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모순'을 읽고
이소라의 노래는 비와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을 서글프게 만들지만 나는 그 쓸쓸함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비가 오던 어느 여름날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계절 중 여름을 제일 싫어하지만, 여름에는 비를 자주 볼 수 있기에 그나마 조금 덜 미워질 정도로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가 오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오히려 불안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모두가 울적해지는 순간이 편하다. 애써 밝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 적당히 섞이거나, 날씨를 핑계 삼아 기분도 어쩐지 울적하다고 말하면 그만이니까.
아무튼 비 이외에도 영화관에 가서 영화보기를 좋아하고, 전시회장에 가서 그림을 마주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나 망망이는(나의 동생이다) 한 번도 나에게 먼저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거나, 전시회를 가자고 말한 적 없다.
이런 나를 알아달라는 뜻은 아니지만 어쩐지 때때로 너무 서글프다.
진진의 이모가 그러했을 것이다.
진진의 이모는 잘 나가는 사업가 남편과 공부를 잘해 해외유학 중인 자녀,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집.
다 쓰러져가는 집안 사정 때문에 억척스럽게 장사를 해야만 겨우겨우 집안이 굴러가는 진진의 엄마와 전혀 딴판으로 아주 행복하고 따뜻한 일만 가득할 것 같은 인생을 사는 인물이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늘 외로움이 가득하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는 말은 진진의 이모에게 적용될 것이다. 남편은 일에 빠져있어 이모에게 소홀하고, 자녀들은 오랜 유학생활로 엄마를 무시하곤 한다.
그래서일까? 내가 비가 오면 이소라의 노래를 들으며 서글퍼하듯. 오래도록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을 들으며 자기를 알아주길 바라는 이모의 모습이 어쩐지 어떤 심정일지 알 것만 같아 마음이 쓰인다.
내 인생이 평탄하지도 않고, 굴곡지다면 나름 굴곡진데 왜 나는 이렇게 진진의 이모가 이해될까. 왜 이렇게 마음이 아려올까. 왜 자꾸 그 뒷모습이 눈에 아른아른 보이는 것만 같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의 인생이 심심하다는 말은 너무나도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당장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야 마는 진진에게도 동시에 공감을 한다. (진실로 사랑하는 남자 대신에 조건이 더 좋은 남자를 택하는 진진의 결정) 어떤 선택을 하듯 진진 본인을 제외하고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아직도 가끔씩 창밖에 빗방울 따위를 보면서 이소라 노래와 함께 사색을 즐기는 것에 시간을 써버린다. 또한 왜 인지 자꾸 이모의 마지막 편지와 첫눈을 보고 싶어 했던 순수한 마음 그리고 파스타를 찾아다니며 아이처럼 기뻐하던 그 낭만.
그런 모습들이 날 괴롭힌다.
내가 가진 낭만이 현실의 힘겨운 사투를 견뎌낸 엄마의 고된 노동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면 난 진진의 엄마처럼 낭만 따위는 사치여야 하는데, 자꾸만 심심한 삶이 뭔지 알 것만 같아서….
그래서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역시 제목만큼 삶이 모순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삶의 깊이와 어쩔 수 없는 모순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 오랜만에 만난 좋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