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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Mar 22. 2021

때로는 나도 충전기가 있었으면 해

조울증 환자의 하루. 내 몸속에 '리튬' 배터리를 넣어요.

  극심한 우울증과 불안증 및 불면증으로 상담을 받은 지 세 달쯤 지날 무렵이었다. 선생님이 갑자기 나에게 조울증인 것 같다는 새로운 진단을 내렸다. 정신과에 용기 내어 오기 전까지 얼마나 두려웠는가. 하지만 막상 와보니 일반 내과와 똑같았다. 증상을 말하고 약을 처방받고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었다. 내가 비정상이면서 나를 둘러싼 환경은 정상이길 바라는 것은 모순이지만 그때의 나는 그래 주길 바랐다. 그렇게 앞으로 무슨 말씀을 하시든 수용해야지. 하고 맘을 먹을 찰나 던져진 조울증이라는 새로운 병명은 모순적인 나의 바람에 철저하게 위배되는 것이었다.


  나에게 우울증 = 비정상, 조울증 = 더 비정상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지극히 그때의 생각이다. 지금의 나는 조울증 환자로써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아마 미디어로 혹은 잡 지식으로 잘못 습득한 조울증에 대한 내 편견이었으리라.) 내가 비정상인 건 알아. 근데 생각보다 더 비정상이라고? 그날 충격에 말문이 막혀 '제가 왜 조울증 이죠 갑자기? 이게 무슨 막장 전개인 건가요?'라는 말은 못 하고 그저 주는 대로 리튬이라는 약을 받아 들고 나왔다. '이건 배터리에도 쓰는 그 리튬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고요. 조울증 치료에도 흔히 쓰여요.'라는 말은 약을 먹은 지 보름쯤 지나서 조울증인 걸 받아들이고 다시 치료에 전념하기로 했을 때 생각이 났다. 맞아, 그러고 보니 리튬이 그 배터리 리튬이라고 했었지. 신기하네 이걸 조울증 치료에도 쓴다고?


  *리튬의 치료 효과를 과학적으로 처음 밝힌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신과 의사 존 케이드(John Cade)였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난 케이드는 아버지의 직업이 정신과 의사였기에 어렸을 때 정신 병원에서 환자들과 놀면서 시간을 자주 보냈다. 대대로 의사 집안 출신답게 의대에 진학한 그는 자연스럽게 전공을 정신의학으로 선택했다. 케이드에게 정신과 의사로서 전환점은 2차 세계대전이었다.

  군에 입대한 그는 싱가포르가 일본군에 넘어갈 때 전쟁 포로가 되었고, 창이(Changi) 수용소에서 3년 반 동안 지내는 동안 전쟁의 심리적 외상으로 고통받는 동료 군인들을 만나면서 환자의 불안정한 모습이 입대하기 전에 치료했던 조증 환자와 유사한 것에 주목했고,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독소(毒笑; toxin)가 질환을 일으킨다고 추정했다.

  즉 정신질환의 원인을 뇌의 생물학적인 변화에서 찾았던 것이다. 제대 후 고향과 같은 정신 병원으로 돌아온 케이드는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당시 의사들은 소변을 몸과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창으로 여겼다. 케이드는 ‘신체에서 순환하는 화학 물질이 과다해져서 조증이 생기는 것이라면 잉여 물질이 소변으로 배출될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기니피그의 복강(腹腔)에 환자의 소변을 주입한 뒤 반응을 살피는 실험이 거듭되면서, 독소 후보 물질이 요산(uric acid)으로 좁혀졌다. 요산 자체는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케이드는 리튬을 더해 수용성 물질을 만들어 실험을 진행했고, 다양한 조합을 시도하는 중에 리튬 자체도 기니피그에게 주사해봤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발생했다. 리튬을 투여받은 기니피그가 차분해졌고, 자극에 둔감하게 반응했다. 이후 케이드는 몇 주 동안 리튬을 직접 복용하면서 안전성을 확인했고, 조증 환자에게 역사상 처음으로 리튬을 치료 목적으로 투여했다. 케이드는 이듬해 <오스트레일리아 의학회지>에 리튬의 항 조증 효과를 보고했다. 비록 세 쪽의 짧은 분량이었지만, 케이드의 논문은 훗날 이 의학 저널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이 되었으며 정신 질환에 생물학적으로 접근하는 물꼬를 트는 시발점이 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신적 문제라 함은 그 사람의 의지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도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더 늦어졌고 두려웠었다. 내가 고작 이걸 가지고 치료를 받아도 될까? 노력이나 의지가 부족한 탓은 아닐까? 스스로를 검열하고 또 자책하는데 시간을 소비했다.

  그러나 리튬의 발견으로 인해 정신적 문제는 생물학적 문제이며 뇌 과학 영역 및 호르몬의 문제라는 것을 입증해냈다.

