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통해 집중하는 세계가 있다
사진은 LP, 영화감상, 콘서트 관람에 이어서 사랑하는 취미이다. 사진과 사랑에 빠지게 된 건 대학시절 흑백사진 필름 카메라 동아리를 하게 되면서부터이다. 티브이로만 보고 상상했던 대학시절의 로망들. 그 로망 중에 하나는 공강 시간에 앉아있을 동아리방을 갖는 것이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세상을 보고 싶은 열망이 그때에는 존재했었다.
벚꽃이 만발하는 4월, 강의동을 향하는 길을 따라 무수히 많은 동아리들이 각자 팸플릿을 들고 열정적으로 동아리 홍보를 하던 기억이 난다. 눈을 사로잡는 형형색색의 팸플릿, 약간은 들뜬 목소리들과 활기 넘치는 기운. 그 사이에서 시간이 멈춘 듯 검은색으로 찍힌 흑백사진이 담긴 팸플릿 하나. 그곳에 나는 발걸음이 멈췄다.
<흑백‘사진’ 필름 동아리> 천막 앞에서 친구들에게 나는 여기로 결정했어. 라며 답지 않게 직진을 했다. 사실 본능적인 선택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사진에 조예가 깊다거나 관심이 너무 많다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사진은 어떤 느낌이었냐면 영화 <연애 사진>, 아빠가 나에게 준 입학 선물 DSLR 카메라, 나의 구 오빠인 신화의 김동완이 좋아한 취미. 이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동안 봐온 결론으로는, 멋지니까. 순간을 포착한다는 게 멋지잖아. 빛을 담는다는 게 너무 아름답잖아.
호기롭게 다가가서 가입하고 싶다고 말하자 얼결에 옆에 있던 친구들도 같이 가입을 하게 되었다. 나란히 서서 가입신청서를 작성하는데 웬걸 신청서 란에 가지고 있는 필름 카메라 종류를 써보라 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 ‘필름’ 카메라만 가능해요? 저는 DSLR을 갖고 있는데..
그러자 동아리 회장인듯한 선배는 여기는 ‘필름’ 카메라 동아리예요. 그리고 ‘흑백사진’을 찍고요. 그제 서야 눈에 보이는 것이다. ‘흑백사진 필름’ 동아리.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저는 ‘사진’만 보고 가입하려 했는데.. 하자 한 명이라도 더 신입생을 유치하려는 그 선배는 괜찮아요. 동아리에 남는 필름 카메라가 많아요. 굳이 새로 사지 않아도 돼요. 하면서 다시 가입서를 내밀었다.
나의 최신형 DSLR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필름 카메라의 세계에서는 디지털이 무의미 해진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지. 그래도 가입한 이유는 나에게 가입서를 건네준 그 선배와 같이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예감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과 선배 둘 다를 내가 좋아할 수도 있겠구나.
첫사랑이라고 명명하기엔 어쩐지 너무나도 거창할 것 같다. 그 선배는 내가 대학시절 처음으로 좋아한 사람이다. 알고 보니 동아리 회장은 아니었다. 회장의 절친한 친구였고, 동아리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나와 과가 다른 그는 들리는 소문에 과 후배들에게 인기도 많은 선배라고 했다. 너무나도 소심했던 그때의 나는 말도 잘 못 붙여봤다. 같이 우연히 교양수업을 듣게 되었을 때 ‘선배도 이 수업 들으세요?’ , ‘과제는 제출하셨어요?’와 같이 너무나도 상투적인 인사말밖에 못하는 바보였다. 같이 남산으로 출사를 나갔던 날에도 다른 후배들이 곁을 맴도는 걸 보고 일찍이 포기하고 진심으로 사진만 찍어댔었다. 옆에서 친구는 네가 무슨 사진작가니?라고 핀잔을 주어도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러다 선배는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고, 보다 못한 친구가 이럴 때 마음이라도 표현해야 한다고 핀잔을 주어 간단한 편지와 함께 여권케이스를 전달해준 게 내가 쥐어짜 낸 마지막 용기이다.
참 순수하고 서툴렀던 시절이 있었다. 정말 때 묻지 않은 그 시절의 나를 복기할 때면, 지금이라면 누가 하라고 해도 못 할 그 마음이 얼마나 소박하지만 소중한지. 가끔은 웃음이 난다. 동아리 활동은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처음 사진전을 준비하던 날을 기억한다. 초점, 빛, 구도 3박자를 맞춰서 찍어올 것. 그리고 반드시 풍경사진 하나와 인물사진 하나를 찍을 것. 이것이 주어진 미션이었다. 특히 인물사진은 본인과 본인의 지인과 가족을 제외하고 정말 모르는 인물을 캐치해서 찍어보라는 미션이었다. 그리고 사진전에는 졸업한 선배님들도 오실 예정이기 때문에 사진 통과는 좀 더 까다롭게 이뤄질 것이니 웬만한 결과물로는 통과가 힘들 것이라고.
