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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Mar 27. 2021

행복 속에서도 불행을 찾고 불행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

내 고통, 내 아픔과 그저 함께 걷는 이야기.


  최근 가슴이 자꾸 답답하고 쥐어짜는 것 같이 아파서 위내시경을 받았다. 나는 원래가 병원을 잘 가지 않는 성격이다. 왜냐고 물으면 어릴 때 천식을 굉장히 심하게 앓아 호흡기까지 들고 다닐 정도였고, 약은 무조건 한 달 치가 기본이었고 일 년 내내 약을 먹지 않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잔병치레가 많았다. 하지만 어릴 때 아프면 커서 건강하다는 말이 사실이긴 한 건지, 다행히도 커서는 감기로 고생한 적이 손에 꼽았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병원에 대해 쌓인 거부감이 남아있어서 웬만한 일로는 병원을 찾고 싶어 하지 않는 병원 기피증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병원을 가는 것은 참고 참다가 정말 아플 때 혹은 의학적으로 궁금한 부분이 있는데 스스로 진단을 내리지 못하니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이렇게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위내시경 검사는 처음으로 두 가지에 모두 해당되는 경우였다. 현재 조울증 약과 공황장애 약을 먹고 있는데 공황장애로 인해 가끔 공황발작을 경험하곤 한다. 나의 경우에는 전조증상이 우선 가슴이 체한 듯 꽉 막히는 느낌이 나면서 쥐어짜기 시작한다. 그리고 심장이 불쾌하게 빨리 뛰다가 갑자기 한 순간에 과호흡으로 넘어가곤 한다. 과호흡이란 말 그대로 호흡을 과하게 하는 증상인데, 분명히 숨을 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작으로 인하여 숨을 쉬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더 크게 숨을 쉬게 된다. 사람은 평균적으로 1분에 약 12~15번 호흡하는데, 정상적인 템포로 호흡하는 것은 산소가 폐로 들어가고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도록 도움을 준다. 하지만 과호흡이 발생하여 평균속도보다 빨라지면서 템포가 무너지게 되면 신체에서 너무 많은 이산화탄소를 제거하여 가스의 균형을 깨트리게 된다. 이산화탄소 수치가 낮아지면 혈액의 pH가 바뀌고 알칼리증이라는 상태로 이어지며 사람을 기절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언제 올지 모르는 과호흡에 대비하기 위하여 항상 가방 속에 종이봉투를 챙겨 다니곤 한다. 종이봉투에 대고 숨을 쉬면 내가 내뱉은 이산화탄소를 다시 들이마시게 되면서 이산화탄소 보충이 되기 때문에 최악의 상태를 막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명상법, 호흡법, 머리로 그림을 그리는 법 등 순간의 패닉을 막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하지만 역시나 노력한다는 건 그만큼 두렵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이다. 면접을 앞두고 있을 때, 치료를 시작할 때, 아빠에게 다시는 나에게 상처 주지 말라고 말할 때, 엄마를 위해 강해지겠다고 마음먹을 때, 매일 아침 모든 일상생활이 버겁고 인간관계들이 두렵고 힘들지만 벌벌 떨면서도 출근을 할 때.

  모두가 일상이 전쟁 같겠지만 정신과 질환을 앓는 사람들에게는 총탄이 두 배씩은 필요하다는 것. 작은 일에도 온통 갑옷을 두르고 자신을 내던지는 마음으로 임한다는 것. 그것이 진실일 것이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그래서 위내시경을 하기로 맘을 먹었다. 가슴이 답답한 이유가 위나 식도염으로 비롯한 문제인지 정신과적 질환으로 비롯된 문제인지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치료 초반부터 가슴 답답함으로 정신과를 찾았었다. 그때도 어렴풋이 그냥 혹시 불안함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가슴 답답함이 아닐까. 하면서 여러 진료를 하다가 정신과를 찾았었는데 오래된 우울증이라는 판단을 받은 것이다. 처음엔 믿기지가 않았다. 대충 가슴이 답답한 증상만 사라지는 약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이라고 하니 대체 뭘 보고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가졌다. 고작 몇 장의 설문지로 나를 판단하는 것에 대한 신뢰성도 의심이 갔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서도 진료를 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름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정신과를 수소문하여 초진을 하고 싶다고 하였더니 무려 한 달 반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 예약을 했다. 그 사이에 상태가 좋아지면 예약을 취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번째 병원은 지금 꾸준하게 다니며 치료를 받는 병원이 되었다. 초진 때 첫 번째 병원과 달리 과거를 물어보는 질문에 30분 동안 나도 모르게 펑펑 울었다. 나는 아마 살아갈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선생님은 그 '자격'이라는 말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가. 여전히 반반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 사람인지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당신은 당신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말을 도저히 나에게 적용시키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을 아는가.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을 미워했다가 사랑하기도 하겠지.

