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연솔 Apr 27. 2024

기분의 거짓말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 선언한지 불과 2주전입니다. 다시 만난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며 즐거워 한 지 한 달도 지나지 못해서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추락만 계속될 때는 추락이 무섭지 않습니다. 이미 하강하고 있는 몸뚱이에 조금의 중력이 더 실린다 하더라도 닿아봤자 또 밑바닥이겠죠. 하지만 조금이나마 상쾌한 공기를 마신 후의 이야기라면 달라집니다.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하는 거죠. 정말 조금의 숨만 쉬어본 게 전부일지라도, 달콤한 그 맛을 잊지 못해서 상승기류를 타고 저 멀리 올라가고만 싶어집니다. 그리고 그 잊지 못한 상쾌한 바람이 그 다음의 하강을 더욱 두렵게 만듭니다. 습하고, 쾌쾌하고, 온통 질퍽한 듯 무거운 공기만 가득한 그 밑바닥이 이제는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늪 같은 기분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낙하산을 잃어버린 패러글라이딩처럼 꼬꾸라지겠죠.


기분을 믿지 않습니다. 늘 의심하는 버릇이 치료를 받기 시작한 이후로 더 심해졌습니다. 기분이 하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높이 올라가서 밑으로 떨어지는 기분은 온 몸이 박살이 나고 조각이 나서 다시는 붙이지 못할 어떤 입자의 상태가 된 것처럼 뼈아픈 기분입니다. 가슴 한 쪽이 꽉 막히고 울음이 가득 찬 기분으로 뱃멀미를 하듯 하루 종일 울렁거리며 눈물을 참아냅니다. 어른이 되고 가장 막막한 일은 이렇게 감정에 휘둘릴 때 몰래 눈물을 훔쳐야 하는 일입니다. 쉽게 울어서도, 쉽게 지쳐서도 안 됩니다. 오늘의 해야 할일을 눈물이 나도 해내는 것. 눈물방울은 아래로 떨어져도 밥숟갈은 위로 올라간다던 어느 속담이 떠오릅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서러워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아직 알고 싶지 않은 단계임을 인정합니다. 먼 훗날, 용서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배신감의 상처는 생각보다 잘 아물지가 않습니다. 누군가는 너무나도 쉬운 말투로 가족이니 한번 더 생각해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그들을 탓하기 보다는 차라리 부러워집니다. 어떤 일에 무지하여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이제는 부러울 지경입니다. 이러한 감정은 오롯이 당해본 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참히 짓밟혀 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지요. 그것이 참 부럽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게 짓밟혀 아무에게도 쓸모 있는 인간이 아니라고 한 평생 자신을 의심해야 하는 삶이 얼마나 불쌍한가요.


고통으로 하강하는 이 순간도 언젠가 거짓말처럼 지나갈 순간이 올까요. 더 이상 쓸 말이 생각나지 않는 밤입니다. 다음 문장이 기대되지 않는 것처럼, 눈앞이 별도 없이 새까만 밤으로 가득합니다. 자꾸만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삶에서 미끄러지는 무엇이 되어 저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다 놓아버리고 제 발로 바닥을 딛지 않도록 기분의 거짓말을 기대해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