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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Mar 27. 2021

나만의 한 칸을 갖고 싶어서

나를 위한 이기적인 공간을 꾸려가는 삶.


같은 자리를 계속 도는 남자가 있다.

앞으로 나아가진 않고 그저 같은 루트를 네모나게 네모나게 계속 돌고만 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자기 집 옥상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비록 남들 눈엔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 보여도

저 남자는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건강해질 것이다.

햇살에 적당할 정도로 까맣게 그을린 남자의 팔뚝을 상상한다.

강렬한 빛과 맞서며 남자는 성장할 것이다.

속력을 냈다가 잠시 걷기도 했다가 그렇지만 멈추지는 않으며 네모난 한 칸을 정확하게 그린다.


반복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익숙함을 권태라고 생각하는 것을 경계한다면

익숙함은 자양분이 된다.

그 자양분으로 남자는 오랜 시간 맴돌아도 숨이 차지 않을 것이다.


지난밤 너는 나에게 이기적으로 살라고 말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그 말을 마음으로 이해했다.

화살이 과녁에 닿듯 내 마음에 닿았다.

하지만 이해와 실행은 별개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 겁이 났다.

그래도 맘을 강하게 먹어보기로 했다.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는

뻔하디 뻔한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엄마를 본받기로 했다.

옥상 위의 남자처럼 한 칸을 갖고 싶어서.


누군가에게는 고된 하루 일과 뒤

편안히 몸을 뉘일 방 한 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사랑을 초대할 마음의 한 칸, 누군가에게는 끝내 말하지 못했던 한 칸.

나에게는 이기적인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 들어갈 공간인 한 칸.


이 세상에 계절만큼 정확한 것이 있을까.

따스한 바람은 정확하고 명확한 발걸음으로

우리에게 찾아오고 있다.

그러면 나도 옥상 위의 남자처럼 햇살에

적당할 정도로 몸을 그을리기 위해

밖으로 나갈 것이다.

계절만큼이나 정확하고 명확하게 한 칸을 그린 뒤

그것을 고독이라 부르지 않고 독립이라 부를 것이다.


나를 위해 이기적으로 살라고 말해준 친구에게,

우리가 언제까지고 우리 일지 모르겠지만.

수년 뒤에 오늘 아침을 그리움으로 남겨두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너의 표정, 손짓, 눈썹, 입술 모든 걸 기억하면서 진심은 때로 눈에 보였었지 하고 생각할 것이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진심과 모순되는

나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한 칸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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