때로는 자랑스러운 내가 되었다가 때로는 너무 미운 내가 되었다가.

그래도 여전히 가엾지만 사랑스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그렇게 오래도록 발버둥을 쳤다. 어릴 적에 수영장 밑바닥에 가라앉아 물을 잔뜩 먹고 누군가가 구해줘서 겨우 빠져나온 적이 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빠지는 게 두려워 물 안에 들어가질 못한다. 어쩌다 들어가게 되면 아마 발로 개헤엄을 치며 빠지지 않으려 용을 쓰며 바둥바둥 거리며 제자리에서 그저 맴돌 것이다. 그 수영장의 헤엄이 어쩌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나아가질 않는다. 끝없는 발버둥이 계속돼도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한다. 그저 빠지지 않는 것에만 항상 안도한다.

  앞에서 나는 나의 우울증에 대한 진단을 의심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어렴풋이 내가 우울증이란 걸 눈치채고 있었다고 말을 바꿔야만 한다. 그저 인정하기 싫었던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 나는 솔직히 엄마를 증오하고 미워했다. 아빠의 외도로 인한 스트레스를 나에게 폭력적으로 푸는 게 싫었다. 엄마를 가엾게 여겨야지 하면서도 막상 크게 당하는 날에는 그게 잘 안됐다. 물론 나도 딸로서 엄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적이 많았을 것이다. 엄마와 나는 서로 잘 통할 때가 있는 반면 너무 뜨거워 의사소통에 감정적일 때가 많았다. 서투르고 투박했다. 예쁘게 포장하고 사려 깊게 생각해서 정제하는 법 따위는 몰랐다. 엄마는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지 못하는 내가 보일 때마다 날 것의 말투로 가감 없이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감정에 취해 진심이 아닌 말을 하거나 진심보다 과하게 나오는 말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이미 무의식적으로 '자격'을 부여할지 말지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순진하고도 무모했던 시절의 자아는 그 말들을 모두 흡수했다. 그리고 자신과 동일시 여겼던 것이다. 그래 내가 문제인 거지. 역시 내가 자격이 없지.

  솔직하지 못한 마음과 타이밍을 놓친 말들 그리고 제때 알아야 할 일들. 모든 게 조금씩 어긋난다면 그 뒤에 어떤 화를 불러올지도 모르고 꽁꽁 숨겼다. 이건 창피한 마음이야. 내가 이만큼이나 상처 받았다는 걸 말했을 때 무시당하기라도 한다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지도 몰라.

  어떤 진심은 너무 커서 전하기까지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너무 큰 진심은 결국에 숨기지 못하고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대학교 졸업을 1년 앞둔 어느 날 엄마에게 그 진심을 전했다.

  '엄마, 내가 자꾸 사라지는 것만 같아. 나 사실 너무 힘들어. 근데 이유를 모르겠어. 속이 너무 뭉개지는 느낌인데, 자꾸 사람들한테 거짓말을 하는 거 같아. 나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친구들 앞에서는 밝은 척을 해. 그런데 그게 너무 힘들어 이제는. 어제는 동기 집들이를 갔잖아? 그런데 가는 내내 버스에서 손이 떨렸어. 나도 모르게 몸이 땀으로 젖더라. 갑자기 친구인데 볼 용기가 안 나는 거야. 엄마, 너무 무서워. 나 엄마한테 약해 빠진 소리라고 욕먹을까 봐 정말 참고 참다가 말하는 건데, 1년만 휴학하면 안 될까? 그리고 엄마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병원에 가보면 안 될까? 이상한 게 아니라 너무 힘들어서 그래. 나 괜찮아지고 싶어.'

  아직도 정신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남아있어 숨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연예인들의 우울증 이야기 공황장애 이야기를 통해 더 이상 숨겨야 하는 부정적인 병이 아니라 충분이 치료받을 수 있고, 치료받아야 하고. 또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내가 엄마에게 이야기를 꺼낼 시점에는 좀 더 보수적인 시점이었다. 정신과에 대하여 잘못된 편견과 오해. 은연중에 스스로 의식하고 있었으리라. 내 불안이 정신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걸. 그래서 치료가 필요하다는 걸. 하지만 말하길 망설였던 이유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엄마의 반응이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같은 반응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다 참고 살아. 정신력 문제야 좀 맘을 강하게 먹어봐'

  그러나 내가 힘든 걸 엄마가 몰랐듯. 나도 엄마에 대해 알지 못했다.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날 내 앞에서 엄마가 주말드라마를 보며 흘리는 눈물이 아닌 나로 인하여 우는 눈물을 처음 보았다.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엄마가 몰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던 거 같다. 그리고 당장 병원을 알아보자고.

