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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Jun 18. 2022

1. 발현



그녀의 가슴에는 한가운데에 언제부터인지 빨간색 돌기가 솟아났다. 신경이 쓰여 그 부근을 자꾸 만지작거렸는데 알레르기도 뭣도 아닌듯한 모양새였다. 어딘가 심지어 딱딱했다. 심지가 굳게 내려와 박힌 느낌? 아무튼 더워지는 날씨에 옷차림이 얇아져 가는데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한 가운데가 뿔처럼 튀어나와 옷을 뚫어 버리는 건 아닌지. 그녀가 제일 걱정했던 것은 이게 어떤 병일까? 치명적인 것은 아닐까? 보다도 남들에게 가슴 한 가운데에 이상한 뿔을 가졌다고 손가락질을 받으면 어떡하나. 그 생각 하나 뿐이었다.

그녀가 다니는 직장은 소문이 빠르게 돌았다. 소위 말해 점심시간에 영어회화 책을 피고 있으면 ‘아 김 대리 이직준비 하는 것 같던데?’ 로 돌아오는 그런 수준. 소문의 증폭이 크다는 건 정말 그녀를 지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그래서 더더욱 그녀는 이제 뿔이 되어버린 돌기를 철저하게 숨기기로 결심했다.

‘날씨가 진짜 미쳤나봐!’ 옆 팀 박 주임이 호들갑을 떨며 오늘 너무 더운 것 아니냐며 점심 메뉴를 냉면으로 전격 수정해야겠다고 외칠 때 그녀는 속으로 냉면은 별로 싫은데.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어머! 너무 이 날씨에 아직도 옷이 두꺼운 거 아녜요? 왜 이렇게 꽁꽁 싸매고 다니세요!’ 박 주임이 그녀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순간 멈칫하다가 ‘제가 추위를 유독 많이 타서요.’ 라고 답변하자 주변에서 농담조로 ‘혹시 온몸에 문신이 있다거나? 가려야 할 게 있는 거 아냐?’ 또 다른 사람은 ‘아 그런데 너무 이미지랑 안어 울리긴 하네요.’ 이제 슬슬 나가시죠. 누군가의 말과 함께 컴퓨터가 하나둘 꺼지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향할 때 그녀는 굳은 듯 자리에 못 박혀 있었다. 가리고 싶은 것. 숨기고 싶은 것을 진짜로 지녔기에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긴장한 탓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점심은 최악이었다. 식초 통은 오래 되서 어쩐지 끈적거렸고 위생에 민감한 편이 아닌데도 차마 사용하기 싫을 정도였다. 냉면은 생각보다도 더 미지근했으며 더위를 가실 맛도 뭣도 아닌 맛이라 오히려 돈이 아까워졌다. 그 와중에 긴장까지 제대로 했으니 애써 넘기지 못한 면이 체해버린 건 당연한 결과였다. 무의식중에 가슴께를 팡팡 치며 걸려버린 냉면을 내리려 하다 뿔에 찔려 아찔한 것도 덤이었다. 옷이 살짝 구멍이 난거 같아 그녀는 더 조급증이 생겨버리기 까지 했다. 결국 맨투맨 안에 티셔츠까지 덧대 입고 땀을 흘리며 일을 하다가 어디 몸이 안 좋은 거 아니냐며 팀장에게 한소리를 듣고는 반차를 쓰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한산한 지하철 칸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깊은 고민에 빠져 생각을 하는 그녀의 얼굴은 다른 누군가가 보기엔 아주 중대한 이지구의 운명을 짊어진 사람이 아닐까? 싶게 비장해 보인다. 어벤져스의 한명처럼, 세상을 구할 백신을 개발한 연구원처럼. 작은 일이라 생각하며 넘길 수 있으나 결코 작지 않은 뿔에 대하여 생각하며 그녀는 오늘은 이렇게 넘겼으나 내일은, 내일 모레는, 또 다음은 어떻게 넘기면 좋지. 생각에 골몰하다가 너무 긴장한 탓인지 졸음이 밀려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선잠에든 그녀는 꿈 내내 뿔의 정체를 숨기려 아등바등 애쓰다가 결국 들켜버리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꽤나 많은 장소를 옮겨 다녔는데, 옮기는 족족 결국엔 결말은 같았다. 꿈에서 깨자 그녀는 차라리 당장에 뿔이 있는 가슴을 내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붙잡고 사느니 속 시원하게 정체를 밝히고 싶었다. 내가 누군지. 정말로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회사가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어딘가 어수선한 사람들의 시선, 묘한 기대감 어린 열기, 갈무리 되지 못한 말들이 허공을 갈랐다. 그녀는 주변의 말들에 귀를 기울이려다가 해석하기도 지쳐 그녀답지 않게 박 주임 에게 먼저 질문을 건넸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아, 그 위층에 경영지원팀 유 대리님 아시죠? 그분 퇴사 소식에 다들 난리가 났네요.”

