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다가와준 과분한 친절
살면서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과분한 친절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어제는 친구가 2시간 거리를 달려 내가 사는 곳으로 와주었다. 근처 대부도에 방을 잡고 1박을 하여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물보다는 갯벌이 더 많은 바다였지만 아름다운 풍경이라며 즐겨주었다. 한 손 가득 고동을 주워 라면에 넣어 먹겠다고 하거나 큰 소라를 주워 집에 챙겨가겠다고 할 때 잊고 있던 즐거움을 찾은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유치해서 등한시하는 감정들을 누가 뭐라 해도 소중하게 기록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밤에 작은 그 감정들이 버티게 해 줄 것을 기대하면서.
펜션으로 가는 도중에 낚시터가 있어 고즈넉한 풍경을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기도 했다. 이런 풍경이라면 몇 시간이고 낚시를 하는 게 가능하겠다고 말하는 친구의 의견에 동의했다.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편안했다.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완벽한 날씨와 풍경 속에 있었다. 낚시터의 고즈넉한 풍경, 옆에 함께 있었던 친구. 살면서 만나는 눈으로 보는 기적들.
펜션에 도착하니 우리에게 묵을 방을 소개해 주기 위해 사장님이 나와 계셨다. 오는 길에 차는 막히지 않았는지 물어보시는 말투부터가 다정함이 묻어 나오는 분이셨다. 이미 도착 전부터 근처의 관광지며, 마트며 여러 링크를 살뜰하게 챙겨주시곤 했었다. 방을 설명해주시면서 요새 보기 드문 친절함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퇴실할 때 커피가 너무 맛있다며 꼭 먹고 가라는 말투부터, 중간에 일회용 봉투를 얻을 수 있냐고 여쭤봤을 때 한 아름 가져다주신 것, 우리가 가져온 고동은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버려야겠다고 했을 때 속상하지 않았던 것은 마치 엄마와도 같은 친절함 때문일 것이다.
살면서 이렇게 받아도 되나 싶은 과분한 친절을 받을 때가 있다. 내 옆집 이웃이 누군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요즘 시대에 이런 친절을 목격할 때면 생경하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낯부끄러운 마음에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면서 피하려 할 때도 있지만 결국 뒤돌아보면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회사의 미화 선생님도 그러하다. 항상 아침에 인사를 건네면 누구보다 밝은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 하며 인사를 해주시는데, 마스크 뒤에 가려진 표정이 올라간 입 꼬리인 것을 확신할 만큼의 밝은 에너지이다. 가끔은 혜진 씨 이것 좀 봐요. 화분에 새 잎이 돋아났어요 너무 예쁘죠. 하고 보여주실 때면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이전의 나라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면서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작은 생각들을 나눠주는 일이 행운과도 같다고 느낀다. 자신의 관심을 타인에게도 나눠주는 마음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덕목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한동안 방황을 하며 바로 복학을 하지 않고 시간을 가진 후 학교로 돌아갔다. 마음 한편에 이제 뭐 어때 아무렇게나 살아갈 거야.라는 마음 반 그래도 엄마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 반. 항상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 싸움의 결론은 긴 시간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아르바이트를 하며 많은 엄마들을 만났다.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이불도 팔고 가구도 팔고 식기류도 팔고 소품도 파는 그런 매장이었다. 직원 분들 대부분이 엄마뻘이었고 나만 제일 젊은 나이었다. 어쩐지 처음엔 엄마 생각이 나서 울적해지기도 했고, 그 사이에 껴서 이야기를 할 틈도 없어 보여 묵묵하게 일만 했었다. 그러던 중에 나를 살뜰하게 챙겨주신 여사님이 계셨다. 쉬는 시간에 여직원 휴게실에서 혼자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혜진 님! 이리 와서 편하게 등 기대고 쉬어. 라며 자리를 챙겨주시기도 하고, 가져온 과일을 나눠주시면서 같이 간식을 먹자며 살뜰하게 나를 챙겨주셨다. 하루는 같이 마감업무를 하고 퇴근을 하는데 아들만 둘이었던 여사님은 한 때는 너무 딸을 갖고 싶었다며 혜진 님 엄마가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준비를 하니 얼마나 기특하냐며.
