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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겠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by 화오라 Jan 13. 2025





No fracture or dislocation

No confluent consolidation

No significant retropulsion

No mediastinal widening

No evidence of effusion

.

.

.

검사 결과들이 쏟아졌다. 

두 다리와 오른발 그리고 왼쪽 골반의 골절, 요추 한 부분의 미세골절, 뇌출혈을 제외한 다른 곳엔 이상 없음이라는 소견을 받았다. 경추와 척추, 장기를 다치지 않은 것에 큰 안도를 했다. 목보호대와 산소호흡기를 제거하니 좀 더 살 것 같았다. 병원에서의 생활은 계속됐다. 붕대에 감겨있던 두 다리는 의료용 방수밴드들이 대신했고, 오른발은 깁스를 했다. 수술이 끝나고 며칠 후 상태가 호전됨에 따라 병실을 이동했다. 4인실의 일반병실, 가장 안쪽의 창가자리에 눕혀졌다. 나를 제외한 세분은 모두 연로하신 분들이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낫는 것뿐이었다. 



같은 날 새벽 3시가 가까운 늦은 시간, 

선잠을 자고 있었는데, 오른쪽 팔꿈치에 붙인 밴드 주변의 피부가 가렵기 시작했다. 평소 밴드 알레르기가 있는데 마침 팔꿈치에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났다. 물집이 생기기 전에 밴드를 제거해야만 했다. 혼자 처리할 수 없는 몸상태였기 때문에 호출벨을 눌렀다. 천장에 붙어있는 호출벨의 불빛이 반짝거렸다. 한참을 기다리니 간호사가 내게로 왔고 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저 밴드를 떼어내면 되는 문제였으므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간호사가 말했다. 


"난 밴드를 떼줄 수 없어. 내일 아침에 의사가 회진을 하니 그때 이야기해" 


너무도 단호한 말에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다시 입을 열었다. 


"피부가 너무 간지럽고 빨갛게 부풀어 오르고 있어 밴드를 당장 떼어내지 않으면 물집이 잡힐 거야. 제발 도와줘" 


나는 숨을 삼키며 다시 한번 부탁했다. 간호사는 말했다. 


"난 못 떼줘. 아침에 의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던지, 네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다. 내 상태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다.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지 묻고 싶었다. 이 간호사에게서 어떠한 따뜻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간호사를 하고 있는 건지, 혹시 개인적으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약 먹을 시간이라고 말하며, 누워있는 내게 약을 먹이려 했다.


"누워서는 못 먹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는 낮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침대 리모컨으로 침대의 머리맡을 올리는 대신, 환자인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운 뒤, 곧바로 약을 먹게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떠났다.






처음 느껴보는 무력감이었다. 내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이제야 실감이 났다. 하루아침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게 된 현실에,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도 아무 말도 못 한 것에 대한 분노와 서러움이 눈물로 차올랐다. 

하지만 마냥 울고만 있을 순 없었다. 나는 다른 간호사가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호출벨을 눌렀다. 조금 기다리니 이번엔 다행히도 다른 간호사가 왔고, 나는 그제야 밴드를 제거할 수 있었다. 이미 물집들이 잡힌 후였다.


속상한 마음에 LA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 겪은 일들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친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마치 본인의 일처럼 화를 내줬다. 응급실 의사인 친구의 남자친구도 내 이야기를 듣고 그것은 명백한 환자 학대라며, 그 간호사가 나를 담당하지 않도록 교체를 요청했다. 그날 이후로 그 간호사와는 두 번 다시 마주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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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이 나라를 떠나기 불과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의 사고소식을 듣고도 가족 누구도 내게 오지 않았다.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아픈 와중에 그 이유를 애써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오겠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설마 하는 마음이 현실이 되자, 배신감을 느꼈다. 사실 처음부터 가족이 올 것이라는 암묵적인 믿음 따위는 없었다. 그냥, 그럼에도 내게 올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가족이니까.. 


사고 후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이 닿았을 때, 엄마의 첫 말은 이랬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난 그 말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늘 내게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답했다.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항상 그런 위치에 있었다. '넌 혼자서도 잘하니까, 알아서 잘하니까'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란 나에게 

이 사고 또한 스스로 처리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전화 너머 엄마의 물음에 나는 입을 떼었다.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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