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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Jan 03. 2023

심심함의 축복을

심심할때는


심심할 때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타인의 시간 때우기 비법 같은 걸 나도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우선 나의 시간 때우기는 근본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가장 시간 낭비적인 행위이자, 아늑하고도 사치스러운 행위라 말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어떤 변화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 사람들은 늘 멈춰있음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바. 쉬는 시간에도 늘 무언가를 해내야만 비로소 발전적인 휴식을 취했다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변화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 그렇다면 반드시 나쁜 것인가? 변치 않는 사랑. 변치 않는 사람. 사랑이든 사람이든 우리는 변치 않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쳐주지 않는가? 멈춰있음을 두려워하면서 우리는 움직이는 것 또한 두려워한다. 줏대 없는 마음과 사람이 얼마나 싫은지 겪어 본 사람은 익히 알 터. 그렇다면, 우리는 적절한 경계에서 변화하며 동시에 변화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것은 변화시키고 어떤 것은 머무르게 할지 선택의 기로 속에 늘 놓이게 된다.

심심한 시간이야말로 이 모든 것을 잘 선택해 볼 수 있는 실험실과 같다. 혹자는 인생을 두 번할 수 없어 모든 것이 덧없다는 표현을 썼다. 인생은 왜 시험판 혹은 삼세판이 안 되는 걸까. 불확실성 속에서 가진 모든 것을 올인 하는 것이 도박이라면, 인생이 꼭 똑같은 모양새지 않는가. 이러한 의문을 한 번 쯤은 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이 심심함의 시간을 보너스 게임 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튜토리얼이 없는 인생에서 유일하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자투리 시간. 보너스 시간처럼 예상치 못한 한 뼘의 시간을 더 부여받는 듯 한 그런 남겨진 시간들. 심심한 시간은 축복이자 기회이다. 심심한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근본적으로는 충전이라는 명목아래에 잠을 잔다. 힐링을 채워놔야 전투에도 능히 참전할 수 있듯이 미리 체력을 길러놓는 시간이라고 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시간은 변화해야 한다고 앞서 말했듯 심심한 시간이 다가오면 기민하게 반응하려 애쓰는 시간도 존재한다.

인간은 정말 심심할 때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믿는다. 늘 재미로 가득 찬 세상을 살고 있다. 재미를 추구하는 것들은 주변에 너무나도 많다. 음식을 하나 먹어도 내가 여태껏 맛보지 못한 재미있는 맛을 맛보려 한다. 영화를 보기위해서는 평점부터 찾아보고. 드라마는 늘 재미있는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니 간이 안 된 삼삼한 시간들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24시간 중 하나의 시간이지만, 마치 덤으로 가져가라며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는 서비스 군밤과도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덤은 어딘가 특별하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의 소리를 따라 특별한 일들을 저지르곤 한다. 회사의 일과를 끝내고, 빨래마저 다 돌리고, 청소기도 한 바퀴 돌리고 난 약속 없는 한 낮의 오후. 연락처를 굳이 뒤져서 누군가를 불러내기도 애매하고, 그동안 보던 드라마는 갑자기 지루하고. 그럴 때 무언가를 꺼내들 것인가.

너무 외로워서 어떤 남자는 사막에서 본인의 발자국을 보며 뒤돌아 걸었다는 짧은 시가 있다. 나는 너무 외로워서 내 글을 보며 늘 뒤돌아 걷는 사람이다. 심심한 시간이 찾아오면 순간 울적해지다가도 아 이것은 축복이다! 이내 깨달으며 글을 써내려 간다. 이 세상의 많은 작가들은 심심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삶이 무료해서. 꽤나 평범하고도 깔끔한 이유다. 비단 글뿐이겠는가. 우리들이 원하는 일은 덤처럼 주어진 시간 속에서 이뤄진다. 소중한 일과를 끝내고 침대에 누워서 읽는 책 한권. 퇴근 후 짬을 내어 듣는 회화 수업. 주말에 즐기는 스포츠 여가 등. 자투리 시간이라 월등히 그 시간이 물리적으로 짧지만, 누구보다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철저히 본인다울 것이다.

나에게 그런 심심함의 축복이 글로 와준 것에 감사하다. 글이 아닌 다른 것을 만났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쓰기로 만날 수 있었던 심심함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꿈틀 꿈틀 작은 심심함이 점점 커져갈 때 글쓰기에 대한 욕구도 꿈틀 꿈틀 싹을 틔운다. 대부분의 진지하고도 깊은 글들은 심심한 와중에 탄생했다. 오히려 다시 보기 싫은 낯부끄러운 글들은 진지하게 시간을 잡고 써내려간 경우에 더 많이 나왔다. 아마도 몸도 마음도 지친 심심한 시간에 오롯이 글과 나만이 집중할 수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선택지가 도사리는 도시의 불빛 속의 재미와 잠시 떨어져, 때 묻은 공책, 다리 한쪽이 길이가 달라 수평이 안 맞는 간이 테이블, 먼지 낀 장식장 속 이름 모를 유리알 구슬 온통 재미없는 심심한 풍경 속에서 오롯이 나와 글만이 집중하여 이야기를 만든다.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지만 변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또한 모순적이게도 언젠가 재미있는 한방이 될 거라 생각한다. 자투리처럼 모아낸 이야기가 다른 심심함의 시간 속에 가서 재미로 닿기를. 그리하여 심심함의 축복이 비처럼 내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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