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종이배에 대하여.

by 윤종현


세상 어딘가, 마음 한가운데에는

현실에는 없는 작은 집 한 채가 있다.


낡은 집.

가구도 없고, 살림도 없다.


탁자 위에는

끝없이 펼쳐진 노란 종이와

더 짧아질 수 없는 몽당연필 하나.


나는 가끔 그곳을 찾는다.


지치거나,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을 만나거나,

혹은 이유 없이 기쁠 때.


눈을 감으면

그 집의 문이 열린다.


연필을 쥐고

종이 위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글이 되지 못한 것들,

말로 남지 못한 것들.


그 종이를 들고 밖으로 나오면

집 앞에는 늘

보랏빛 바다가 있다.


종이를 물 위에 올려두면

배가 된다.


아주 작은 배.


그리고 떠난다.


오랜만에 다시 그 집을 찾았을 때,

바다 위에서 무언가가 돌아오고 있었다.


예전에 보냈던 배들이었다.


젖은 채로,

구겨진 채로,

빛이 바랜 채로.


어떤 것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하나씩 펼쳐보았다.

그때의 마음들이

서툰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접힌 자국처럼 되살아났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돌아온 배들을 다시 모았다.

찢긴 곳을 맞대고,

겹치고, 묶었다.


생각보다 단단한 배가 되었다.


나는 그 위에 올라섰다.


앞으로 갔다.


햇살이 비추고

비가 젖히고

바람이 등을 밀었다.


가끔 상어가 스쳐 지나가며

모서리를 물어뜯었지만

어딘가에서 날아온 빛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힘이 빠질 때면

배들이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고.


그러니 더 가보자고.


나는 자주 뒤를 돌아보았지만

노는 언제나 앞을 향해 있었다.


작은 배들이 모여 만든

이 커다란 배를 믿으며.


아파도,

기뻐도,

외로워도,


계속 갔다.


그래도 아름다웠다.


함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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