  즉, 우리의 어떤 힘든 일은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힘든 일은 의지의 영역 너머에서 일어나 언제 끝을 맺을지 모를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백예린의 노랫말처럼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불안한 마음은 어디에서 태어나 우리에게까지 온 건지. 나도 모르는 새에 피어나. 우리 사이에 큰 상처로 자라도.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우리의 잘못이 아닌 일들이 세상엔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고를 거치고 나서 조금씩 조울증이라는 진단에 대하여 받아들일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용기를 내 질문하였다.

'선생님, 사실 저는 조울증 환자들이 겪는 조증 상태는 그렇게 겪어본 적이 없고 주로 울증 상태에 머물러 있는데, 왜 조울증인가요?'

  그러자 선생님은 '혜진 씨 같은 경우에는 사실 울증 삽화가 더 많은 경우긴 하죠. 그렇지만 정신과적으로 설명드리면 일반 사람이 중간 상태를 머무르는 기분을 유지한다고 보면, 우울증은 중간보다 아래 상태이고 조울증은 중간보다 위의 상태인데, 한 번이라도 위의 상태를 경험하게 되면 조증의 발현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약물을 복용한 지 3개월이면 사실 다 나을 수 없는 상태거든요.

  그런데 혜진 씨는 갑자기 다 나은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지난주 저에게 이야기했었죠. 소비패턴도 갑자기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이었죠. 그런 걸 미루어 볼 때 평소에는 조증이 가려져 있다가 기분을 끌어올리는 우울증 약을 먹음으로써 내재되어 있는 조증이 발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아주 경미한 조증이라도 요새는 인정하는 추세이고 그렇기 때문에 조울증 약 복용을 권유드린 거예요. 약이 독성이 있어 불안할 순 있겠지만, 검사를 주기적으로 하면서 체크하면 괜찮을 거예요'라고 답해주셨다.

  그렇게 그날 나는 조울증이라는 또 하나의 병명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약을 먹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렇게 약을 먹고 안정을 찾는 내가 꼭 장난감 병정이나 핸드폰 혹은 리모컨 같은 기계가 된 것 같다는 생각. 리튬 건전지를 기계에 넣는 것처럼 내 몸에 리튬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잠시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이다. 몸에 연결단자가 있어 충전기에 충전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또 나는 등허리 부분에 충전기 줄이 혈관을 따라 툭하고 튀어나오는 간질간질한 촉감을 느끼는 상상을 한다.

  아니면 단단하고 무거워진 옆구리를 쳐다보면 USB 단자가 생겨 꽂는 순간 띠릭-하고 급속 충전이 되는 건 어떨까 상상하기도 하고. 이렇게 생각하면 약을 먹는 게 비참하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다. 오히려 어릴 때 티브이로 보던 변신로봇이나 초사이언이 된 것 같아 신기한 감정이 든다.

  너무 연하지도 않고 너무 진하지도 않은 연두 빛에 가운데 깊게 파인 선이 그려진 단단한 알약을 보며 오늘도 생각한다. 너를 몸속에 넣으면 건전지나 충전기로 충전을 하듯 나도 에너지를 얻는 게 가능하니? 몸속에 전류들이 돌아다니듯 짜릿짜릿하면서 심장이 불안함으로 두근거리는 것 말고 설렘으로 가득 차서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간질간질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니? 또 가끔은 아찔한 봄기운에 오랜만에 바람 좀 쐬자 라며 겉옷을 걸칠 수 있는 마음을 내게 줄 수 있니?

  불안한 마음이 극도로 심해 차라리 심장을 갈라서 열어봤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 자꾸 안에서 내 심장을 긁고 있다고, 그게 너무 답답하다고 소리치고 싶었는데 들어주는 사람도 멈춰줄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내 에너지를 갉아먹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마냥 걸으며 했던 생각이 있다.

  제발 내일이 오지 않길 바란다고 더 이상 방전되어 영원히 전원이 켜지지 않았으면. 눈을 감았다 뜨면 이 세상에서 나만 사라져 있기를. 그러나 야속하게도 항상 눈을 뜨면 아침은 찾아왔고 세상은 무심하게 돌아갔다. 그러면 하릴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할 수 있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아직도 어떤 날은 나아진 게 없다고 모든 게 신물이 난다고 약을 그만 먹을 거라 선언하기도 한다.

  이 약을 먹는다 한들 내가 나아질 수 있냐고, 충전이 되냐고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하릴없이 걸으며 다음날을 이유 없이 바라지 않던 나와, 숨 쉬고 밥 먹는 것도 죄라고 생각해서 온종일 굶다가 밤에는 눈물 흘리며 목을 매달려고 시도를 하던 나와는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멀어져 갔으면 좋겠다.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저 멀리멀리.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 얼마나 더 충전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럴 때 때로는 나도 충전기가 있었으면 한다. 직접 꽂아보면 알기 쉬울 텐데. 지금 과연 몇 퍼센트 충전 중일까?

  오늘도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며 충전기의 빨간불이 뜨지 않기 위해 또 한 알을 삼킨다.


*사이언스 온 기사 '배터리에만 있지 않아요'... 정신질환 치료물질 '리튬' (2017. 07. 10)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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