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여기에 담아
아직 사랑할 날들이 많아 기쁘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가냘파서 힘이 없는 날에는 가 본 적 없는 유유자적한 강물을 그려본다.
드넓게 이어진 강물 위로 힘차게 낚싯대를 던진다.
포물선을 그리며 강물 위로 쏙 떨어질 때 비로소 안심한다.
이제 힘껏 건져 올리는 일만 남았구나.
바람 불어 궂은날이 찾아왔다.
몰려오는 비구름과 함께 풀들이 세찬 마찰음을 낼 때
미묘하게 바뀌는 대지의 내음을 맡는다.
발끝에 찰방거리는 빗방울을 개의치 않고 서점으로 뛰어가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올 때
풍겨오던 흙냄새를 떠올린다.
흠뻑 젖은 물기가 단단해지기도 전에 읽어 내려가는 글씨들.
머릿속으로 글씨들이 번져오면 저 먼 곳으로 점점 아득해질 준비를 한다.
아득해도 닿지 못할 세계란 없다는 걸 알고 용감하게 닿아보려 노력하는 와중에 먼저 닿은
두 눈의 끝.
그 끝엔 언제나 네가 있었다.
때로는 <해리포터>의 신나는 세계가.
때로는 <밤의 피크닉>의 몽환적인 세계가.
때로는 <반짝반짝 빛나는>의 소담스럽지만 독특한 세계가.
때로는 <비행운>의 묵직하고도 현실적인 세계가.
때로는 <레몬>의 강렬하고도 눈이 부신 세계가.
때로는 <계속해보겠습니다>의 비현실을 이끄는 성실한 한 걸음의 세계가.
때로는 <오직 한 사람의 차지>의 가장 중요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때로는 <일의 기쁨과 슬픔>의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는 이야기가.
그렇게 항상 곁에 있었다.
눈 맞춤을 하면 언제나 묵직한 것들을 건져 올리게 해 주었다.
감아올리는 손길이 긴장되어도 결국 들어 올리면 후회는 없었다.
징그러울 만큼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널 잃지 않으려 애썼다.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고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오로지 널 바라봤다.
나와 같이 얄궂음과 비웃음과 비참함을 견뎌 주는 네가 참 고마웠다.
돌이켜보면 둑이 무너져 내린 날에도 애닳는 마음으로 너에게 포물선을 던졌다.
거세게 몰아치는 물살을 바라보며
오늘은 안 될걸 알면서도 그냥 너를 믿고 강물에 던졌다.
그러면 우습게도 항상 너무나도 쉽다는 듯이 내게 희망을 건져 주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