엄마를 증오하고 미워하던 내 마음이 화해하던 순간이었다.

  비록 엄마가 그해에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면서 나의 치료는 저 멀리 밀려났지만. 그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 다시금 살아보자고 마음먹고 치료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의 마지막 고비였던 밤. 엄마는 뜬금없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혜진아 엄마가 미안해. 너 어릴 때 엄마가 너를 너무 엄하게 키운 거, 가끔씩 너에게 상처 주는 말한 거, 너한테 욕도 많이 하고 그런 거. 엄마가 너무 맘에 걸린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너무 서툴렀어. 시간이 많았으면 너랑 더 길게 이야기할 텐데. 미안해. 엄마 용서해줄래?'

  엄마로부터 비롯된 늘 나를 짓누르던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증오. 나에게는 안쓰러울 정도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지긋지긋 해보일 자기혐오. 엄마와 싸우던 날이면 가끔씩 옷장을 열어 줄을 매달아 목을 걸어보곤 했다. 다음날 아침 축 늘어져있는 나를 발견하면 엄마가 전날 밤의 말들을 조금이나마 미안해할까 싶어서.

  그런 생각을 했던 지난날이 철없게 느껴질 만큼 용서는 이렇게 한 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단 말인가.

  왜 하필 엄마와 나는 서로를 용서하는 순간에 이별해야 하나. 엄마의 입버릇이 사실이었나. 너랑 나는 둘이 같이 살지는 못하는 운명인가 보다. 이렇게 너랑 싸우는 것도 정말 지긋지긋하다. 엄마가 죽든 네가 죽든 둘 중 하나가 죽어야 우린 행복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엄마, 엄마가 없는 난 불행해. 그렇다면 나는 엄마가 있는 채로 불행하고 싶어. 우리 가끔 그러다가 행복하기도 했으니까. 지금은 나 혼자 행복하잖아. 엄마가 없으니까 자꾸만 행복하다가도 불행하잖아. 그러면 엄마는 웃으며 말할지도 모르겠다. 뭘 불행해 그러다가 또 행복해지는 거지.

넌 사는 게 쉬운 줄 아니?

거봐 어른 되니까 사는 게 어렵지?


  정신과에서는 나의 공황발작이 무의식이 위험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작동하다 보니 부교감 신경이 깨져서 발생하는 거라고 말했다. 일단 비상약을 줄 테니 복용을 잘하고 공황발작은 길어야 5분 안에 끝난다고 절대 죽지도 않으며, 남에게 미쳐 보이지도 않고, 큰일이 나지도 않을 테니 유념해두라고 하셨다. 그 생각만으로도 덜 불안해질 거라며. 그리고 내과에서는 위내시경 결과가 깨끗하다고 아무 문제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과를 받았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모두 약한 역류성 식도염 정도는 가지고 있으니 약을 먹어보자고 하셨다.  결과적으로는 내 가슴 답답함의 원인은 위의 문제인지 정신적 문제인지 아직 정확하게는 모른다. 일단은 위의 약과 정신과 약 모두를 먹어보기로 했다.

  야생동물들은 적이 나타나면 도망가거나 죽이거나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두려움의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허상이거나, 과거의 기억, 여러 감정들, 혼재된 기억, 스트레스  당장 죽일  없는 것들로부터 받는 공격이 많아지현대사회로 오면서 죽이지 못하고 도망가거나 숨다 보니 공황장애와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겪게 되는  같다. 어느 밤에는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면서 여러 상처들을 죽이지도 잊지도 못하고 발목이 잡혀 오도 가도 못한다며 자책을 하겠지만, 자연스러운 일이 리라. 단순히 적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죽이며 살만큼 삭막한 야생의 세계가 아닌 사람들이  비비며 살아가는 세계가 아니던가.

  도망치는 것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정답이다. 반드시 아픔을 정복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죽이거나 맞서지 못할 바에는 사나운 아픔이 지나가기까지 잠시 동굴에 들어가 기다리거나 숨는 것도 이기는 방법이다.

  그 사이에 분명 행복하면서 불행하거나 다시 또 행복하거나 그렇게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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