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이 나면 조각난 채로
산산조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할 만큼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오니 오히려 산산조각 난 것들이 좋아졌다.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겉보기에 그럴싸해 보이려고 애써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서 위태롭게 쌓아 올리는 대신 그냥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는 일. 마음을 진창에서 굴릴 때는 몰랐으나 지나고 보니 알게 되었다. 더 이상 허우적대지 말고 조각난 채로 사는 것만이 진정으로 살아가는 길이란 것을.
조각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홀가분하게 쓰는 중이다. 비록 글의 첫째 줄에서 마지막 줄 까지 어떤 구성으로, 어떤 내용을 담아 완성을 시켜야 할지 매일 같이 전쟁이지만, 하루의 일과 중 글감을 생각하고, 아름다움을 찾으려 노력하고, 때로는 아픔을 깎아내는 마음을 느끼는 일련의 과정들이 힘들지만 즐겁다. 소리 없는 아우성. 교과서 속 역설의 세계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나날들이다. 무엇을 바라지도 않고 그저 써 내려간다. 쓸 수 있는 문장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참으로 다행인 하루가 된다.
글쓰기만큼 가성비 좋은 심리치료도 없을 것이다. 감정과 이성을 적절하게 섞어 지난날을 반추하게끔 하는 과정은 내면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해 준다. 감정이 과잉됐던 순간들을 진창 속에서 하나씩 꺼낸다. 찐득찐득한 진흙 덩어리들을 굳기 전에 얼른 털어낸다. 어떤 순간들은 이미 너무 굳어버려서 떠올리기만 해도 감정이 한 몸처럼 딸려오곤 한다. 언젠가는 그런 순간들은 독한 마음으로 내리쳐 부셔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중 가장 작은 조각만을 지니고 살 수 있도록.
대학교 2학년쯤 진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 엄마는 글 쓰는 것을 말렸으나, 어떻게든 그쪽으로 진로를 잡고 싶었기에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국어국문과를 지원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말했다. 인생은 때때로 짓궂은 장난 같아서 비극이라고.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그 한 곳만 합격을 했다. 대충 점수를 맞춰서 생각 없이 지원했는데 내 미래가 되어버렸다. 그에 응당한 벌을 받기라도 하는 듯 뒤늦은 상실감과 후회가 밀려왔다. 행정학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예산편성에 대해 배우고 정치학을 공부했다. 관심이 없으니 수업시간에 집중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힘들게 등록금을 마련해주는 엄마를 생각하며 억지로 꾸역꾸역 공부를 해냈지만 뿌듯함이라곤 없었다. 내가 왜 여기로 흘러왔는가.
나는 너무 겁이 많다. 애초에 가질 수 없는 사랑인데 잃을까 봐 겁을 내는 사람처럼 항상 뺏길까 봐 불안해한다. 어차피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빨리 알아차렸다면, 도서관에서 행정학 서적을 뒤지는 대신 문학작품을 가까이했다면 지금쯤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좌절감에 그렇게 좋아하는 책도 대학시절엔 거의 읽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이 넌 항상 책을 끼고 살더니 요샌 점점 안 보인다.라는 말에 그저 웃음 지었던 건 쓸데없는 자존심이었다. 좋아하는 일 하나도 지켜내지 못했다는 걸 들키기 싫었던 내 마지막 자존심.
역설적이게도 그 자존심마저 버리고 나서야 다시 글과 책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내가 뭐라고 그렇게 몸을 사릴까. 빈손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어차피 빈손이니까 아무거나 잡고 담아올 수 있잖아. 저 멀리 손을 뻗는다. 청명한 하늘도 푸릇한 나무도 어느새 주황빛을 머금은 홍시 같은 노을도 내 손안에 있다. 입안에 데려오면 달 큰 하게 퍼질 것 같은 낙조의 향연. 거칠 것 없이 손을 뻗어 나의 세계로 가져와 음미한다. 이제부터다. 아직 세상엔 맛 볼일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