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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Jan 09. 2023

나의 미치게 깜깜한 이웃

2


깜깜한 순간들은 많았다. 알수없는 표적치료니 항암치료니 방사선 치료같은 지긋지긋한 치료의 연속을 받는 순간도 깜깜했지만, 인생 전반이 먹먹했다.


부모가 원하는 상대랑 결혼하지 않는다는 쌍팔년도 같은 이유로 쫓겨난 지금도, 존재를 부정당하던 학창시절도 모두 깜깜했다. 그런 암흑의 순간이 계속된다는 것 아닌가. 영생할 이유가 도저히 없었다.


치료가 끝나고 터덜터덜 병원을 나서는데 허여멀건한 얼굴이 눈을 부릅뜨고 서있어서 뜻밖의 비명을 질렀다.


“왜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요! 여기서 기다린거예요?”


“네. 걱정이되서요”


사람을 이렇게 놀래켜놓고는 미동도 없는 그가 얄미워 뺨을 꼬집었다. 아픈 내색도 없이 그는 생글생글 웃는다. 아주 좋아죽네. 누구는 아파죽는데, 놀래키기까지 하고.


“날이 깜깜하니까 걱정이되서 데려다 주려구요. 집까지”


날이 깜깜하기는. 아직 5시의 봄날은 너무나도 환했다. 하지만 모르는척 속아넘어가 주기로 한다. 오늘 질문한 내용이 신경쓰여 힐끔거리는 그를 안다. 그렇지만 그 관심이 좋아서 그저 모르는척 나란히 걸었다. 사이사이 꽃잎이 방울방울 떨어져내렸다.


-


똑-똑- 오늘 밤도 어김없이 피는 내리고 있었다. 이제는 반복적인 소리가 ASMR이라도 되는 듯 소리에 맞춰 선잠에 들고 있었다. 오늘따라 기분이 조금 편안해서 그런가? 이불 속 깊이 파고들며 바스락 거리는 감촉을 느낄 때, 갑자기 일순간 정지된것 처럼 소리가 뚝 하고 멈췄다.


가만 기다려보았는데 더이상 핏방울 소리가 나지 않는다. 정신없이 그가 피를 마실 때면 필수불가결하게 피가 떨어지는 걸 아는데 뭔가 이상했다.


똑-똑-똑 결국 그의 집 문을 두드렸다. 그를 집에 초대한 적은 있으나, 그의 집에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다. 무언가 결계라도 쳐져 있는 듯이 굴었기 때문이다. 집에 뭐 대단한걸 숨겨둔다고 출입을 못하게 하는지. 나 원참.


문이 벌컥열리고 차디찬 얼굴에 붉디붉은 피를 입술에 덕지덕지 묻힌 그가 나타났다. 아 이래서. 오지말라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아버렸다.


-


이제는 물컵 쥔 손이 떨리지 않자 그가 포개두었던 손을 가져갔다. 문을 열어주자 집안으로 헐레벌떡 들어서면서 괜찮냐고 물어본것이 화근이었다.


방안에 엄청 큰 고라니 시체가 뜯겨져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마 밤이되면 로드킬 당한 동물을 데려와  피를 마신것이 분명했다. 난생 처음보는 광경에 기함을 토할뻔했다.


온몸이 달달 떨리는걸 눈치 챈 그가 따스한 물컵을 쥐어주며 손을 쥐었을 땐 다른의미로 떨리기 시작해서 미치는줄 알았다. 한마디로 이럴 땐 망했다고 하는거겠지. 사랑에 빠진 순간 말이다.


“아직도 떨리는 것 같은데. 미안해요. 놀랐죠?”


정작 설레게 만드는 발화자는 다른 의미의 떨림을 신경쓴다. 서로가 서로의 의미를 읽지 못한 채 다르게 익어가는 밤이었다.


-


그의 집에서 나오고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서 올라오는데 집앞에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어머니였다. 좋은 말이 나갈리가 없었다.


“여긴 어쩐일이세요. 매정하게 내쫓고선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얼굴 아닌가요?”


