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농담 사이를 오가며 오늘도 살아가는 일
2014년 4월 16일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일을 가져다준 날. 나는 안산 고대병원에 있었다. 건강검진 때 폐에 결절이 심상치 않다며 엄마에게 고대병원에서 재검사를 권유했고, 조직 검사를 한 후 그 결과를 기다리는 참이었다.
그때 TV에서는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떠서 안심을 했었더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실 밖 복도가 어수선해지더니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정문으로 올 테니 후문으로 구급차를 받자'라는 말이 얼핏 들렸던 것 같다.
결국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속보가 다시 방송되었고, 아프게도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의 담당 주치의가 병실로 찾아왔다.
'폐암 4기입니다. 말기라 얼마 남지 않았네요. 빨리 치료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집은 원래 하나의 작은 나라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때의 나는 나라가 안팎으로 붕괴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기할 법도 한데 엄마는 하루하루 항암치료를 참 열심히도 받으러 다녔다.
훗날 내가 제일 후회하는 부분이다. 치료 말고 요양을 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후회들. 아무튼 고대병원까지 집에서 걸어서 30분인데, 엄마는 정말 힘들지 않은 이상 늘 걸어가기를 원했다. 간단한 운동이 도움이 된다는 의사의 말을 진심으로 지키고 있었다.
엄마의 살겠다는 의지는 단단했다. 고대병원으로 가는 길목에 나무가 쫙 심어져 있었는데 거기엔 어느새 '잊지 않겠습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와 같은 내가 지나다니면서 언젠가는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한 문구가 붙어있었고 나무마다 노란 손수건이 묶여있었다. 그 물결을 보면서 매주 병원으로 걸어 다녔는데, 나무에 꽉 묶인 그 손수건만큼이나 엄마의 의지는 강력해 보였다.
어느 날은 항암치료를 다 받고 다시 집까지 걸어가는데 엄마 손을 꽉 잡아보았다. 그리고 그때 문득 이렇게 생각했던 거 같다. 내가 훗날 뒤에 참 많이 울겠구나.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그리워서 나는 참 많이도 후회하고 사무치겠구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엄마는 포기를 몰랐다.
미용실에 가서 결국엔 머리를 다 밀게 되어서 나를 보면서 멋쩍게 '혜진아 어떡하니, 엄마 못나서' 그러면 나는 '아니야 엄마는 두상이 이뻐서, 다 밀어도 괜찮아'라고 말하고 그렇게 울어본 적 없을 정도로 뒤에서 펑펑 아이처럼 울었던 날. 그날 밤에도 엄마는 '혜진아 너 졸업하는 거 보고 싶다. 할 수 있겠지? 엄마는 대학을 너무 가고 싶었는데 못 가서 한이 되었잖아. 그런데 네가 대신 졸업을 해준다고 생각하면 너무 기뻐'
그러나 난 졸업까지 1년이나 남은 휴학생이었고, 엄마는 이제 막 치료를 시작한 참이었고, 상태도 너무 좋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미래를 점치기엔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짧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처음엔 같이 경과를 말해주던 선생님이 나만 따로 불러내서 주의를 줄 때, 환우들의 카페에 가입해서 엄마와 같은 케이스를 검색해보고 낙담을 할 때. 나는 점차 가능성을 줄여나갔다. 삶에 대하여 진심인 게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엄마와 같던 방향이 점점 달라졌다. 엄마의 살고자 하는 농도가 짙어질수록, 오히려 나는 옅어지다 못해 희미해져만 갔다. 그래도 꾹 참고 입 밖으론 내뱉지 않았다.
하지만 밤마다 좌절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엄마 없이. 엄마가 죽으면 나도 그냥 따라갈까. 살면서 농담처럼 내뱉던 말들이 있었다. 엄마가 너 때문에 못살아. 내가 죽어야 네가 후회를 하지. 그러면 나도 말한다. 엄마 때문에 나도 힘이 들어. 내가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잖아 엄마.
생각해보면 때로는 죽음에 대해 그리 쉽게 농담처럼 말하던 날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저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꽂기 위해, 인생이 너무 지치는 날 그저 한탄이라도 좀 해보거나 하려고.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이러다 죽겠다 싶으면 인생은 나를 더 앞으로 가라고 채찍질한다. 그리고 이제 삶에 진심으로 살아볼 준비가 됐다 싶으면 인생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없을지도 모른다.
엄마를 보내고 나서 나는 졸업도 하고, 취직도 하고, 때로는 진심으로 죽을 것 같이 굴다가, 또 농담처럼 죽을 것 같다고 얘기하고 넘겨버리면서 잘 살 때도 있다. 그냥 이래저래 살고 있다.
과연 그렇게 열심히 살고 싶어 하던 엄마의 진심을 내가 이해하는 날이 올까?
죽음의 문턱에 선 한 여자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진심과 예의를 지키는 태도를 유지하는 그 마음을 내가 감히 알 수 있을까?
내가 복용하는 우울증 약에는 1/4쪽짜리 공황발작을 방지하는 신경안정제 성분의 약이 들어있다. 그나마 삶에 대하여 최소한의 예의와 진심을 지키기 위해 나는 하루 세끼를 정직하게 챙겨 먹고 그 후에 착실하게 약을 챙겨 먹으려 노력한다. 그녀가 향했던 방향으로 나도 살아보고 싶으니까.
그러다 또다시 친구들 앞에서는 진짜로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 같은 내 마음 따위는 숨기고 '그니까 나도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니까' 하면서 실없는 농담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진심과 농담 사이를 오가며 오늘도 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