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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Apr 23. 2021

가냘프지만 있는 힘껏 건져 올리는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여기에 담아


아직 사랑할 날들이 많아 기쁘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가냘파서 힘이 없는 날에는 가 본 적 없는 유유자적한 강물을 그려본다.

드넓게 이어진 강물 위로 힘차게 낚싯대를 던진다.

포물선을 그리며 강물 위로 쏙 떨어질 때 비로소 안심한다.

이제 힘껏 건져 올리는 일만 남았구나.

바람 불어 궂은날이 찾아왔다.

몰려오는 비구름과 함께 풀들이 세찬 마찰음을 낼 때

미묘하게 바뀌는 대지의 내음을 맡는다.

발끝에 찰방거리는 빗방울을 개의치 않고 서점으로 뛰어가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올 때

풍겨오던 흙냄새를 떠올린다.

흠뻑 젖은 물기가 단단해지기도 전에 읽어 내려가는 글씨들.

머릿속으로 글씨들이 번져오면 저 먼 곳으로 점점 아득해질 준비를 한다.

아득해도 닿지 못할 세계란 없다는 걸 알고 용감하게 닿아보려 노력하는 와중에 먼저 닿은

두 눈의 끝.

그 끝엔 언제나 네가 있었다.

때로는 <해리포터>의 신나는 세계가.

때로는 <밤의 피크닉>의 몽환적인 세계가.

때로는 <반짝반짝 빛나는>의 소담스럽지만 독특한 세계가.

때로는 <비행운>의 묵직하고도 현실적인 세계가.

때로는 <레몬>의 강렬하고도 눈이 부신 세계가.

때로는 <계속해보겠습니다>의 비현실을 이끄는 성실한 한 걸음의 세계가.

때로는 <오직 한 사람의 차지>의 가장 중요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때로는 <일의 기쁨과 슬픔>의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는 이야기가.

그렇게 항상 곁에 있었다.

눈 맞춤을 하면 언제나 묵직한 것들을 건져 올리게 해 주었다.

감아올리는 손길이 긴장되어도 결국 들어 올리면 후회는 없었다.

징그러울 만큼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널 잃지 않으려 애썼다.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고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오로지 널 바라봤다.

나와 같이 얄궂음과 비웃음과 비참함을 견뎌 주는 네가 참 고마웠다.

돌이켜보면 둑이 무너져 내린 날에도 애닳는 마음으로 너에게 포물선을 던졌다.

거세게 몰아치는 물살을 바라보며

오늘은 안 될걸 알면서도 그냥 너를 믿고 강물에 던졌다.

그러면 우습게도 항상 너무나도 쉽다는 듯이 내게 희망을 건져 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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