”너는 몸도 안좋다는 애가 빨리 죽고싶어서 환장한거지? 좀 끊어라“


손에 쥔 담배부터 보였나보다. 불퉁한 한마디에 더 불퉁한 한마디로 돌아오는 이 시간이 스트레스였다. 가뜩이나 아픈골치가 더 아프기전에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너. 꼭 이렇게 살아야겠니? 정말 창피하게? 뭣하러 치료를 받니 도대체 부모가슴에 대못박고 차라리 받지마. 그렇게 어렵니 도대체? 부모말 듣기가 그렇게 싫어?!”


하지만 악을 쓰는 어머니를 보니 뜻대로 제어가 되지 않았다. 말은 주워담을 수가 없다는걸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자꾸만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어머니,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요? 이렇게 살기싫어요. 저도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구요”


복도에 가득히 뺨이 올려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원하는대로 살아주지 않았는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어언 30년이다. 원하는 학교에 진학해 원하는 사람과 사귀어도 봤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강요대로 해온 삶이다. 그런데 이제는 일평생을 자신들이 그린 그림으로 색칠하려 했다. 그리하여 그것을 뿌리치고 나온것이다. 6개월. 단, 반년만이라도 원하는대로 살게해달라는 조건 하나 내걸고 나온 독립이었다.


“못났다. 못난 자식같으니라고. 이럴거면 집으로 들어와라”


눈물이 흘렀다. 자꾸만 영생은 깜깜하다고. 미치게 깜깜하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생각이 났다. 복도위에 어둠에 남겨져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


일부러 베란다를 열어두고 커피를 마셨다.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흘리는 웃음소리를 듣고싶어서. 아프고 나서 좋은 점은 월요일에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안좋은 점은 비로소 쉴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야근이 많아도 불평한번 없이 10년을 다닌 회사였다. 그리고 회사가 내게 준건 빠른 작별뿐이었다. 하지만 당장 죽는대도 뭐 하고싶은게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진짜 없었다.


정말 없어? 문득 오기가 생겨 다이어리를 가져와 비장하게 펼쳤다. 손톱을 잘근 씹고 다리를 달달 떨며 진짜 생각의 범주가 좁구나를 느낄 뿐이었다.


흠 이를 어쩐담. 다 이웃과 함께 하고 싶은것들 뿐이었다. 그가 보고싶다. 이젠 정말 망했다.


-


어김없이 그와 아침을 먹는 여느 주말. 질러버렸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시작은 가볍게 운을 띄웠다. 해보고 싶은 것 있어요. 그리고 미소 활짝. 웃는 얼굴에 침 못뱉으니까.


“뭔데요?”


그가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그렇지. 웃을줄 알았지. 이 미소를 더 자주볼 수 있는 곳으로 가야하지 않겠어?


“놀이공원 퍼레이드 보러가고 싶어요. 같이갈래요?”


그러자 그가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거절의 의미인가 싶어 긴장하는데 뜻밖의 말을 건넨다. 퍼레이드가 뭔데요? 박터지는 실소가 튀어나왔다.


”아니, 퍼레이드도 몰라요? 100년을 살았다며. 반짝 반짝하고 막 공주 왕자 나와서 손흔들고 모두가 웃으면서 안녕하는거. 마지막에 진짜 너무 예쁜 불꽃놀이 팡팡 터지고 연인들은 불꽃 아래에서 행복해하는 그런거. 안봤어요? K-드라마 필수 요소인데. 진짜 이 할아버지 뭐하고 사는거야 안되겠네“


그러자 그가 입꼬리를 또다시 씨익 올리더니 말한다. 알아요. 놀이공원 하이라이트 퍼레이드. 모르는 척 좀 해봤는데 되게 재밌네요?


가요. 저도 그런 행복한 곳엔 같이가고 싶으니까. 그러더니 다시 해바라기 씨앗을 줍느라 동그란 정수리만 보여준다.


아, 어쩌지. 동그란 정수리도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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