경영지원팀 유 대리. 근속연수가 올해로 4년차였던가? 손도 빠르고 일처리도 꼼꼼해서 평판이 좋았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최근엔 결혼을 하게 되어 타부서지만 5만원인가 부조도 했었다.

“갑자기 퇴사를 하시네요?”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암호를 입력하며 그녀는 대충 퇴사사유를 넘겨짚어 보며 질문을 던졌다. 회사에 질릴만한 시기였는가.

“바로 그 퇴사 사유 때문에 난리잖아요. 뿔. 드디어 우리 회사에도 올게 왔어요. 유 대리님이 외계인 1호가 될 줄이야. 진짜 신기해”

박 주임의 어딘가 들뜬 말투가 그녀에게 벼락처럼 꽂혔다. 순간 책상위에 올려둔 텀블러가 쓰러져 아침에 갓 내린 커피가 보기 좋게 그녀의 발등을 적셨다.

“어머, 진짜 놀라셨나보네!”

까르르 웃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순간 공포의 사이렌 소리처럼 그녀를 습격했다.

젖어버린 바지를 세탁한다는 핑계를 대고 쫓기듯 화장실로 온 그녀는 문을 걸어 잠그고 변기위에 앉았다. 나 말고 뿔이 한명 더 있었단 말이야? 혹시 아직 꿈인가? 볼을 꼬집자 아픔이 여실히 느껴졌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그녀가 저 멀리 세면대에서 손 씻는 소리에 불에 덴 듯 정신을 차린다. 곧 이어 들려오는 대화소리.

“지금까지 잘도 속이고 인간인 척 다녔더라 근데?”

“그러게 말이야, 쉬운일이 아닐 텐데. 일단 그 괴상망측한 뿔부터 처치곤란 아닐까?”

“아내는 외계인인걸 알고 결혼했나? 난 결혼식도 갔다 왔는데 하객 중에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더 자세히 볼 걸 싶었다니깐!”

“하긴 그것도 볼만 했을 텐데. 남자 쪽 지인은 그쪽일 테니. 그나저나 사장도 바로 사회적 체면 생각안하고 해고통보를 하더라? 예상은 했지만”

“어휴 근데 어떻게 다니게 하겠어. 은근 그거 까다로워. 지킬 것도 많고 중간 중간 쓸데없는 필수 교육만 늘어난다고”

대화를 끝으로 발소리가 멀어진다. 처치곤란. 사회적 체면. 까다로움. 단어를 곱씹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뿔을 매만졌다. 어떡하지 이젠.

본격적으로 외계인과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로 공약한지도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전 세계적인 추세였기에 인도적 차원에서만 받아들인 것이지, 근본적 해결책이 나온 것이 맞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은 끊이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숫자가 아직까지 너무 소수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지구상의 외계인은 그 비율이 적은건지, 아직도 숨어 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인간행세에 능했다. 어쩌면 밝혀도 돌아오는 것이 핍박과 따가운 시선이라면 밝히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정부가 맨 처음 우리도 외계인을 인정하고 그들을 위한 법적 제도 마련 및 행정서비스를 제공해야함을 주장했을 때 그들의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

1. 지구상에 불시착 한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 하나 된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과 인정을 표한다.

2. 공식적으로 밝혀진 그들의 발현은 외계인-외계인 혹은 인간-외계인 사이에서 가능하다.

3. 인간-인간에서 발현된 외계인은 아직까지 그 사례를 찾지 못했다.

4. 그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에 대하여 깊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기업과 시민사회 모두 협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4번에 해당하는 사항으로 정부는 외계인을 채용한 기업에 한하여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원금은 한 명의 외계인을 채용했다고 해서 지급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부가 말하는 소수는 어느 정도의 기준이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외계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왔었다. '뭐 짝이라도 맞춰서 손잡고 입사해야 지원금을 준다는 건가? 이러니 많은 기업에서도 채용에 소극적이지 않은가? 우리도 굳이 정체를 밝히기 싫은 건 당연한 것이고' 혹시 최근에도 외계인이라는 이유로 바로 부당하게 해고 통보를 받은 사례가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 커뮤니티에 로그인을 했다.

