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난 엄청난 말썽꾸러기였었다.
물론 마흔이 넘은 지금도 뭐가 달라진 건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주 어린 시절의 난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고 자존심이 엄청 강한 아이였었다.
그래서인지 항상 제일 작은 키에 가까울 정도였으나, 친한 친구 녀석들은 언제나 가장 큰 키 혹은 덩치가 큰 녀석들, 그리고 힘이 세거나 아니면 기가 센 녀석들이 친한 친구가 되곤 하였었다.
가장 이른 기억의 일화가 5~6살 때 시골에 살며 친한 무리의 친구 녀석들 예닐곱이서 모래밭에서 놀던 때였다. 그중 대장뻘 되는 놈이 갑자기 모래를 한 줌 잔뜩 쥐며 “너네들 이거 먹을 수 있어?” 하더니 그 모래를 입속에 넣어 날름 삼키는 것이었다.
다들 어안이 벙벙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그 녀석에게 지기 싫은 나머지 나도 모래를 한 줌 쥐어 날름 입속에 밀어 넣어 삼켜버렸었다. 지기 싫어 억지로 삼켜버렸던 희미해져 가는 기억들이 친구에 관한 인생의 첫 번째 기억이었다.
그리고 7살이 되던 해에 서울로 이사를 왔다.
초등학교에 입학 후에는 자연스레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저학년일 때는 그래도 순둥순둥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지만, 4학년 이상 올라가며 머리가 조금씩 커져 가면서부터는 애초의 성향대로 흘러갔는지 보통 장난꾸러기, 말썽꾸러기가 아닌 녀석들만 친한 친구들이 되었던 터에
그 어린 나이에도 툭하면 학교 뒷산으로 가 싸움을 하거나 유치한 패싸움부터, 심지어는 싸움을 잘하는 녀석들만 모아서 다른 초등학교로 원정을 가 시비를 자주 걸 정도로 보통이 아닌 녀석들이었다.
우리들은 자주 학교가 끝나면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선에 사는 아이들답게 하루는 계곡으로, 산으로, 천으로 넘나들며 어설픈 낚시부터 모닥불을 피워 군고구마 혹은 싸구려 양념장에 대충 비빈 돼지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며 산으로, 물가로 뛰어다니며 놀다가 없는 살림에 동전 한 푼 모은 것까지 실컷 다 쓰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빈 트럭을 히치하이킹하여 트럭 뒤편에 옹기종기 모여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맛있는 저녁을 차려 놓고 기다리시는 따스한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곤 하였었다.
그리고 트럭이 각자의 집까지 가진 않았기에 어느 한 지점에 태워주신 아저씨께서 우르르 내려 주시면 각자의 집까지는 모두가 걸어가곤 하였는데, 그 시절의 우리들에게 5km~8km를 걷거나 한두 시간 걷는 것은 일상이었었다.
반대로 외곽 지역이 아닌 서울의 중심가 역시 우리들의 옆집처럼 드나들곤 하였었다.
주로 애용했던 우리들의 자가용 지하철은 웬만해서는 돈을 내고 타 본 적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지키는 아저씨들이 있었는데, 자주 가는 역들은 어디에서 지키고 어디에 사람이 없는지를 다 파악하고 있었기에 안전한 곳을 택해 먼 거리에서부터 다다다다 뛰어간 다음 개찰구의 제일 높은 윗면을 두 손으로 딱 받치고서는 점프하여 훌쩍 한 번에 위로 넘어간 다음 무상으로 전철을 타곤 하였었다.
종로, 어린이대공원, 잠실 롯데월드 등등 그때만 해도 온갖 전자기기들의 메카이자 단골 장소였던 용산까지, 희미하게 꺼져 가는 듯한 기억의 와중에도 그 어린 녀석들끼리 안 다녀 본 데가 없었던 듯하다. 물론 언제나 부족했던 용돈은 집으로 돌아올 때쯤엔 0원이 되어 있었고.
언제나처럼 지하철을 훔쳐 타거나 예상 밖의 지키는 아저씨를 만날 때면 꽤 먼 거리를 집까지 몇 시간을 걸어오는 날도 있었다. 시내 중심가에선 어린 악동 녀석들도 히치하이킹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조금씩 올려다보니 그 어린 나이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싶었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에 참 못된 애들이었구나 하며 혀를 끌끌 찰지 몰라도,
나에게는 사십여 년을 살아오며 어쩌면 가장 철없었을지 몰라도 한 마리 들새처럼 가장 자유롭고 걱정 없이, 하염없이 하루하루가 스릴 있고 모험 같던 시간들이 넘쳐나던 너무나도 행복했었던 시절들이었다.
유년 시절의 친구들은 내게 그런 존재들이었다.
그러했었던 시절들을 언제나 함께했었던, 그 모든 순간들을 함께 보내고 함께 성장했었던 존재들…
그때의 아이들이 유년 시절의 나의 친구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28년이 넘었지만, 30년 가까이 되는 세월 속에서도 이따금씩, 혹은
적어도 몇 년에 한 번씩은 꾸준히 모교였던 신사초등학교를 홀로 찾아가 조금씩 변해 가는 학교의 풍경 속에서도 옛 기억을 조금씩 되찾으며 회상에 잠기다가 돌아오곤 하였었다.
그것은 어쩌면 가장 신사 같지 않았던 그때의 친구들과의 기억들이 이따금씩이나마, 혹은 삶에 지쳐 있었을 때 나를 그리로 불렀던 것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서도 다시금 생각이 나곤 하여 아내에게도 혼자서 몇 번인가 읊조리곤 했던 것 같다.
학교에 한 번 들려 보고 싶다고…
나의 유년 시절이 있던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