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이유로
넌 참 쌀쌀맞은 계집애야. 어릴 때 자주 듣던 소리다. 문장을 하나하나 해체해보면 맘에 드는 어절이 단 한 구석도 없었다. ‘쌀쌀맞은’ 성격이나 행동이 따뜻한 정이나 붙임성이 없이 차갑다.라는 뜻이다. 내성적이고 조용했던 성격의 나는 자라면서 얼마나 붙임성을 강요받았는지 모른다. 중학교 무렵 질색을 느껴 결국에 성격을 연기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배운 연극을 그런 식으로 써먹었다. 지금 극 중 인물을 연기한다고 생각하지 뭐. 연약한 뼈대에 억지로 정감 있고 활달한 캐릭터들을 붙였다. 그 주인공의 서사는 늘 엄마가 좋아할 만한 걸로 써 내려갔다. 점점 쾌활해져 가는 나를 보며 엄마는 기뻐했지만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내 안의 영혼은 말라가고 있었다. 활기찬 척하는 것과 활기찬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계집애’라는 말도 싫어했다. 어린아이를 낮춰서 부르는 말이라는 것쯤은 이미 책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내가 모른다고 생각한 건지 알아도 쓰겠다는 의미였던 건지 조그만 계집애가 잘도 안다 너. 아니면 조그만 계집애가 맹랑하다.라는 말을 종종 내뱉었다. 나에겐 한 살 차이가 나는 외사촌 동생이 있었다. 그 아이에게는 아무도 맹랑하다거나 쌀쌀맞다거나 하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분방하게 의견을 말하면 남자답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여자인 나에게는 꼭 맹랑하다는 표현을 썼다. 어른들은 나이가 비슷한 우리를 종종 비교하곤 했다. 특히나 외삼촌은 시험하기를 참 좋아했다. 집에 가끔 놀러 올 때면 초인종을 누르고 옆으로 숨곤 했다. ‘누구세요?’라고 말하면서 낯선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는지에 대한 테스트였다. 이미 그 의도를 파악한 나는 현관문 렌즈로 벽 끝에 숨은 외삼촌과 엄마를 파악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왜 그냥 문을 열어 주냐고 하면, 렌즈로 이미 보고 열었어. 벽에 몸을 붙이고 서서 숨어있었잖아.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거짓말도 잘한다. 계집애가 맹랑하다 너.
‘참’은 또 어떠한가. 언제나 앞에 붙어 뒷말을 강조해버리는. 낙인을 찍어버리는 그 표현이 싫다. 어른들은 언제나 내가 똑똑하길 바라면서 동시에 한편으로는 적당히 넘어가길 바랐다. 외할머니는 워낙에 세상 물정에 둔하고 깡 시골에서 살아오셨다는 걸 차치하고라도 ‘여자애가’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여자애가 살가워야지. 여자애가 너무 목소리가 크면 못써. 여자애가 그렇게 성격이 너무 드세면 좋지 않아. 똑똑한데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그저 조용히 넘어가야만 한다? 이 문장의 모순점을 나만 느끼는 걸까.
엄마의 장례식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냉정하게 생각해서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장례절차였다. 우리 엄마의 장례식인데 여자라는 이유로 상주가 될 수 없었다. 영정사진과 유골함 모두 남자 외사촌 동생이 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우리 엄마인데 나는 유골함을 들 수가 없는지. 아무리 친척이라지만, 우리 엄마에 대해서 뭘 알고 있을까 그 아이는. 내가 도저히 유골함만큼은 포기 못하겠다고 말하자 장례지도자분은 요새는 친 딸들이 많이 들기도 한다며 나의 의견에 찬성을 해주었다. 그러나 아빠는 ‘너는 여자애가 대체 왜 이렇게 고집이 세니’라고 말하였고 외할머니 역시 ‘다 절차라는 게 있는데 어디 여자가 유골함을 들고 가려는 거니?’ 신물이 났다. 도대체 ‘여자’라는 이유로 안 된다는 게 납득이 안됐기 때문이다. 결국 악다구니를 써서 유골함을 들고야 말았다. 뒤에서 어른들은 수군거렸다. 쟤 봐봐 어릴 때부터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니까. 여자애가 지질 않아.
생각해보면 대학시절에도 종종 기가 세다는 말을 들어왔다. 여자에게 기가 세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욕이 되었던 시절. 그들의 어투에서 은연중에 나를 누르려는 태도가 싫었다. 공모전 준비를 하면서 늘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은 부끄럽지 않게 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애착을 쏟았었다. 같이 팀이 된 남자 선배들은 하나 같이 도움이 되질 않았다. 자료조사를 해오기로 해놓고 왜 안 했는지에 대해 따져 물으면, 농담으로 웃으며 무마하기 바빴다. 그마저도 꾹 참아 넘기고 다시금 어르고 달래서 독촉을 하면 인터넷에서 그대로 긁어온 자료를 가져와서 본인도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른 채 횡설수설 회의에 임했다. 한 번은 계속 뺀질거리던 선배가 집에 급한 일이 있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통보했는데, 알고 보니 학교 근처에서 술을 마시던 일이 있었다. 차라리 마실 거면 페이스북에 게시라도 하지 말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렇게 하기 싫으면 빠져주었으면 싶었다. 기여도 하지 않은 채 공을 나눠가지려 하는 것. 내가 제일 용납하기 힘든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용납할 수 없는 문제에 있어서는 말을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선배, 지금 어디에 계세요? 뻔뻔스럽게 집안일이라고 계속 거짓말을 하는 선배에게 페이스북을 보았다고, 그렇게 하기 싫으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침묵이 이어지더니 미안하다는 말이 들려왔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알겠다고 하고 통화를 끊었다. 그래, 선배니까 더 큰소리를 내지 말자.