동아리에서는 반자동이 아닌 수동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손이 떨리면 초점이 나가고, 조리개를 조금이라도 세심하게 열지 않으면 빛의 양에 따라 사진이 날리거나 너무 어둡게 찍히고, 디지털카메라처럼 격자무늬가 화면에 뜨는 것도 아니니 구도를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으면 사진이 삐뚜름하게 나와 버리곤 했다. 충무로 하면 자동으로 영화를 떠올렸지만, 왜 충무로가 영화의 메카인지 몰랐던 나는 동아리를 하면서 충무로에 그렇게 많은 필름 가게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거기서 몇 통의 필름을 샀는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찍고 선배들에게 가져가면 인화도 해보지 않고 필름만 불빛에 비춰보고 이건 초점이 안 맞고, 이건 인물이 뿌옇고, 이건 구도가 이상하고. 이런 식으로 필름 한 롤을 모두 탈락을 시키니 충무로 골목골목 필름 가게 사장님들과 안면을 틀 수밖에 없었다.
슬슬 누구는 한 장씩 통과받아 인화도 시키는데. 나는 언제쯤 인화 실에 들어가 볼까. 나도 인화를 해보고 싶은데. 친구들의 인화 후기를 들으면서 점점 초조해지는 마음을 어쩔 줄 몰라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같이 낙제점을 받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인물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닌 기억이 난다. 풍경사진은 어찌어찌 찍었는데 인물사진이 영 문제였다. 사진을 좀 찍겠다며 촬영을 해도 되겠는지 묻는 것부터 고역이었다. 프로 사진작가도 아닌데 갑자기 찾아가서 사진을 요청하는 게 어쩐지 부끄러웠달까.
그래도 도둑촬영은 안될 것 같아 용기를 내어 물어보면 거절하는 게 태반이었고, 감사하게도 허락을 해주셔서 찍으면 긴장을 한 탓인지 초점이 나가버리곤 했다. 그렇다고 여러 번 찍기 위해 시간을 뺏는 실례를 범할 수는 없었으니까,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친구와 함께 광장시장에 들러 이런저런 시장의 풍경을 찍다가 마약김밥과 빈대떡을 먹으며 쉬고 있었다. 그때 눈앞에 빈대떡을 뒤집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언제 어디를 가든 식당에 들를 때면 엄마를 떠올리곤 했다. 엄마도 지금 이 시간에 주방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겠지. 열기가 넘치는 불 앞에서 손님들에게 내줄 음식을 가열 차게 만들 엄마. 외삼촌은 때때로 그 식당일이 뭐가 대단하길래 가족행사에 빠지냐며 타박하곤 했었다. 그러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는 학원 선생인 네가 할 얘기냐 지금? 아무리 누나가 못 배웠어도 누나의 엄연한 직장이야. 너는 직장 일을 갑자기 함부로 빼고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나는 아니다. 나의 일 이야, 정해진 약속이고. 이렇게 갑자기 가족행사를 통보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엄마의 말을 옆에서 듣다가 속으로 곱씹어 보았다. 대단한 일. 그래, 도대체 뭐가 대단한 일일까? 가장 고된 일에는 –질을 붙인다는 말이 있다. 호미질, 지게질, 바느질. 그중 가장 고된 일은 숟가락질. 먹고사는 일은 다 고되고 중한 것이다. 어디 하나 중하지 않는 일이 없는데 무엇이 대단하며 무엇은 또 홀대하는 일이 되는가. 모두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 내어 물었다. '제가 사진전을 준비하는 학생인데요, 지금 일하시는 모습 그대로 사진을 한 장만 찍어도 괜찮을까요? 제가 딱 사진으로 담고 싶은 모습 이어서요.'
그러자 사장님은 '그냥 이렇게 빈대떡을 뒤집는데 뭐가 사진으로 찍고 싶어요? 이게 사진으로 찍을만한가? 그래도 학생들이 너무 예쁘니까 찍게 해 줄게요. 예쁘게 찍어줘요.' 하며 소녀 같은 웃음으로 웃어주셨다. 셔터를 바쁘게 누르며 빈대떡을 빠르게 뒤집어 내는 모습을 담아냈다. 한 장 한 장 뒤집히는 빈대떡과 바쁘게 움직이는 사장님의 손을 보며 엄마의 치열한 일터를 생각했다. 엄마를 담는 마음으로 그렇게 신중하게 사진을 찍었다. '사장님, 제가 사진전에 걸리게 되면 꼭 인화해서 사장님께 사진 다시 가져다 드릴게요.' 고맙다며 마지막까지 웃어주던 사장님에게 비록 사진을 가져다 드리진 못했다. 시장의 활기참이나 인물이 역동적으로 나온 건 좋으나 흑백 사진이니 만큼 좀 더 정적인 느낌과 인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몰래 그 사진을 인화실에서 인화했다. 그리고 다시 광장시장을 찾았으나 고질병인 기억력(지금까지도 심각하다)으로 수많은 빈대떡집 사이에서 길을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갔었다. 상호를 외우지 않은 걸 아직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결국에 오이도에서 만난 어느 남자아이의 사진과 한옥마을의 처마 사진으로 사진전에 사진을 무사히 출품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참으로 재미있었다. 디지털 사진처럼 바로 초점을 확인할 수도, 결과물을 알아챌 수도 없지만 그래서 한 컷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게 필름 카메라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인화하기 전까지 결과물을 알 수 없는 두근거림. 최대한 실패를 덜 하기 위하여 신중하게 사물을 바라보고 집중한다. 오로지 그 시간엔 찍으려 하는 대상과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만 존재한다. 그리고 무제한 찍을 수 없는 점은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 필름 한 통에 담겨야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퍼즐의 한 조각처럼 내가 보고 있는 세상에서 떼어내야만 한다. 그냥 보고 지나칠 풀꽃들도, 흔들리는 갈대의 바람도 내가 사진으로 찍는 순간 가장 큰 조각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사진을 찍는다는 건 세상을 자신의 세계로 확대하여 보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광장시장에서 나는 사장님을 찍었고 친구는 찍을 게 없다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자고 한 것처럼. 우리는 같은 세상을 보아도 각자 다르게 해석하여 흥미를 갖거나 잃어버린다.
