 멋지다고 생각하므로 가을까지는 장미를 기다리며 살아가겠다.
내 세상을 바꿔 줄 꽃다발들이 널려있는 계절이라 포기하긴 이르다. 계절과 계절 사이 틈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를 피워내는 지금. 희미하여 분명하지도 못한 여리디여린 내 마음처럼 모든 애매한 것들을 확실하게 사랑하자. 그리하여 포기하겠다는 마음은 장난처럼 쉽게 뒤집고 다시 다가올 여름 속으로 겁도 없이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