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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Nov 22. 2021

놓아놓아놓아,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데이식스, day6의 음악에 대해서



어떤 배우는 여행지마다 향수를 구입하여 그것을 뿌리며 여행을 한다고 하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더라도 향수 냄새를 맡으면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도록. 기억의 매개체는 참으로 다양하다. 냄새, 풍경, 공기의 흐름, 계절, 사소한 소품까지. 우리는 어떤 사소한 기억을 공중에 떠도는 먼지처럼 부유하도록 내버려두다가 어떠한 순간에 벼락을 맞은듯  기억을 한데 모아 먼지를 털어내고 소중하게 살펴본다. 이것을 사람들은 추억이라 부른다. 추억을 위한 매개체로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은 음악 아닐까? 언제 어디서나 쉽게 들을  있고, 들으면 바로 추억을 떠올릴  있는. 가장 탑승이 쉬운 타임머신. 턴테이블-씨디 플레이어-MP3-스트리밍 사이트의 변화를 겪으며 음악과의 만남은 더욱 빠르고 손쉽게 이루어진다. 그렇게 수많은 음악이 한꺼번에 세상에 태어났어도 나와 추억의 매개체가 되어줄 음악은 소수이다. 이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운명에 가깝다. 쏟아지는 음악 차트 속에서 마침  음악을 듣고, 그때에 마침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는 . 이러한 운명적 만남을 우리는 모두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데이식스는 JYP소속의 아이돌 밴드로 늘 댄스 그룹을 내던 소속사에서 최초로 야심차게 나온 밴드 그룹이다. 가사는 멤버인 영케이가 주로 쓰고, 작곡은 멤버들 모두 힘을 합쳐서 진행한다. 밴드의 가장 기본 덕목인 자체제작 음악을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사실 한창 같은 소속사의 갓세븐에 빠져서 팬질을 열성적으로 하고 있었다. 데이식스는 처음엔 그저 같은 소속사여서 음악을 몇번 들어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몇번이 몇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밴드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들의 음악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한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딱 한번만 들어볼 수는 없어. 라는 진부하고도 너무 기세등등해서 얄미운 말이지만,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이 아닐까 싶다.



가장 처음 접한 노래는 '놓아놓아놓아'라는 곡이었다. 데이식스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쉬운 가사로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이다. 작사가의 빛나는 재능이 돋보인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어려운말로 가삿말을 이쁘게 꾸미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솔직하고 담백하게 써내려간 뒤 듣는이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노랫말을 쓰곤 한다. '놓아놓아놓아'의 가사 역시 지극히 일상적이다. '할 말 있어 보자 하곤 아무말 없이 마주 앉아. 지금 머릿속엔 이 말을 해야 하나 마나. 원하지 않지만' 가사 속 화자는 이별을 하기 위해 상대와 마주한 상태라는 걸 알수 있고, 그에 대한 심경을 그저 서술했을 뿐이다. 자칫 평범해 보여서 심심할 수 있는 이 가사는 뒤에 후렴구와 만나며 감정을 폭발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한 없이 끌어안고 있던 널 놔야해. 난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게 없는데. 내가 없어야만 행복할 너라서. 놓아 놓아 놓아.' 후렴구로 갈수록 멜로디는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드럼사운드도 같이 둥둥거리며 커질 때, 소리지르듯 내 뱉는다 놓아놓아놓아. 단순하지만 점층적으로 쌓아올린 스토리와 말하고자 하는 바의 강조를 통하여 가슴아픈 이별임을 명시한다.



사실 데이식스의 매력은 가사가 아니더라도 전 멤버가 직접 연주를 하고 보컬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프론트맨을 한명만 쓰지 않게 되므로 다채로운 음색을 뽐낼 수 있고, 녹음시에 좀 더 밴드사운드가 들리도록 녹음을 한다는 점 등 음악적인 요소도 충분히 매력포인트지만, 내가 음악에 전문적 견해가 있는 것은 아니니 그것은 당연한 디폴트 값으로 두는 셈치고 가사와 나의 추억을 통한 음악의 정리에 집중하고자 하니 양해 바란다.



