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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Nov 23. 2021

종로예찬

그리운것은 그리운대로 마음에 두는 곳


나는 태어나서 30년동안 같은 곳에 쭉 살았다. 나의 고향이자 거주지는 안산이다. 다른 지역으로 떠나본 적이 없으니 가장 익숙한 곳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것은 항상 별개의 문제이다. 그것은 불현듯 찾아올 수도 있고, 가장 오랜시간을 함께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나고 자란 곳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장 마음을 두고 있는 곳은 종로이다. 종로와 인연이 닿은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학교가 마침 경복궁을 지나고 자하문 터널을 지나서 북한산 자락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종로를 크게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그 위치가 좋았다. 대학시절 및 졸업 후 조교생활을 할 때까지 도합 5년정도의 시간동안 늘 지하철을 타고 통학을 했다. 언제나 4호선을 타고 가다가 충무로에서 3호선으로 환승한 뒤에, 경복궁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갈아타는 것이 귀찮아졌다. 그리하여 환승 없이 4호선을 쭉 타고 숙대입구에 내려서 바로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30분간 타는 루트를 애용하게 되었다. 이 루트의 장점은 운이 좋으면 앉아서 창밖을 보며 서울역에서 부터 시청 앞, 광화문, 경복궁을 지나, 효자동 그리고 세검정을 거쳐 학교까지 여행을 떠나듯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단점은 운이 좋지 않으면 발디딜틈 없이 빡빡한 공간에서 쭈구리며 숨을 죽이고 긴 시간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장점과 단점의 간극이 너무 멀고도 멀었지만 숙대입구 정류장에서 부터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차라리 아침에 조금 더 서둘러 나오더라도 종로를 횡단하는 그 시간을 즐겼기 때문이다.



종로의 수수함을 사랑한다. 종로는 너무 화려하게 빛을 뽐내는 것도, 너무 유행을 따라 번화하지도 않는다. 항상 적당하게 변화하고 적당하게 붐빈다. 언제나 정도에 알맞는 그 수월함을 사랑한다. 사람들로 가득찬 강남이나, 항상 유행을 따르는 홍대와 명동은 길을 잃게 만들지만, 종로는 알아서 길을 찾게 만든다. 어딘가에 쫓기듯 발걸음을 향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발길 가는대로 머물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스무살즈음 수많은곳을 돌아다니며 오늘은 쇼핑, 내일은 파스타, 언젠가는 술집. 참 많이도 오갔지만 결국 내 마음은 항상 종로로 돌아왔다. 먼길을 돌아가도 언제나 같은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은 사랑받기 마련이니까.



시간의 흐름이 새롭게 쓰여지는 곳. 종로에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정체나 침체와는 다른 의미이다. 가치 있는 것을 지켜나가는 힘에 가깝다. 광화문을 기준으로 현대적 건물과 옛것이 공존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그 의미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다. 옛것을 배척하지 않으며 새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우는 곳. 그래서인지 종로는 무언가 경이롭다. 군데군데 손때가 묻어있는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잘 모아서 보석함에 넣어놓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 보석들을 보석함에 애지중지 보관만 해 두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바람을 타고, 다른이들의 손길도 타게 만들며 끊임없이 시간의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곳. 그래서 종로는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켜나가면서도 뒤처지지는 않는다. 팥고물을 켜켜이 얹어내 찜기에 뜨겁게 쪄내는 시루떡처럼 조금씩 천천히 긴 세월을 축적해 온 힘이 종로에는 있다. 마음을 내려놓고 고민들을 조금은 느리게 켜켜이 얹어서 쪄낸뒤에 따끈따끈 해지면 한입 베어물어서 없애버리고 싶은 날 종로에 간다.



어수선한 마음을 부여잡고 서촌의 작은 골목 구석구석을 둘러보면 소담스러운 가게들이 그렇게 정겹다. 작은 공방, 고등어 구이를 파는 백반집, 이름 모를 카페들, 몇 년째 버스정류장 근처를 지키고 있는 소품가게, 미술관의 풍경들. 변할 듯 변하지 않는 풍경들은 갈 곳 없는 마음을 다시 현재로 돌려놔준다. 그래서 심란할 때에 사람들의 정신없는 열기로 모든걸 잊고 노는대신 조용히 쉬면서 나를 되돌아 보기 위해 망설임 없이 작은 골목으로 향한다. 그러면 종로는 화려한 불빛과 프렌차이즈 간판에 익숙해졌던 지난날로부터 더할 나위 없는 휴식을 선물해준다. 작은 카페에서 커피한잔을 하며 노란 은행잎을 바라보면 오래된 노랫말이 문득 이해가 간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그러고 보면 이문세의 노래에는 종로가 배경이 된 노래가 몇 있다. 어린시절 엄마가 듣던 카세트 테이프 소리에서 '광화문거리 흰눈에 덮여가고'라는 노랫말속 광화문 거리가 늘 궁금 했었다. 그때의 나는 종로를 이렇게 사무치게 사랑하게 될 줄 알았을까? 그 웅장하고 커다란 광화문 광장을 매일같이 지나치며 때로는 슬프고, 신이나고, 피로하고, 지루하고. 결국엔 때때로 그 모든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과거의 나는 알고 있었을까.



이문세의 옛사랑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이부분이다. '이제 그리운것은 그리운대로 내맘에 둘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대로 내버려 두듯이.' 앞서 말한 종로를 사랑하는 이유들에는 모두 거짓이 없다. 그러나 종로를 사랑하는 이유의 전부라고는 말할  없을 것이다. 이토록 사랑하고  사랑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추억이 가장 많이 담겨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순간도, 아득하게 멀어보여 꿈꾸기만 했던 미래도 모두 살아숨쉰다. 비록 지금도 천천히 빛이 바래지듯 '이제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이라는 노랫말에 가까워 지고 있지만, 덕수궁 돌담길에 남아있듯 종로의 구석구석 나의 모습들은 남겨져있다. 서촌의 작은 카페에도, 광화문의 교보문고에도, 청계천옆 길가에도, 부암동의 산모퉁이 아래에도. 그렇기에 마음이 지칠  마침표를 찍으려던 손을 떼고 그저 쉼표를 찍으며 그리운 추억을 찾으러 떠난다. 모든것이  변해 사라진다 하더라도 슬프지 않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사라지지 않는 추억과 희망 소망 같은 것들을  그릴  있기에 찬란한 시절을 그리운대로 마음에 두면서, 생각이 날때는 생각난대로 두다가 종로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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