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아빠가 말씀하셨었다.
“종현아,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면 꼭 그려보고 싶은 풍경이 있어.
태어나서 14살 때까지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고향 마을인데 기억 속에 사진처럼 풍경이 아련하게
남아 있거든.
그 풍경을 그림으로 꼭 한 번 그려보고 싶어.”
이야기를 듣고서 언젠가 아빠 대신 고향 마을을 그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지난 세월 동안 여러 차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셨었다.
그러다 전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잘 그리진 못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 후 처음 느껴보았던 즐거움을 아빠와도 나누기 위해
제안을 했다.
“아빠, 예전부터 그리고 싶어 했던 고향 마을을 함께 그려보지 않을래?
꼭 잘 그리지 않아도 돼. 아무도 아빠의 그림을 평가하거나 나무라지 않으니 부담 갖지 말고 고향 마을을 같이 재미있게 그려보자. 아빠가 먼저 그리면 내가 이어서 그려볼게. 어제 아내와 한 것처럼.”
아빠는 먼저 작은 종이 위에 섬세하게 기억을 떠올리며 스케치를 한 후 큰 종이에 꼼꼼하고 사실적으로 옮겨가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하나하나 설명을 해나가며 아이처럼 신나게 그리기 시작하셨다.
“여기에는 작은 도랑이 있었고, 이쪽 산에는 나무가 별로 없이 민둥산이 있었어.
아, 그리고 여기에는…”
색을 칠하면서는 뜻대로 되지 않자 계속해서 포기하고 그만두려 하셨지만,
“내가 멋지게 완성할 테니 겁내지 말고 계속해서 해봐.”
라고 응원을 해드리면서 아빠의 오랜 작은 꿈을 이루어 드렸다.
그렇게 완성한 후 그림을 이어받아서 아빠의 기억과 표현을 토대로, 그동안 들었던 이야기와 당신의 감정들을 느껴가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난 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서,
기억 속 고향 마을을 따스하게 바라보시는 아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그려놓았다.
기쁜 마음으로 그림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아빠는 눈물을 흘리셨다.
수도 없이 들어왔었던,
아빠가 태어난 고향 마을.
10남매와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와
너무도 아련하고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있던 아빠의 고향 마을.
어쩌면 아빠가 진정으로 그리운 것은,
보고 싶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따스한 품에 대한 가슴 저린 그리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