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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Apr 26. 2021

사랑하는 나의 전부, 나의 단짝, 나의 모든 것

이 세상 제일 사랑스러운 너를 위하여 쓰는 편지

  나에겐 세 살 터울의 동생이 있다. 그녀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처럼 지냈다. 우리도 여타 다른 자매들처럼 때로는 티격태격하며 자라기도 했지만, 싸운 기간보다 사랑한 기간이 훨씬 많은 사이이다. 그것은 그녀가 너무 나도 사랑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간 웃음 앞이라면 누구든 무장해제 될 것이라 확신한다. 때로는 봄날의 들꽃만큼이나 은은하게, 때로는 초 여름의 쨍한 햇살만큼 화사하게. 기분이 울적해질 때 그녀의 웃음을 마주하게 되면 영원히 이렇게 그저 따라 웃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그녀를 부르는 애칭이 따로 있다. 망망이. 어린 시절 그녀가 가지고 놀던 강아지 인형에서 따온 이름이다. 강아지 인형을 귀여워하는 그녀를 나는 귀여워했다. 가끔씩 그녀는 천진했다. 항상 심각하게 침잠하는 내 곁에서 그녀는 창문을 활짝 열고 새로운 세계의 바람을 불어다 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이제 그만 거기서 나와 언니. 그만 힘들어했으면 좋겠어. 그녀의 무해한 해맑음은 나의 어두운 내면을 중화시켜 주었음이 틀림없다.


  이렇게 그저 해맑다가도 중요한 순간 그녀는 진지해진다. 망망아 너무 힘들어. 불행해서 힘들고, 가슴이 답답해서 힘들어. 그러면 나보다 손이 작은 그녀는 그 작은 손을 최대한 벌려 내 손을 감싸 쥐고는 이렇게 말한다. 언니, 다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 마음이 불안해질 때면 나를 생각해. 내가 언제라도 곁에 있을 거야. 지금은 그럴 수 있어. 너무 감정을 부정하려고 하지 마. 그녀의 진심 어린 위로를 마주할 때면 나는 마치 그녀의 동생이 된 것처럼 마음껏 기대고 싶어 진다.


  한때는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동생에게 기대도 되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품었었다. 한번 물꼬를 트자 그 싹은 점점 자라나 줄기가 되어 내 몸을 휘감았다. 매일 밤 언니 노릇을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상담 선생님께 이러한 내용을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뭐 어때요. 사람은 모두가 기대어 사는 존재인데. 약해져 있으면 보다 더 강한 상대가 보듬어줄 뿐인 거죠. 그걸 빚진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지금은 동생한테 기댈 뿐이고 나중에 혜진 씨도 더 강해지게 된다면 동생을 보듬어주면 될 뿐이에요.'


  그래도 여전히 아닌  같은 생각에 한동안은 상담을 끝내고 돌아오면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시간 대신 혼자 끙끙 앓았다.   언니답게 처리해보자. 혼자서도 충분히 컨트롤할  있잖아. 그러다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던 도중에 과호흡이 찾아왔다. 평소보다 심각하게 찾아온 과호흡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같은 공포를 주저앉았다. 그때 그녀가 달려와 등을 두드려주며 자신의 호흡을 따라오라고 외쳤다. '언니, 나를 따라  힘들어도 그냥 천천히. 겁먹지 말고 . 들이쉬고, 내쉬고. 다시 들이쉬고, 내쉬고' 동아줄을 부여잡듯 그녀의 목소리를  잡고 호흡을 따라갔다. 망망대해에 던져진 나의 구명조끼. 천천히 숨이 돌아올  말을 꺼냈다. '사실 요새  힘이 들었는데, 내가 너한테 기대는  부담이 될까 싶어 말을 하지 못했어. 모든  엉망인  같아. 내가 나답지 못한 것도 싫고, 내가 너한테 언니답지 못한 것도 싫어.'


'언니, 그런데 나는 언니가 내가 없는 곳에서 우는 게 더 싫을 거 같아. 그냥 내 앞에서 울어줘.'


  대부분 혼자서도 완벽한 세계를 구축해야만 진정한 어른이자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들고 어두운 모습은 숨기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대체로 그런 모습들은 나약하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나약한 게 어쩌면 인간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나약한 인간들이 모여 나약해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지지해주는 게 우리가 힘써서 해야 할 일의 모든 것일지도.


  이제 억지로 강한 척은 하지 않는다. 다만, 마음이 힘든 날에는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맘껏 위로를 받는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그녀도 나를 사랑할 테니 지지해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녀는 항상 솔직하고 정확하게 나를 위로한다. 나는 그런 그녀를 사랑한다. 가끔 그녀가 잠든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훗날 그녀도 나에게 그런 기회를 준다면 기꺼이 지지해주고 위로해주겠다고.


  그래서 이제는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짓지 않는다. 다만 고마워하고 아껴주려 한다. 그리고 피하지 않고 그저 같이 살아보려고 한다. 언제까지나 우리가 자매일 수 있도록. 한 명이 사라지는 단짝은 너무나도 슬프니까. 나의 전부, 나의 모든 것, 어쩌면 자신 있게 나보다 널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네가 내게 와준 행운을 생각하면 어쩐지 하루만 더 살고 싶어 져. 염치없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 그냥 사랑한다고 말할게. 사랑해 망망아.


세상에서 제일 친한 나의 짝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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