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날들에 대하여.

by 윤종현

지금껏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


16살 때는, 하루에 5시간씩 샌드백을 두드리고

킥복싱 세계 챔피언을 꿈꾸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운동선수를 했었다.


1년 6개월의 짧은 선수 생활을 끝내고 방황의

시기가 찾아왔다.

폭주족 친구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뒤늦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철없는 아이들과 함께 “스릴”에 모든 것을 던지며,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더욱더 쿵쾅 되게 하는.. 미친 듯한 질주를 1년여간 하였었다.


당시에 크게 다치거나 죽은 친구들이 많았지만, 너무나 철없게도 사고로 6개월간 병원에 입원을 하다 퇴원을 한 후에 오토바이를 절대 타지 말라며.. 몸이 성치 않은 채 극구 말리는 제일 친했던 친구에게,


“난 오토바이를 타다가 죽어도 좋아..”


라는 바보 같은 말까지 하며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


그러다 중3 때부터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화를 사랑하게 된 영향을 받아 조금씩 영화감독의 꿈을 키워오면서...


18살 9월 18일,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편지 한 장을 써놓고서 가출까지 한 다음, 한 평짜리 고시원에서 잠을 자고 연남동 중국집에서 짜장면 배달을 하며 “충무로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당시엔 틀에 넣고 찍어내는 듯한 제도권 교육에 반감이 심했고 대학을 거부한 채 그렇게 첫 영화를 “영화 조명팀”에서 끝마쳤다.

생애 처음으로 시각 예술에 매료가 되어 5년간 “빛”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빛의 세계는 말 그대로 내 마음을 온통 빛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그렇게 23살이 되던 해에 극심한 스트레스와 유전으로 인한 극심한 우울증을 겪게 되었고, 일도 못 한 채 긴 시간을 집에서 자살 생각만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자연스레 철학과 종교에 빠지게 되었고, 종교는 없었지만 “깨달음, 진리에의 추구”에 깊이 빠져들었고 “수행자”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아는 스님에게

“절에 와서 스님이 되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수행을 다 해볼 수 있고, 인도에서도 다양한 수행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

라는 말을 듣고서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1주일 후에 출가하러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서..


그때까지 살아오며 가까이 만나온 지인들과 마지막 만남을 한 후에, 7일째 되던 날 불광천 다리 밑에서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그동안 모아온 편지와 사진들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 전부 태워버린 후...


가족들의 응원을 뒤로하고 해인사를 향한 열차에 몸을 싣고 그렇게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1년 7개월 간의 절 생활을 끝마치고, 나만의 작디작은.. 거창하지 않고 소박한 “작은 깨달음”을 얻고서 하산을 하였다.


25이 되던 해, 나에게 “만성 조울증”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기 시작했고 힘든 시간들이 다시금 나를 찾아왔다.

몇 년간의 방황을 마치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 “실수투성이 내 삶”만을 보내오다..


27이 되어 드디어 평생의 나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바로 지금도 하고 있는 전통 창호를 만드는 목수.


이 일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나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목수일은 조금씩 내 마음을 물들여 갔다.


그러다 28이 되던 해에 “사랑”에 빠졌다.

온 마음이 빛으로 환했던 순간들..


그러나 그 “빛의 시간”들이 물러나자 “어둠”이 찾아왔다.

헤어진 다음 날 갑자기 그분이 그리고 싶어졌고, 어릴 적 학교 미술 시간을 끝으로 10년 만에 “그림”이란 걸 그려보게 되었다.


하지만 실연의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만성 조울증이 재발하여 일산 동국대 폐쇄병동에 두 달간이나 입원을 하게 되었다.


좁디좁은 병실에 갇힌 채 바깥에도 못 나가고 24시간 감시를 당하며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림”이었다.


당시엔 그림만이 깜깜한 어둠 속 마음의 방 안에 작은 초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지난 9년여간 만성 조울증으로 인하여 매번 두 달씩 세 번의 입원을 하였고, 퇴원을 할 때마다 내 손엔 그림을 그린 종이들이 잔뜩 쥐어 있었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힘이 들어도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예술이나 미술 같은 것들은 잘 알지도 못했고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그저 작디작은 내 마음속 세상에서 마음껏 표현하고 즐겼고, 슬펐고, 환희에 차고 우울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들은 “특별했다.”


살아오며 많은 방황들을 해왔지만 무언가 확실한 “내 것”을 찾은 느낌이랄까..


잘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무언가가 되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들을 비웠다.


그저 삶이다.


낮에는 천직인 전통 창호를 만드는 목수로서 살아가고, 밤에는 작가를 꿈꾸며 열심히 보고 즐기며 그릴 뿐이다.


욕심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꿈보다는 부모님의 편안한 노후, 형님과 누님의 행복한 삶, 우리 가족들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라고 원한다.


목수일과 그림은 매일 들이마시고 내뱉는, 없어서는 안 될,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호흡”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동이 터버린 늦은 새벽, 지나간 옛사랑을 떠올리듯 지나간 추억들을 잠시나마 떠올려봤다..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의 그림을 본다는 것은 내게 참 멋지고 즐거운 일이다.

남은 삶은 그림, 미술, 예술을 실컷 즐겼으면 좋겠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멈추지 않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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