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상편)

by 화오라






어느덧,

7월의 끝자락.

타들어 갈 것 같은 여름의 한복판에


나는 한국에 있다.


지저귀는 매미

오락가락 내리는 비

무더위에 땀은 마를 틈이 없고,

생존을 위한 분투와 삶의 유한함에 대한 허무함이, 동시에 터져 나오는

그리고 나는,

잊힐 수도 있었던 존재에서

잊힐 수 없는 선명한 흉터들을 간직한 채 조용히 삼키는 탄식.

그 간극에서 최선을 다해 애쓰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애썼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건 살기 위한 애씀이었을 것이라고.













-

한국으로 돌아온 지 5개월 하고 며칠.

12월 초에 사고가 났고 2월 말에 귀국했다.

현지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나를 도와줬다.

공항까지 배웅해 주던 그 따뜻한 마음들이 큰 힘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철저하게 혼자였다.

기내 좌석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조차 스스로 갈 수 없는 몸 상태라, 나는 밥 먹는 것, 물 마시는 것까지 참아야 했다.




인천공항엔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왔으나 안도감 같은 건 없었다.

죄인처럼 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엄마의 얼굴은 그새 많이 늙어있었다.

온 세상의 근심과 걱정이, 나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엄마를 잠식한 듯했다.

난 그들을 덤덤하게 맞이했고, 긴 비행으로 피곤할 테니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쉬는 게 어떻겠냐는 물음에,

나는 곧장 재활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 후, 다리의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의사와의 진료가 끝남과 동시에 바로 재활을 시작했다.


처음 한 재활 동작은 일어서기.

물리치료사가 날 의료침대에 앉힌 뒤 내 다리를 본인의 양쪽허벅지 사이에 끼우고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줬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될 리가 없었다.

순전히 물리치료사의 힘으로 겨우 버티는 느낌.

내 의지로 일어나 있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재활은 시작됐다.

가벼운 일상생활이 가능해지기까지 몇 달은 족히 걸렸다.

여전히 오래 걸으면 힘들고 걸음이 불안정하며 통증이 있다.

그럼에도 젊고 신체능력이 좋은 탓에 회복이 빠르다는 소견에 조금은 안도했다.


몸 여기저기의 크고 작은 흉터를 제거하는 치료도 시작했다.

사고가 나고 상처들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켈로이드 피부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튀어나온 피부를 가라앉혀주는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와 흉터를 옅게 해 주는 레이저 치료를 병행하고 있지만, 치료를 하더라도 사고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슬펐다.


어쩌면 다시는 모델일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이만하면 천만다행이지", "살았으니 된 거지" 수없이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내 안에 슬픔을 이길 재간은 없었다.














그날은 비가 하루 종일 내리던 날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 현지 지인의 집에서 요양하던 시기였다.

그날따라 몇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다.

비는 갈수록 억세졌고 해는 진지 오래였다.

비 내리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누웠는데 갑자기 방에 불이 나갔다.

불이 나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빛 하나 없는. 고요하고 적막한 방.

안과 밖, 어디에서도 빛을 느낄 수 없었다.


급한 대로 핸드폰 플래시를 켰지만

순간 겁이 났고,

동시에 눈물이 났다.

방의 불조차 내 맘대로 켜고 끌 수 없는 무력감에, 애써 밝고 씩씩한 척하던 나는 그 순간 완전히 무너졌다.




그렇게 큰 사고를 당하고도 덤덤했던 나였는데

목에 깁스를 하고도 브이하며 웃던 나였는데,

하지만 그때 나는... 완벽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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