작년 가을 대학교를 졸업하고 오랜만에 혼자서 종로를 들렸다. 출사 때 많이 나가던 청계천부터 해서 을지로 일대를 골목마다 돌아다니며 카메라 하나를 대여하여 하루 종일 사진을 찍었다. 오래전부터 해오고 싶었으나, 일이 너무 바빠하지 못한 것을 하게 되니 참으로 여유로운 하루가 아닐 리 없었다. 평일의 청계천은 너무 한가 로워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흘러갔다. 평화 시장 쪽을 구경하다가 엄마랑 손을 잡고 청계천을 걸었던 기억이 떠올라 비슷한 자리에 앉아보았다. 아직 햇살이 따뜻한 가을의 초입이었으나 다리 밑에 앉아있으니 써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엄마와 함께 청계천을 찾았던 그 날은 여름이었다. 같이 구제시장에서 딱 좋은 치마를 찾았다며 기뻐하다가 남대문 시장에 들러 비빔국수를 먹고, 청계천 다리 밑에 앉아 발을 담그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그러기엔 너무 춥고 물도 탁해졌다는 생각을 하며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도 수많은 엄마와의 추억의 장소가 점점 달라져 가겠지. 그 시간을 나의 세계에 남겨두기 위해 그렇게도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카메라 덕분일까 오랜만에 학교에 들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버스를 타고 학교 근처를 구경했다. 그대로 마을버스를 타고 부암동으로 가서 자주 가던 카페에 들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여전히 그대로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 사진도 좋지만, 이렇게 좀 더 그대로 있어주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곤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쓰인 비석 앞에서 시를 읊다가 남산타워를 찍었다. 필름 카메라로는 남산타워는 담기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게 매력이지 하면서 셔터를 눌렀다. 그 셔터를 마지막으로 필름을 소진하여 카메라를 돌려줄 겸 북악 스카이웨이 길을 걸어서 내려갔다. 큰 플라타너스 잎이 여전히 우산처럼 펼쳐져 있었다. 너도 오래오래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다. 경복궁 역까지 걸어서 내려가면서 대학시절을 생각했다. 아직도 광장시장의 사장님은 계실까. 여전히 치열한 일터의 현장에서 숙련된 몸짓으로 빈대떡을 뒤집으며 활짝 웃어주실까.
4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던 중 회현역 지하상가의 lp점에 들러 신승훈의 <처음 그 느낌처럼>이 들어있는 lp를 샀다. <보이지 않는 사랑>을 찾고 싶었으나, 창고에서 꺼내 와야 한다며 다음을 기약하길 바라는 사장님의 말씀에 다음에 오겠다고 하고 포기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 하루 우울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에 안도한다. 나만의 세계에 집중하는 일. 마음이 너무 힘들 때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아마 그것은 오랜 기간 갈고닦아야 가능할 것이다. 인화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사진과도 같은 것이리라.
인생을 잘 꾸려가고 있는지 아닌지 때때로 우리는 불안해한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는 과정 자체를 부정하기도 하면서. 그래도 결국엔 지루하게 긴 과정이어도 사진 한 장을 담아내듯이, 인생을 지나가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필름을 끼워 넣고, 초점을 맞추고, 조리개를 조절하고, 레버를 당기고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필름을 인화물질에 넣고 태운 뒤 사진이 떠오르는 것을 바라본다.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들은 완성된 사진 앞에서 당연히 지나왔어야 할 일들로 변모한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나날들이 사실은 뚜렷한 초점이기를. 당겨진 레버가, 누르는 셔터가 원하는 한 컷을 만들어 내기를. 바라건대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집중하기를.
*제목은 부암동의 어느 카페에 새겨진 벽화 문구에서 따왔습니다. 직접 찍은 작년 어느 가을 마음이 힘들었던 날의 사진들을 공유합니다. 작은 위안이 된다면 큰 기쁨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