그녀는 이미 우수회원이었다. 뿔이 발현되기도 한참 전부터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언젠간 이렇게 발현될 줄 알았다는 듯 은밀하게 커뮤니티 활동을 해 온 이유. 그녀는 센터출신 이었다. 그녀에게는 뿌리가 부재한다. 부모도 형제도 없이 세상에 혼자 뚝 떨어진 존재. 뿌리가 없다는 것은 정체성이 확립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출발선이 말끔하게 지워진 운동장위에서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달리고 있는 기분. 그 동떨어진 기분은 살면서 종종 폭풍을 몰고 왔다. 센터의 친구들이 인간이든, 외계인이든 본인을 정의 내릴 때 그녀는 언제나 혼자였다. 드넓은 우주에 알아서 혼자 태어날 수도 있는 걸까? 가족이 없는 사람이 혹시 존재하려나? 쓸데없는 상상을 해 본 적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나 어쩌다 마음이 휘몰아치는 날이면 불안감이 몰려왔다. 나의 부모 중 한명이 외계인이어서 나도 언젠가 발현되는 것은 아닐까?

굳이 따지자면 눈에 띄는 게 싫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복잡한 쪽이 되기 싫었다. 절대다수 속에서 색채를 잃은 채로 특색도 의미도 없이 묻혀가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정부가 함께 가는 사회를 약속하던 날 그녀는 하루를 꼬박 앓았다. 그리곤 커뮤니티를 가입해서 자신과 같은 사례를 찾으려 애썼지만, 모두가 뿌리가 있었다. '우리 엄마가 외계인인데 저는 아직 발현이 안됐어요. 영영 발현이 안 되는 경우도 있나요? 너무 불안해요.' 혹은 '저희는 다 외계인 가족인데, 얼마 전 등록 증서를 발급받고 주변사람 들에게 공개했어요. 생각보다 후련해요.'

그런 글들을 읽어 내리며 생각했다.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과 알 수 없는 억울함은 어떡해야 하는지. 몇 번이나 글을 써서 본인의 처지를 이야기 해볼까 싶다가도 상상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꼭 꿈을 꿨다. 인간도 외계인도 아닌 당신은 도대체 누구냐며 모두가 자신을 힐난하는 그런 꿈.

오늘 점심은 백반 집에 가자는 팀장의 말을 듣고 그녀는 난색을 표하며 속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식사에 빠지겠다고 답했다. 굳이 차를 타고 10분 거리로 나가야 하는 백반집 으로 가자는 팀장의 속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반찬의 간도 맞지 않고 위생도 별로라며 욕하는 그 백반 집을 팀장은 꼭 회사의 이슈가 터질 때 마다 팀원들을 데려가려 했다. 오늘도 사내 사람들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곳으로 가 유 대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겠지. 상상하자 어쩐지 속이 메스꺼워 졌기 때문에 식욕이 뚝 떨어지고야 말았다.

소화제를 사다 줄까 묻는 박 주임 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하고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유 대리와 절친하지도 않지만 그의 퇴사가 이렇게 맘에 걸리는 이유에 대하여. 얕게 깔린 그 죄책감에 대하여 떨치려 해도 날파리처럼 그녀의 근처를 배회하며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알고 있었는데도 퇴사할 때 같이 나서주시진 않더라고요. 사장이 고민하는 눈치였던 것도 알았어요. 한명만 더 있어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을 테니, 저 혼자만 품고가기엔 오히려 회사 차원에선 부담스러웠겠죠. 그래서 같이 나서서 이야기 해주고 함께 해줄 수 없겠냐 물었더니 힘들겠다고 하더라고요. 서운했지만 한편으론 이해도 갔어요. 전 잘 모르겠어요 제도나 사회가 아직 문제가 있는 거겠죠? 개인에게 탓을 돌리고 싶진 않네요.

부당해고 사례를 찾아 봤을 때 나온 커뮤니티의 글이 그녀의 속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유 대리님의 퇴사를 내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사실 저도 유 대리님과 같아요. 다시 한 번 제고해주실 순 없는 건가요?   

-

"점심 드시러 안 가세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니 유대리가 박스를 들고 서있었다. 아마 짐을 싸서 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오래 일했는데 같이 밥 한 끼도 안 먹고 바로 나간다던데, 그건 좀 너무 하지 않나?' 오전에 들렸던 말들이 진짜인 것 같았다.

"지금 짐 챙겨서 가시는 건가요?"

그는 목 근처를 민망한 듯 쓸어내렸다. 목에 돋아난 빨간 뿔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항상 풀을 먹인 듯 깃이 빳빳한 셔츠차림을 고수 했는데, 오늘은 편안한 티셔츠 차림이었다.

