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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Jan 09. 2023

나의 미치게 깜깜한 이웃

단편소설



똑-똑- 일정하게 간격을 유지하며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퍼진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다. 윗층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다. 액체가 세차게 새고있었다. 이정도 소리로 들린다는 건 윗 분 상태가 오늘도 심상치 못하다는 것이다.

 

피. 피가 고여서 침대 옆 벽면 모서리를 따라 떨어지는 소리였다. 똑-똑-똑- 떼지어 내리지 않고 한 방울씩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더욱 더 미치게 만들었다.

아 진짜 이래서 뱀파이어는 이웃으로 둘 수 없는 존재라니까. 혀를 끌끌차며 잠을 자길 글렀다는 듯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


거실로 나와 티비 볼륨을 키우며 생각했다. 층간 소음도 이런 층간소음이 없을꺼야. 물이새는 건 들어봤어도 피가새는건 어디 나서서 말도 못할 일이었다. 어렵게 계약한 전셋집이 이런 고통을 줄지 몰랐다.


전세사기가 만연한 요즘에 사기나 안당하면 다행이지라고 생각하며 꽤 낡은 외관에도 괜찮아를 외쳤는데. 이웃으로 뱀파이어라면 명백한 사기를 당한 셈이었다.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으나 그가 뱀파이어임을 들킨건 시간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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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왔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웬 새하얀 남자가 문앞에 서있었다. 너무 새하얗고 뽀얀남자였다. A4용지가 팔랑팔랑 서있는것 같기도 하고, 갓 쪄낸 백설기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사음식이라며 내게 내민것은 백설기가 아니라 잔뜩 담겨져있는 씨앗같은 것들이었다.


“예.. 잘부탁드립니다. 이게 뭐예요 근데? 웬 씨앗을?”

잠에서 깨서 잘못 본줄알고 눈을 비비며 되묻자 그가 다정하게도 말했다.


“직접 기른 해바라기 씨앗이예요”

그리곤 해사하게 씨익 웃었다. 해바라기 만큼 활짝 꽃이 피는듯한 웃음이었다. 직접기른 해바라기 씨앗이라나 뭐라나. 보통 떡이나 과일이지 않나? 황당한 전개에 움찔했으나 미소때문에 다 까먹었다. 내가 외모지상주의였나?


-


이후에 알게되었다. 뱀파이어들은 물건 세는것에 집착을 한단다. 정월대보름에 우리가 체를 걸어두면 귀신들이 구멍을 세다가 도망간다는 전설이 말그대로 전설인 줄 알았는데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귀신의 종(?)을 불문하고 일단은 모두가 같은 습성을 지니다 보다.


이후에 친해져서 집에 초대했더니만, 찬장에 앉은 먼지를 구석구석 세고있어서 처음엔 민망했으나 나중엔 로봇청소기를 쓰는 개념으로 일부러 쌀알을 떨어트려주거나 했더니 아주 신나서 아이처럼 집중하여 줍는 폼이 꽤나 웃겼다.


이 밖에도 자신의 가문을 소개하면서 100년된 사람이라고 밝혔을때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그러면 나는 이씨가문의 30년된 사람인데 마음만은 20년산으로 살고싶댔더니 자기한테 물리면 평생 영생을 준다는 끔찍한 소리나 해대서 한동안 말도 못걸게 했었다.


-


똑-똑- 이번에는 더 진한 소리가 났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아마도 그가 온듯 하다. 일주일에 한번 같이 아침을 먹고있다.


“안녕하세요”


오자마자 대뜸 인사를하고 꽃을 내미는 패턴. 똑같다. 한번도 거르지 않고 그는 나의 집에 올때마다 꽃을 내민다. 이번에는 알록달록 무지개빛 장미었다.


“색깔. 직접 변하게 한거예요?”


“가끔 보면 제가 마술사나 마법사 뭐 그런건 줄 아나봐요. 저는 그냥 귀신이라니까요 물건도 뜨게 못하고, 꽃 색깔도 못바꿔요. 동네 꽃집에 있길래 사온거예요”


그를 이렇게 만나기 전 나의 뱀파이어에 대한 인식은 뭐 어벤져스와 같았다. 힘도 쎄고 맘대로 능력 발휘하고 그런건 줄 알았는데. 웬걸 무슨 노인처럼 기력없이 다니면서 얼굴은 창백해서 밤이면 피나 마시고 그런 사람. 귀신이었다.


-


갓 지은 고슬고슬 한 밥에 계란말이, 뜨끈한 된장찌개, 윤기나는 콩자반, 대기업표 김치 이정도면 완벽한 진수성찬이었다. 내 앞에 앉은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니지만.


그는 어김없이 넓다란 대접에 해바라기 씨앗을 잔뜩 뿌려놓고 정신없이 세면서 먹는다. 정말 제정상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그와 밥을 먹고싶다. 외로워서.


“씨앗이 그렇게 맛있어요? 이걸 봐봐요. 윤기나는 밥. 자 봐봐요 이렇게 앙-”

음 맛있어. 맛있다는 듯이 눈웃음을 지으면서 행복한 듯이 밥을 막 먹어대자 처음으로 그가 유심히 먹는 것을 관찰한다.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요?


“저는 비록 먹고싶지 않지만 먹는걸 보니까 안먹어도 배불러서요. 반대로 비록 살고 싶지 않아도 저를 보면 영원히 살고싶나요?”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래요. 하지 말랬죠? 또 싸우고 싶은 거 아니면 밥이나 먹어요”


그는 자꾸 나를 흔든다. 삶이 반년 밖에 안남은 나에게 자꾸 영생을 제안한다. 흔들린다는 건 고민한다는 뜻이고 나는 그 제안 앞에서 달콤한 사탕을 둔 어린애처럼 어쩔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너무 무섭다. 이미 외로움의 깊이를 아는 밤이 수없이 많다. 그 밤을 굳이 더 늘리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아직은 더 크다.


-


병원까지 데려다주는 그에게 문득 물어보고 싶어졌다. 아침의 대화 때문일까 망설이던 질문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직전이다. 참아야 해.


“꽃이 벌써 폈네요 이제 너무 예쁘죠?“


“영원히 산다는 건 어떤 기분 이예요?”


하필 꽃이 예쁘다는 이야기를 할 때 이런 민감한 질문이 튀어나와 버렸다. 말은 이래서 문제다. 한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도 없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에서 꽃잎이 내리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정적이 이어졌다.


그가 대답도 해주지 않은 채 병원 쪽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혼난 강아지마냥 축 쳐져서 그 뒤를 그저 쫄래쫄래 따라갔다. 그리고 병원 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어주고는 그가 말했다.


”깜깜하죠. 미치게“


치료 잘 받고 와요. 손을 흔들고 그가 새하얗게 팔랑팔랑 사라져갔다. 깜깜하다는 말과 너무나도 반대되는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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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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