'놓아놓아놓아'를 나는 취준생 시절 때 주구장창 들었다. 처음엔 노래가 좋아서 듣다가 나중엔 실연하지도 않았으면서 실연당한 것 같은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들었다. 사실 취업을 준비한다는 건 매번 기대를 갖고 차이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나만 진심이었지. 또 나만 매달렸지. 그렇게 슬픈마음을 놓아버리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지었던가.



그리고 그 취업의 길을 지나 회사에 들어가서 가장 많이 들은 노래는 'best part'. 이 노래는 팬들사이에서는 가슴이 벅차는 노래라고 하는 것을 어디선가 들었다. 아마 콘서트장에서 포문을 열었던 곡이라 그런것 같다. 드럼소리로 둥둥탁! 강렬하게 이어지다가 '매일 밤 눈을 감으면 점점 두려워져. 내일이 없을까봐' 라고 시작하는 이 노래는 누군가에겐 그렇게 설렘을 주었지만, 나에겐 역시 위로의 곡이다. 취준을 할때는 회사에 들어가면 다 끝인줄 알았더니, 더 한것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무얼 하든 처음이라 너무나도 서툴렀던 나의 사회생활은 설렘보다는 자괴감을 주었다. 처음이어서 설레고 기대되는 건 혹독한 회사생활에선 존재하지 않았다. 내 밥값에 대해 매일 치열하게 고민했다. 내가 과연 이 조직에서 1인분은 해내고 있는가? 동료들에게 민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매일 밤 눈을 감으면 나야말로 눈물이 흘렀다. 처음엔 내일이 없을까 두려웠고 나중엔 내일이 없어졌으면 해서.



언젠가 데이식스를 청춘을 노래하는 밴드로 칭하는 것을 본 적있다. 그말에 동의한다. 아마 작사가의 신념과 생각이 그곳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 노래를 부르는 주체가 청춘이기에 그럴 것이다. 내가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미래와 과거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항상 지금 이순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픈것은 아픈대로, 슬픈것은 슬픈대로 이야기 하고 그저 털어놓는다. 너무 죽을듯이 치열하게도 너무 미칠듯이 사랑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열심히 싸워야 할것이 얼마나 많은데 사랑마저 절절하게 토해내는 노래들이 버거운 적 있었다. 온 세상이 사랑만이 전부라고 떠들어 대는 꼴이 같잖기도 했고 솔직하게. 그러나 데이식스는 그저 지금의 청춘을 담담하게 노래한다. 아마 세상에 싸워야 할것이 많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한 순간도 나에게 있어서는 의미가 없지 않아. 언젠가 끝일지 모르는 지금이 best part' 라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들이 수많은 곡을 쓰고 수많은 가사를 써내려가는 원동력에 대하여 생각해 봤다. 아마도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하는 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치지 않으려면 미쳐야 된다. 라는 말처럼. 우리는 좌절했을 때 역설적으로 희망을 생각해야만 한다. 좌절하여 끝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반드시 다시 현재로 돌아와 희망을 노래해야만 한다. 이것은 무작정 말도안되는 공상을 펼치는것이 아니라, 청춘이 가진 패기이자 세상을 향한 깡따구에 가깝다. 비록 상처받았으나 다시 해보겠다는 집념. 그것을 응축하는 노래가 바로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라고 생각한다. 시작부터 피아노로 힘차게 달려나가는 이 노래는 듣자마자 경쾌한 에너지를 선사한다.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내려 가자. 너와의 추억들로 가득 채울래'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넘겨 볼 수 있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후렴구를 채우는 자신있는 청춘의 패기를 보고 이렇게 가사를 쓸 수도 있구나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굳이 쑥쓰러워 돌려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때로는 정공법이 되어 가장 효과적인 전달법이 되겠구나. 청춘이 가진 매력인 솔직함과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느껴지는 충만한 자신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쩌면 가장 큰 위로의 방법은 단지 보여주는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슬플 땐 슬픔을 그대로 보여주고 에너지가 필요할 땐 에너지를 그대로 분출해서 보여주는 것. 이 곡이 나온 그 해 여름 얼마나 큰 에너지를 받았는지 모른다.