4년간의 시간이 잔뜩 담긴 상자를 들고 있는 그의 표정은 읽을 수 없는 감정이 있었다.

어떠한 시간은 단 한 상자만으로도 다 담겨버릴 수 있는건가?

어쩐지 괜히 울컥해지는 마음을 숨기며 그녀는 한마디 더 말을 건넸다.

"정말로 같이 식사도 안하시고 그냥 바로 가세요?"

"네, 뭐 저야 아무렇지도 않고 괜찮은데, 어쩐지 좋게 나가는 건 아니어서 다들 불편해하시는것 같길래요"

애써 쾌활한 척을 해서 상대를 더 기운 빠지게 하는 어투는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이 진심같이 보이는 담백한 말투였다.

"시원 섭섭하시겠어요."

"정말 처음으로 말씀드리는 건데요, 사실 시원 만해요."

그리곤 아주 활짝 웃었다. 원래도 웃는 게 시원시원한 그였지만, 여태껏 본 미소 중 가장 시원한 미소였다.

간만에 여유 있게 일 생각안하고 여름휴가를 즐길 생각을 하면 오히려 신이 난다고.

어쩌면 강제해고가 아니라 자진퇴사인걸까? 자신의 정보를 의심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리자 언젠가 밥 한번 먹자며 예의 그 시원한 미소를 보였다.

맞잡은 손을 놓으며 그녀가 생각했다. 분명 흩날리는 바람같이 흔하디흔한 지키지 못할 이별의 말인데, 왜 그와 밥을 먹는 장면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릴까?

-



외계인을 꺼려하는 이유는 사실 많고 많았다. 외형만 봐서는 인간과 별다를 바가 없어 사실 구별이 불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생김새로 인한 불편감은 아니었다.

UFO를 타고 내려와 초록색 빛을 내뿜으며, 눈은 어딘가 커다랗고, 얼굴은 역삼각형을 비틀어 놓은 듯 하고 손은 개구리 모양.

이런 것들이 바로 미디어의 폐해 중 하나였다. 외계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아주 저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사실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외계인의 모습. 즉, 옛날 영화나 미디어로 접한 모습은 업데이트가 한참이나 되지 않은 모습이다.

마치 박물관전시된 고대 유물처럼 박제된 모습에 불과했다.

그들은 엄청난 초능력을 맘대로 발휘하지도(초능력을 부여받는 외계인은 소수에 불과하다 심지어) 하늘에 떠다니는 은반 물체를 타고 내려오지도 않는다.

한 때는 지구로 착륙하기 위해 사용했으나 대부분의 외계인이 지구로 이주를 완료한 지금 상황에선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운송수단이다.

마치 말을 타고 서울 도심 한복판을 달리거나 택시가 아닌 가마를 잡으려 어플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소수의 삶을 알아달라고 한들 다수의 삶에 맞춰진 사회에서는 알 필요도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세상은 늘 많은 편이 이기는 게임이다.

많은 쪽이 때로는 부패해있어도, 이기심에 가득차거나 분노나 원망만 남아있어도.

많은 편은 늘 승자가 되고 승자의 이야기만을 경청할 시간을 준다.

그렇기에 소수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차별 없이 만든다는 것은 개소리였다.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그녀를 자꾸만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유대리가 퇴사한지도 한 달 째에 접어들었지만 그녀는 종종 그의 손의 온기가 생각났다.

사실 저도 뿔을 갖고있다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자신의 존재가 유 대리의 부당한 해고를 막아줄 수 있었다면.

정부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가능하다고 말이라도 꺼내봤다면 혹시 지금 다른 선택지가 있지는 않았을까?

그러다가도 밝혔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이라는 마음이 치솟았다. 그래봤자 두 명 이었다. 한명보다야 지원금을 받기 위한 조건이 갖춰진 것은 맞지만 너무나 소수였다.

어차피 질것이 뻔한 결과가 보이는 게임에 확률을 거는 무모한 짓을 해본 적이 없어서 너무 두려웠다.

그러나 자꾸만 마음의 시소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울었다.

수평을 이루는 날은 많지 않아 때때로 밤잠을 설쳤다.

그러는 와중에도 뿔은 여름 소나기를 맞아 힘차게 자라나는 죽순처럼 그 크기를 달리하고 있었다.

도망칠 곳이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며 어떻게든 뿔을 가리려고 애쓰며 그녀는 늘 불안에 떨었다.



-사랑하는 망망이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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