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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Apr 12. 2021

Stronger Than Me

비겁하고 나약한 사람


  영국의 천재 싱어송라이터. 소울 재즈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허스키한 보컬. 술과 마약으로 인하여 27살에 세상을 떠나버렸지만 우리에게 큰 음악의 즐거움을 주었던 에이미 와인하우스. 그녀의 노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Stronger Than Me>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항상 이 노래가 생각이 난다. 정해진 리듬을 살짝 빗겨나가는 멋스러움과 노래 위에서 유영하듯 자유로운 그 목소리. 그리고 직접 기타를 튕기며 연주를 더할 때면 멋지다는 말로는 부족한 아티스트이다.

  이 노래는 도입부부터 사람을 녹게 만든다. 스캣을 흥얼거리며 한껏 소울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강렬하게 귀를 사로잡는다. 그리곤 바로 첫 소절이 시작된다. ‘You should be stronger than me(넌 나보다 강해져야 해). You been here 7 years longer than me(여기서 나보다 7년이나 더 살았잖아). Don’t you know you supposed be the man(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거 몰라?’ 우연히도 이 노래를 아빠가 동생과 나를 버리고 새 여자를 찾아 떠났을 때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가사가 참으로 맘에 들었다.  '유 슈드 비 스트롱거 댄 미’

  내가 아주 어릴 때, 유치원에서 아빠와 함께하는 참관 수업이 있었다. 오늘은 엄마 말고 아빠와 함께 요리를 만들어 보자.라는 취지의 수업으로 기억한다. 지금 이 수업을 진행했다면 참 시대착오적인 아이디어로 기획 단계에서부터 엎어졌을 것이다. 여자와 집안일을 묶어버리는 성 차별적 사고 및 가족의 의미를 반드시 아빠와 엄마로 구성된 집단으로 보는 구시대적 발상의 콜라보일 것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새삼 세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때에는 유행처럼 아빠와 요리 수업이 번져가던 시기였나 보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아빠가 참석해야만 했는데, 워낙 해외로 이리저리 출국하는 일이 바빴던 사람이라 전날 못 갈 수도 있다는 의사를 전한 것이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건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는 거다. 나는 사실 오히려 머리가 커지면서 아빠와 말이 통하게 된 케이스라, 어릴 땐 아빠가 옆집 아저씨나 나름 없었다.(물론 지금 또다시 이렇게 될 줄 몰랐지만) 그래서 차라리 엄마와 함께 가길 고대하고 있었다. 아빠와 가서 어색하게 반죽을 빚느니 나 혼자만 엄마랑 있더라도 웃으면서 반죽을 빚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서운한 줄 알았던 엄마는 아빠에게 출국 일정을 변경해 달라고 애원이라도 한 건지 당일 날 아빠와 나는 커플 앞치마까지 야무지게 두르고 반죽을 빚었다. 그때 사진기사가 돌아다니며 아빠와 딸의 추억을 찍어주었는데, 정말 그때의 사진은 누가 봐도 어색해 보이는 투 샷이었다. 둘 다 표정으로 보이는 불편함이 우리 사이의 거리감을 말해주고 있었다.

  거의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끓는 물에 반죽만 떼어내서 툭툭 털어 넣고 있었다. 아빠는 이따금씩 ‘조금 더 작게 넣어’라든지 ‘불 앞이니까 조심해’ 같은 말만 하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어색한 시간을 끝내고 아빠는 바로 인도네시아행 티켓을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엄마는 아빠를 너무 사랑했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나보다 아빠를 너무 좋아해서 질투가 난 적도 많았다. 그날도 엄마는 아빠만을 걱정했다. 바로 떠나는 아빠가 안쓰럽다며 난리였다.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내방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는데, 엄마가 내방으로 와서 의외의 말을 건넸다. ‘아빠랑 같이 있을 때 좀 살갑게 좀 해. 너는 딸인데 너무 말도 없고 다른 딸들은 막 아빠한테 애교도 부리고 했다며. 근데 너 오늘 너무 말도 없고 뚱하게 있어서 아빠가 힘들었나 봐’

  그때의 황당함이란. 아빠와 나의 관계에서 노력한 건 항상 내 쪽이었다.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들은 말은 넌 딸인데 살갑지 못하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지긋지긋했다. 아빠도 사회생활의 관계 맺음은 분명 쌍방으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할 텐데 왜 아빠와 딸의 노력에서는 나만 노력해야 하는가. 아빠라는 이유로 관계에서 이렇게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어도 된다는 말인가. 내가 살갑길 바랐다면 그도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를 아낀다면 나를 알려고 노력하고 관심사나 싫어하는 것과 같이 서로 정보를 공유해 나가는 게 필요하지 않은가? 아무리 가족이어도. 단순히 피를 나눈 이유만으로 친해질 순 없는 것이다. 관계 맺음은 인간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니까. 예외란 없다. 하지만 아빠는 자꾸만 나에게 그 예외를 두려고 했다.

  항상 무뚝뚝한 아빠를 웃게 만들고 말을 이끌어 내게 만든 건 나였다. 그리고 배신을 당해 너무 마음이 아파 다시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니 그가 내게 던진 건 역시나 폭력적인 한 마디였다. ‘너는 아빠한테 어떻게 딸이 그러니? 아무리 그래도 부모인데. 아빠 다른 친구들은 지금 아빠한테 용돈도 주고 그래. 너는 근데 얼굴을 안 보고 산다고?’

나는 예외라는 말을 싫어한다. 최소한 평등하고 공평하길 바란다. 물론 약자를 향한 예외도 있을 순 있다. 하지만 배려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원칙을 무너뜨리고 예외를 만드는 사람들은 비겁하다. 그리고 비겁한 사람들은 대게 약해빠진 사람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저 위로 올라탄 것이 승자같이 보일 것이다. 비리를 저지르고 수십억을 투기해 땅을 사고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꼴을 보면 정해진 원칙을 지키는 게 손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러나 언젠가 잘못 쌓아 올린 기반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과정이 잘못된 사람들은 반드시 흙탕물 속으로 침식되고 만다. 그리고 하나하나 탄탄하게 쌓아 올린 사람들은 그 흙탕물 속에서 때를 기다렸다가 연꽃으로 피어난다. 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쉽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연꽃을 피워내기 위하여 자신의 삶이 바빠도 주변을 돌보며 함께 자라난 사람이다.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돌보기란 쉽다. 심신이 약해빠진 사람은 어느 순간에도 자기 연민과 함께 그게 흙인 줄도 모르고 혼자만 생각하고 뒹굴며 살아간다.

   이렇게 사람이 못됐을까? 그리고 어떻게 가족에게 이럴까? 의미 없는 질문들과 함께 상처를 받으며 항상 생각했다.  아빠는 나보다 약할까. 적어도 나보다  세상에서 몇십 년은  살았는데. 아빠가 강해질  있을까? 그나마 기대를 걸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기대하지 않는다.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다. 다만 깨닫게  것이다. 어릴   수제비 반죽을 떼던 시절부터 아빠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역시 시대착오적인 발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아빠가 반드시 나보다 강할  없는 것이다. 비겁한 아빠는 영원히 강해질  없을지도 모른다. 가사를 바꾸고 싶다 '스트롱거  '. 언젠가 그도 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맞써는 삶을 살기를. 적선하는 마음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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