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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Nov 12. 2021

나의 꿈은 언제나 부끄럽다

꿈과 현실의 등가교환

부모님의 장래 희망과 학생의 장래 희망을 적는 칸에 언제나 선생님이라고 똑같은 꿈을 적어서 제출했었다. 나의 칸은 내가 적어낼 해답인데, 그 의미를 모르는 척 학창 시절 내내 따라 적기만 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어떠한 대답을 할지 준비되어 있었다. 유난히 비밀을 주고받기 좋아하던 시절 마법과도 같은 속삭임으로 "나한테만 살짝 말해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를 자주 말하던 어린 시절 친구가 돌아온다면 아마 순순히 답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꿈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그러나 학창 시절을 지나 지금까지도 나의 꿈을 당당하게 선언할 수 없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어쩌면 스스로에게도. 나의 꿈은 언제나 부끄럽다. 아니다, 나의 꿈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나의 꿈 앞에 서 있는 내가 부끄럽다.

이뤄내지도 못할 꿈을 간직한 것이 한없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언제나 나의 꿈은 진심이었으나, 그걸 꿈꾸는 나는 비웃음을 살 것이라 생각하면 아주 작은 한숨이라도 꿈 앞에선 쉽게 쉴 수 없었다. 나의 꿈은 저 멀리 달의 뒤편, 반짝거리는 이름 모를 별자리, 로또 1등 당첨금액, 이 세상 누구보다 나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과 같아서 내가 품기엔 너무 커다랗고 탐스럽다. 그렇기에 가장 큰 변수이자 슬픔이다. 달처럼 밝게 빛나지만, 모양을 달리하는 것. 때로는 야위어버린 초승달처럼 볼품없다가, 때로는 꽉 찬 보름달처럼 삶의 지표가 되어주는. 이렇듯 현실에 따라 꿈은 모양을 달리하지만, 언제나 불 가변적인 것은 여전히 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와 꿈은 지독한 평행선 같아서 단 한 번도 교차점을 만들어낸 적 없다. 그 사실은 가끔 나를 못 견디게 만든다.

나는 가끔 값비싼 외식이 필요하다. 맛있는 음식과 분위기에 취해 돈을 쓰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종종 영화를 보고 음반을 사고 책을 사는 데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론 값싼 코트를 구매하기 위해 봄부터 역시즌 상품을 살펴 30 원대 코트를 14 원대로 구매하며 기뻐하기도 한다. 또한 가끔은 친구들과 매달  원씩 곗돈을 모아 소소하게 펜션으로 놀러 가기도 한다. 그리고 카카오 뱅크 26 적금을 들어놓고 맘에 드는 한정판 LP 구매하며, 당근 마켓에  입는 옷들을 올린 뒤에  , 이만  소소하게 거래를   동네 할인마트에서 두부와 애호박을 사서 된장찌개를 끓이는 데에 쓴다. 이렇듯 나의 현실은 꿈이 끼어들 구석이 없다. 이것은 나와 꿈의 거리를  멀게 만든다. 한때는 욕심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왕창 돈을   있을 거라는 욕심. 분위기 좋은 맛집, 멋있는 코트, 재밌는 영화, 한정판 음반, 친구들과의 시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꿈도 이뤄낼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임을 깨달았다. 현실을 맘껏 사랑하면서 꿈도 이뤄내는  그것은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 어른이 되기 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엄마는 왜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아?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서 하지 않는 엄마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이 세상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 빽빽인데, 알고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는 건 인생에 대한 직무유기 아닌가?

엄마는 그때 뭐라고 답했나. 아마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다 하고 살 수는 없어.

뻔한 대답이어서 시시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땐 꿈만 있었으니까. 현실이 자꾸 깜빡이를 켜고 끼어들려고 하지 않았을 테니까.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을 할 때마다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두부와 애호박 그리고 LP, 때로는 맛집, 콘서트 등 내가 원하는 것들과 노동을 물물 교환하기 위해 나간다.라는 마음으로 애써 집 밖을 나선다. 이러한 삶이 나쁜 삶은 결코 아니다. 우리의 삶을 전개도처럼 쫙 펼쳐봤을 때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을 할 뿐이니까. 현실에 더 집중하는 삶은 언제나 고귀하다. 당장 지금도 글을 쓰면서 다음 주 반찬을 고민하고 있다.  이럴 때면 글이고 나발이고 돈이 되는 것만 쫓아가서 뒷덜미를 확 잡아채고 싶다.

그런데도 왜 미적미적 놀이터를 떠나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꿈 앞에서 서성이며 평생을 맴돌고 있는 걸까. 심지어 너무 소중해서 타인에게 꺼내어 보여주기 조차 부끄러워하는 진심 가득한 맘을 갖고서. 그 이유는 아주 상투적이어서 표현하는 순간 어쩐지 부끄러워지지만,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유일한 어떤 것이기 때문 아닐까. 사랑? 이제 돈으로 사겠어. 정말이지 구태의연하지만 너무나도 명대사인 이 문장에서, 사랑에 희망, 꿈, 소망 단어를 넣어본다. 물론 희망, 꿈, 소망 심지어 사랑까지 모든 걸 다 돈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마음대로 안 되는 내 마음. 내 마음이 포기하지 못하면 언제까지고 지속한다. 그게 꿈이든 사랑이든 희망이든.

꿈을 국어사전에 검색해보면 여러 뜻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또 하나는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작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나는 나의 꿈이 대체로 후자라고 생각하면서 지낸다. 엄마의 말처럼 좋아하는 일이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어떤 일이라 생각하며 그래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고 옅은 위로를 건네곤 한다. 그리고 한편으론 전자의 불씨가 살아 숨 쉰다. '좋아하는 일을 다 하고 살 수는 없어'라는 말속에 '다'에 포함된 것들을 덜어내야 한다면, 기꺼이 욕심을 줄여보겠노라고. 친구들과 만남 대신에 한 줄의 글을 더 완성하겠다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느라 밤늦게 잠자리에 드는 대신에 글감을 더욱 다듬고 문장을 연구하겠다고. 나의 글이 당장 두부 한모, 애호박 하나의 가치도 못 미치겠지만 언젠가 등가교환이 가능한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그런 날이 오면 여전히 부끄럽겠지만 조금은 덜 부끄러웠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담아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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