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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Dec 22. 2021

겨울일기

사랑하는 겨울 그리고 속죄하는 마음

찬바람, 코트와 목도리. 가끔 눈이 내리면 보이는 하얀 나라의 풍경. 겨울을 사랑하는 이유들.

겨울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 겨울만 찾아오면 나는 눈을 쫓는 강아지처럼 신이 난다.

물론, 딱 한 가지 거슬리게 만드는 이유를 제외하면 말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두통이 심해지는 편이다. 이유가 없는 편두통 때문에 재작년에는 MRI와 뇌 CT까지 찍었다. 결과는 정상이었다. 의사는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커피와 초콜릿을 끊고, 자극적인 것도 먹지 말라는 지키기 힘든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말이 회사생활을 하면서 과연 지켜낼 수 있는 약속인가? 재작년 말, 결국 스트레스의 근본원인이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봄이 되자 그렇게도 괴롭히던 편두통에서 벗어나면서, 역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겨울 여전히 두통은 극심했다. 그제는 평소보다 심하게 오는 바람에 집에 오자마자 속을 게워냈다.

몸이 아프니까 마음이 너무 서러웠다. 누가 제일가는 불효녀 아니랄까봐, 엄마 생각이 절실해지는 건 아플 때다. 이상하게 머리가 아프면 특히 더 생각이 난다. 엄마가 머리에 손을 얹어주었으면 하는 유치한 마음이 샘솟는다. 날씨가 추워지면 두통이 심해지는 건 엄마의 오래된 습관이었는데, 난 왜 습관마저 엄마를 똑 닮아버린 걸까.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편두통은 스트레스 때문도, 자극적인 음식 때문도 아닌 그저 엄마를 닮아버린 모습 중 하나라는 것을.

요새 들어 말하지 못한 말들, 쓰지 못한 글들이 너무 많아서 과부하라도 걸린 건가 싶었다. 가을은 엄마의 기일이 있는 계절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나는 마음에 고여 있는 말들이 많은 사람이 된다. 그런 말들을 속에 품고서 좋아하는 계절로 넘어가는 모순을 괴로워 한지도 긴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가끔 어느 노랫말처럼 우리 노랠 들어도 눈물이 나질 않고, 어디서 습격처럼 엄마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도 발걸음을 멈추질 않는다. 보통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저 가끔 시린 가슴을 안고, 찬바람이 불어와 시린 건지 내 마음이 그러한 건지 헷갈려할 뿐이다. 나의 아픔을 탓할 수 있는 계절이어서 겨울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외로운 건 눈물이 날만큼 시린 칼바람 때문이라고. 머리가 지독하게 아픈 건 그녀와 나의 연결고리일 뿐이라고.

얼마 전 친척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는 엄마가 살아있을 때도 나와 친하지 않았는데, 거의 10년 만에 전화가 와서는 참으로 물색없는 소리를 해댔다. 너의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고 입을 뗀 그녀는, 내 연봉이 얼마인지 대뜸 물어댔으며, 남자친구와는 언제 헤어졌는지 꼬치꼬치 따져 물었다. 취조를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저 순순하게 답을 해줬던 것은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마음 한 켠에 버리지 못한 기대 때문이었다. 정말로 나의 안위가 궁금해서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거잖아. 그렇게 그녀가 예의 없을 리 없잖아. 그러나 그녀는 이어지는 한 시간 내내, 나의 안부가 궁금하다는 말과는 달리, 그녀의 신세한탄을 늘어놓기에 바빴고, 함부로 우리 엄마를 딱하다고 생각했으며, 나는 그런 엄마의 삶의 무게를 눈치 못 챈 철부지 딸로 결론까지 땅땅 지어버렸다.

말 그대로 습격이었다. 입안에선 알지도 못하면서. 라는 말이 맴돌았다. 그날 밤 어김없이 편두통은 도져버렸다. 가뜩이나 많은 하지 못한 말들 목록에 하나가 더 추가되는 밤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것이 아닌가. 당장에 전화로 너무 예의가 없지 않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담당 선생님께 다 말을 해버렸다. 선생님은 가만히 듣더니. 도대체 왜 혜진씨 주변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없냐며, 다들 너무 예의가 없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말미에는 그렇지만, 혜진씨가 하는 방법이 성숙한 방법이긴 하죠. 너무 다 들어준 게 바보 같지 않을까 자책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이 내렸다.  세상이 하얘질 정도의 눈은 아니었지만, 실로 오랜만의 눈이었다. 친절한 금자씨의 마지막 장면에는 하얗게.  하얗게. 라는 대사가 나온다. 하얀 눈을 바라보며 금자씨는 죄를 속죄한다. 가끔 눈을 바라보면  대사가 생각이 난다. 더러운 나의 마음을 씻어주길 바라면서. 가끔 깊고 깊은 폭설 속에 갇히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나는  언니의 말에 화가 났나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녀의 예의 없는 태도는 차치하더라도 아마 정곡을 찔린  창피해서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맘을 몰라줬다는 죄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짊어지고 살아왔다.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누가 언급이라도 하는 날이면 발끈하고 말았더랬지. 죄를 속죄한다는  무엇을 말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가는 . 아무리 괴로워도 삶을 포기 하지 않는 . 그래서 치료를 받고 글을 쓰고 밥을 짓고 살아가는데, 과연 맞는 걸까? 답을 해줄 사람이 없으니, 결국 내가 찾아야 하는 거겠지.  겨울에는  많은 눈이 내려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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