데이식스를 소개 하기 위한 마지막 곡으로 무엇을 고를까 참 고민하다가 어쨌든 나에겐 상징적이라 결국 이곡을 택했다. 'zombie'. 곡이 나오자마자 메모장에 이렇게 적은바있다. '혼자 남겨진게 아니라는 안도감. 공감과 위로의 같은 말은 안도감이라고 생각한다. 불안하지만 내일을 기대하며 그 불안을 끌어안고 또 하루를 억지로 삼켜내면 반드시 내일의 해는 뜨고야 만다. 고난의 시간속에서는 내일이 온다는 건 덧없고 불안하기까지 하지만, 새로운 내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음에 축복일 것이다. 나는 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하고자 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마음은 유치하지만 가장 필요한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그렇게 겁나지만 한걸음씩 정처없이 걷더라도 걷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느새 거짓말처럼 목적지에 도달해있을 것이다. 내가 걷는길은 언젠가는 지나온 길이 될 것이고 앞에보이는 길은 지나갈 길이 될것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자. 너무 과장하지도, 과시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하게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다 가끔 나처럼 지친 사람을 발견하면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겠지. 솔직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넘치는 위로를 건네준 노래를 만나게 되어 고맙다. 올해 노래로 만난 가장 따뜻한 위로'



치료를 막 시작하던 찰나에 이곡을 만났다. 모든 상황은 타이밍에 따라 각자 큰 의미를 지니기도, 바람 처럼 지나가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때의 나에겐 이 노래가 큰 의미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치료를 시작할 때 마음이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그때는 아득해서 더 나아질 길이 없다 생각했는데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많이 나아졌구나 느낄 만큼 사람이 또 살다보면 이렇게 숨통이 트인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말도안되게 망가져 있어서 하는거라곤 그저 멍하니 공원을 걷는일 밖엔 없었다. 집에 있으면 과호흡이 찾아와 심장이 터져버릴것만 같아서 걷고 또 걸었다. 그때 이노래를 들었다. '어제는 어떤 날이었나. 특별한 게 있었던가. 떠올려 보려 하지만, 별다를 건 없었던 것 같아', '마음껏 소리쳐 울면 나아질까', '뭔가 바꾸려 해도, 할 수 있는 것도, 가진 것도 없어 보여. i feel like i became a zombie. 머리와 심장이 텅 빈. 생각 없는 허수아비.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난 또 걸어 정처 없이. 내일도 다를 것 없이. 그저 잠에 들기만을 기다리며 살아'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에 노래를 듣고 눈물이 났다. 나와 같은 심정을 가진 사람이 또 있었구나. 하루를 어떻게 넘겨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나에게만 주어진 숙제가 아니었구나.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아 멤버들의 인터뷰 까지 찾아봤었다. 그 중 인상깊었던 질문과 답변을 적어본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수많은 'zombie'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 역시, 그 중 하나이기 때문에 여러분도 '하고자 하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인정은 하되, 스스로 자책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나는 왜 이렇지' 라고 본인에게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앨범을 통해 수많은 사람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조금이라도 안심을 하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후렴구 중에 '그저 잠에 들기만을 기다리며 살아'라는 가사가 있어요. 이 구절은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이라도 더 나았으면 하는 희망을 갖는다는 의미였어요.



나의 수많은 청춘들의 한 고비마다 곁에 있어주었던 그들의 음악. 어쩌면 우연히 그냥 타이밍이 맞물려 그들의 음악이 곁에 있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은 우연이었을지도 몰라도, 내가 그들에게 받는 위로가 점점 많아질수록 나는 하나의 운명적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응원하기로 했다. 이것이 내가 데이식스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4호선의 콩나물 시루같은 지하철 안에서 하루를 열며 듣던 노래도, 야근할 때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듣던 노래도, 퇴사 후 지친마음을 달래주던 노래도 모두 데이식스였다. 어떠한 계절이 다가오거나 향기를 맡으면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듯 그들의 노랫말 한구절, 한음 마다 맺혀있는 나의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모든 미련을 놓아버리고 한 페이지의 청춘을 완성할 수 있도록 오래오래 많은 매개체를 남겨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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