생채기가 아무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아 피딱지가 덕지덕지 난 마음에 처음으로 연고가 발라졌다. 어쩌면 엄마가 조금은 나를 기특하다고 여겨줄까. 나만 이렇게 혼자 살아남은 게 창피한 일이 아니라 잘하고 있는 일이 되는 걸까.
그 뒤에는 커피 판촉 아르바이트를 하며 또 다른 이모님을 만났는데 엄마와 많이 비슷한 분이었다. 성정이 여리시고 눈물도 많으신 분이었다. 사실 처음으로 판촉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야생의 세계에 던져진 기분을 느꼈다. 서로 다른 경쟁사끼리 엄청난 눈치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많이 파는 날에는 옆에서 다른 경쟁사 이모가 대놓고 눈치를 주었다. 얘 너는 어린애가 너무 혼자만 파는 거 아니니? 그러나 아르바이트생인 나는 언젠가 그만두면 될 입장이어서 부담감이 덜했으나, 이모는 그런 것에 대해 면역이 없어 보였다.
그러던 와중 어떻게 해서 이야기가 나온 지 모르겠는데, 사실 내가 엄마가 돌아가셨고 아빠가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친구들에게도 말을 꺼내기 전이었다. 타인에게 이야기를 할 일은 영원히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엄마를 닮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모님은 눈물을 흘리시더니 본인도 아버지한테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혜진이 네가 이렇게 살아가는 게 참 잘하는 일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지지 말고 더 맘을 굳게 먹고 해내면 된다고. 나중에 취직을 하게 되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던 날 밖에서 고기까지 사주시며 축하해주신 이모의 따뜻한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감히 받아도 될까 싶은 과분한 친절들 덕분에 여기 지금 내가 살아있다. 스쳐 지나가는 몸짓, 말투, 눈빛 하나가 누군가에게 기적이 된다고 생각하면 나도 더더욱 살뜰하게 상대를 챙기고 싶어 진다.
내가 사는 곳까지 와준 친구와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 사장님이 말씀해주신 커피를 내려마셨다. 그렇게 어제 열심히 맛있다고 설명해주셨는데, 마셔줘야지.라는 친구의 의견에 동의를 하며 커피를 내리니 정말 너무나도 향긋하고 맛있는 커피였다. 그리곤 어제 들린 낚시터 근처의 카페를 들려 가만히 앉아 풍경을 구경했다. 정원을 아름답게 잘 가꾼 곳이었다. 때 이른 단풍나무를 신기해하며 그 아래 앉아서 음악을 틀고 커피를 마셨다. 찾아보니 '출성성 단풍'이라 하여 애초에 빨간 잎이 돋아나는 봄 단풍이 있다고 한다. 친구와 같이 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를 흥얼거리며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파란 하늘을 맛보며 커피를 즐겼다. 아주 먼 훗날 분명 이 시간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동네 단골 밥집으로 친구를 데려갔다. 네가 이 곳에 오니까 정말 신기하다고 하니, 이제 알게 된 지 10년이면 네가 사는 동네에도 오게 되는구나.라고 친구가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만나 어느새 10년이나 시간이 흘렀다. 새삼 긴 시간이 흘러도 곁에 남아준 인연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들에게 나는 충분한 기적이 되었을까? 아주 작은 친절이라도 남길 수 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투적이지만 오래오래 그들 곁에서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출발하는 친구의 차를 보면서 먼 길을 달려 내게 와 준 친구처럼, 기적처럼 내게 와준 친절들을 소중하게 잘 꾸려가야겠다는 봄날의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