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통해
망각은 때때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축복이라고 불린다. 세세한 기억까지 모두 붙들고 살아가는 삶과 망각이 허락된 삶이 있다면 어느 쪽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병에 걸려 자신마저 잃어버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망각이 허락되는 삶을 선택하고 싶을 것이다. 지난날의 과오와 아픔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시간은 자연스레 흐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억은 그 자리에 머물러 곁을 떠나지 않을 때가 있다. 바로 어제일 처럼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기억들은 한순간에 그 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도저히 흘러가지 않는 기억들을 생생하게 마주해 본 적 있는가? 벽 너머 바깥이 몇 해가 지나도록, 어떤 계절이 되도록 그저 그 순간에 갇혀버린 느낌.
문을 열고 나가기 위해 망각하려 해도 습관처럼 다시 제 발로 돌아와 갇혀있는 형국일 때. 그럴 때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제멋대로 망각하게 해 주세요. 지난날의 아픔들을 이제는 그만 벗어나고 싶어요.
그러나 우리는 절대 선택적으로 망각할 수 없다. 늘 전부를 얻거나 전부를 잃어야만 한다. 극단적으로 설계된 삶을 바라볼 때. 가끔은 지독하게 설계된 놀이판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게임을 끝내는 방법 따위는 없다. 놀이터를 나오며 내일 우리 또 만나자 같은 행복한 이야기였음 좋겠다. 현실은 언제나 잔혹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 아마 거짓말 안 하고 500번 이상은 봤을 영화이다. 보고 또 봐도 그냥 좋은 영화다. 이유는 없다. 너무 좋아해서 그렇게 돼버렸다. 이 영화는 망각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짐 캐리는 케이트 윈슬렛과 헤어지고 너무 힘이 들어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한다. 그리고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를 찾게 된다. 하지만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 행복한 기억까지 지워진다는 걸 깨닫고 막고 싶어 한다. 미워했던 기억까지 사랑하고 있던 것이다. 그는 기억을 지우는 과정을 멈춰달라고 하지만 기억은 밤 사이에 싹 사라지고, 아침이 되어 케이트 윈슬렛을 다시 만난다. 그러다 다시 사랑에 빠지지만, 알고 보니 둘은 연인 사이였고 기억을 지웠는데 사랑에 다시 빠진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케이트 윈슬렛이 말한다. '대체 뭘 원해요. 우리가 다시 만나도 우린 똑같은 이유로 헤어질 거예요.'
그러자 짐 캐리는 '오케이' 라며 웃고, 케이트 윈슬렛도 '오케이'를 말하고 서로 눈물 나게 웃으며 영화는 끝난다. 이미 너무 좋아해서 이유 없이 좋아하는 영화지만, 그래도 최고의 장면을 꼽자면 바로 이 엔딩일 것이다. 우리에게 신이 왜 모든 망각을 주지 않을까. 원망하는 마음이 들 때면 이 장면을 생각한다. 널 사랑하고 있는 시간에는 미웠던 순간까지 사랑하고 있었을 거야. 나 역시 일부가 아닌 삶 전체를 부정해야 한다면 차라리 아픔까지 가져갈 것이다.
겪지 않아야 할 아픔에 가슴이 아파서 한 밤중에 가슴을 두드려 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온통 더러운 진창에 자신의 삶을 굴리는 비참한 기분에 시달려 피 말리는 기분으로 하루를 버리는 느낌. 그 더러운 느낌이 싫어서 아픔들을 뿌리째 뽑아 흙속에 아무렇게나 묻어버리고 싶지만 그럴수록 함께 흙속에 묻히는 기분이 든다는 걸.
영화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엔딩 장면을 많이들 사랑할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할 수 없는 동경 같은 장면이라 그런 게 아닐까. 아픔까지 사랑하는 것. 애써 망각하려 해도 결국에 현실로 돌아와 끝까지 사랑해주는 것. '라쿠나'가 있어도 주인공들은 망각하지 않고 현실을 살아갔다.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인공들과 똑같이 용기 있는 선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유독 뼈아픈 기억은 망각되지 않고 나를 괴롭히는데 어떻게 껴안아야만 할까. 감히 희망찬 말도 건네지 못하겠다. 너무 깊은 밤에는 곧 아침이 올 거라는 말도 끔찍하니까. 차라리 깊은 눈물을 흘리게끔 어둠에 가려져 있고 싶을 테니. 다만 그 어둠이 나의 탓은 아니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
얼마나 오래 걸려도 증명하면 된다. 잊고 싶은 과오와 슬픔들은 나의 탓이 아니다. 기억 자체를 망각할 순 없지만 탓을 돌리는 건 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픔을 꺼내 천천히 흙을 털어 내 안이 아닌 내 옆으로 분갈이를 하는 것이다. 같이 흙에 뒹구는 게 아니라 가만히 서서 땅을 밟아보는 것이다. '오케이' 까짓 거 묻고서 살아보자. 두 주인공들처럼 눈물이 나도 웃으면서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