그리고 다음날 그 선배 친구들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너 좀 기가 센 거 같아. 아무리 그래도 선배한테 그렇게 함부로 뭐라고 하는 태도는 뭐야? 기분 나쁠 거라고 생각은 안 해? 할 말을 너무 따박따박하더라. 차라리 선을 넘는 발언을 했다면 덜 억울했으리라. 나와 같이 열을 내던 남자후배에게는 아무 말 못 하던 선배가 굳이 나에게만 따로 불러내 말을 하는 것이 황당했다. 그리고 굳이 기가 세다는 표현을 써가며 나를 가만히 응시하던 눈빛. 나의 오해일까. 여자들은 수많은 자기 검열을 하면서 살아간다. 저 눈빛과 저 발언 오해일까. 기분이 나쁘다면 내가 과민한 걸까. 그러나 대게는 그 불쾌한 느낌이 맞아떨어지곤 한다. 그렇게 아니길 빌어도. 그 선배의 눈빛과 발언 역시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뒤에 이런 말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남자 형제들하고 자랐니? 좀 살살해.
결국엔 공모전은 큰 상을 수상하며 마무리가 잘 되었다. 그 뺀질뺀질한 선배는 한 것도 없으면서 시상식에 나와서 꽃다발을 들고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오두방정을 떨고 있었다. 저 선배는 나와 같은 과를 나와서 같은 공모전에서 상을 탔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임금은 더 높게 출발하겠지?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에 착잡한 내가 싫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비난할 사람은 오로지 같은 성별인 여자뿐이다. 남녀 차별적인 발언이 아니라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받는 차별들은 오로지 여성만이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대학 졸업 후 취직 문턱은 너무 나도 높았다.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이면 바꾸겠는데, 이미 여자로 태어났는데 그것으로 합부를 정한다고 할 때는 정말 막막했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였던 나는 직군을 따지지 않고 정말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썼다. 그때 영업직군으로 넣은 회사에서 연락이 와 한 시간을 걸려 면접을 보러 갔다. 말도 똑 부러지고 스펙도 괜찮고 참 좋은데요?라는 면접관의 말에 드디어 된 건가 기대를 품은 순간, 그런데 여자여서 아쉽네요. 지난번 그 남자 면접자 보다 훨씬 좋긴 한데 아무래도 영업은 남자가 더 어울리긴 하죠. 라며 나를 쳐다보는 것이다. 마치 네가 다 좋은데 여자라서 너를 뽑을지 말지 흔들려. 그러니까 더 어필을 해봐 라는 듯이. 수많은 압박면접에도 흔들리지 않던 자존심이 처음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여자라서 더 섬세하게 고객사들과 컨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올라간 입 꼬리가 제발 부자연스럽지 않기를 바라면서 겨우 말을 내뱉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그 뒤에도 혹시 임신 계획은 있어요? 결혼은 언제쯤 해요? 우리는 오래 일할 사람을 원하는데 여자들은 결혼하면 홀랑 나가버리더라고. 정말이지 셀 수 없는 성차별적인 발언들을 들었다. 그때마다 박차고 나갈 수도 없고. 그들의 취향대로 대답을 해주고 나오면 언제나 마음엔 상처가 났다. 아무리 취업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닌 회사가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 내는 거라지만 내가 타고난 것 까지 부정당해야 하는 것일까. 가진 게 한없이 부족해서 탈락하는 거라면 차라리 덜 다칠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한 여성단체에 면접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난생처음 들어보는 면접 질문을 받았다. 혹시 지금껏 여성차별적인 발언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수많은 면접관들의 태도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대학시절에는 참 기가 세 보인다는 말도 들었어요. 그러자 면접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혜진 씨가 참 똑똑하다는 뜻이네요. 요즘에는 똑똑하고 할 말을 다하는 여자들을 보면 기가 세다고 하더라고요? 데미지를 입으라는 의도인 것 같은데, 오히려 칭찬이 아닐까 싶어요. 여성단체에는 최종 합격을 받았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거절했지만 종종 그 면접장이 생각난다.
그때 이후로 괜한 자기 검열은 하지 않는다. 그래, 나는 원래가 맹물이 아니라 탄산수야. 억지로 맹물이 될 필요 없어. 욕망한다고 믿었던 것 중에 사실은 학습되거나 강요되었던 욕망들이 있진 않았는지. ‘드센 여자’, ‘기가 세 보이는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억지로 내 야망을 거세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무구하게 굴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그 선배와 같은 사건이 또다시 일어난다면, 나는 톡 쏘는 탄산수처럼 똑같이 항의할 것이다. 내가 여자라서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이런 여자가 부담스럽다면, 부담스러운 사람이 더 좋은 사람 혹은 더 똑똑해지면 되는 것이다. 탄산수에 김이 빠지는 것을 기다리지 말기를. 김 빠진 탄산수는 맹물만도 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