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등급 몸치가 기립박수를 받기까지

by 윤종현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23살의 11월이었다.

그때의 난 스님이 되기 위하여 출가를 하여 행자 생활을 하다가 2년을 조금 못 채우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사회로 돌아왔었다.


당시에 가장 많이 생각했었던 것은 최대한 밝게 많이 웃으며 살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번 사는 인생, 진실로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다 해보고 살자는 것이었는데 낮에는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며 처음으로 해보았던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춤을 배우는 것이었다.


평생 춤을 동경해 왔으면서도 극한의 몸치로서만 살아왔기에 항상 생각만 하면서도 쉽게 배우지는 못하고 있다가 동기부여가 확실했던 그 시기에

큰마음을 먹고 꽤 괜찮아 보이는 댄스학원을 알아내어 등록하였다. 수업은 다양하였지만 상담 중에 알게 된 프리패스라는 방식은 한 달에 30만 원을 내면 한 달 내내 모든 종류와 모든 시간대의 수업들을 전부 본인이 원하는 만큼 들을 수 있는 개념이었다.


귀가 솔깃하여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프리패스로 학원을 등록한 후에 당시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었던 3달간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초저녁에 알바가 끝나자마자 학원 문을 열 때 가서 늦은 저녁 문을 닫을 때까지 하루 3~4시간을 정말 잠시도 쉬지 않고 춤만 추었었다.


가장 수준이 맞았던 몸치 탈출반부터 가장 레벨이 높아 창피함을 무릎 쓰고 이 악물고 배웠던 걸스힙합, 그리고 팝핀, 재즈댄스, 나이트댄스, 클럽댄스 등등 모든 종류의 춤들을 비싼 수강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정말 정말 열심히 배웠었다.


그러던 어느 날, 최선을 다해 춤을 배우고자 너무나 창피할 때면 혀를 깨물어가며 남의 시선 따위 애써 무시하며 어떻게든 배워보고자 발버둥을 친 지 딱 한 달이 되어갔을 때쯤 댄스학원의 꽤 이름 있으셨던 젊은 여자 원장님께서 다가와 나에게 조곤조곤 말을 거셨다.


평소 나를 좀 특별하게 바라보셔서 계속해서 관찰을 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만했던 것이 누가 봐도 엄청난 몸치인데 모든 장르의 모든 수업 시간을 매일 와서 다 듣고 춤은 너무 못 추는 데다 수업을 혼자 따라가지도 못하는데 반대로 또 너무 이 악물고 열심히는 하니까 딱해 보이기도 하고 애정도 조금 가시지 않았나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를 바라보며 하시는 말씀이 몸치에는 총 5단계가 있는데 당신은 4등급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부끄럽긴 하였지만 내 밑에도 한 단계가 더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아주 조금은 기뻐했었다.


그러나 이어서 하시는 말씀에 극도의 부끄러움과 함께 실망감에 젖어들었다. 그 마지막 5등급의 사람은 죽어도, 정말 죽어도 아무리 배워도 안 되는 사람을 뜻한다는 말씀이었고 사실상 나는 춤을 배우는 입장에서 최악의 실력이라는 이야기였다. 즉, 최악의 몸치라는 말. 이어서 하는 말씀은 나를 정말 힘 빠지게 하였고 상처도 조금 받았었다.


쉽게 말해 열정은 가득하지만 너무 극심한 몸치가 어느 날 나타나서 프리패스까지 끊고서 하도 열심히 하니까 지난 한 달간 나를 유심히 계속해서 지켜보고 관찰해 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 정말 해도 해도 너무 못하고 죽어도 안 되더라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원장님의 말에 너무 화가 나서 죽어라 해도 안 되는 걸 어떡하라고요라며 기분 나쁜 내색과 함께 화를 조금 내며 그날 수업이 끝난 직후라 집으로 휙 하고 쓸쓸히 돌아갔었다. 그때의 마음은 응원은 못 해줄망정 저주나 퍼붓다니 하는 생각으로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니 오죽했으면 돈 내고 배우러 온 사람에게 그런 말을 했겠나 싶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엄청난 몸치였었다. 누가 봐도 교정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모든 수업 시간이 극도의 창피함과 부끄러움 속에 이를 악물고 배워야 했지만 특히나 어린 여자들만 20~30명 있고 남자는 나 하나였던 걸스힙합 시간은 정말 최악일 정도로 힘든 수업 시간이었다. 수업 난이도나 레벨은 제일 높은데 남자는 나 하나이다 보니 당연히 시선이 쏠렸고 특히나 유일한 그 남자가 하필이면 엄청난 몸치이다 보니 그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며 창피함이 극에 달할 때면 혀를 이빨로 꼭 깨물며 춤을 추었는데 어떨 때는 혀에서 피가 조금씩 날 때도 있었다.


그 창피함과 쪽팔림은 겪어보지 않은 이는 정말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그만큼 당시의 춤에 대한 열망은 강렬했었다. 몸치 탈출!


그러다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어느 날 그때의 그 원장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여느 때처럼 은근히 나를 관찰하시던 선생님께서 다가오시며 갑작스레 말씀하셨다.


“오~ 리듬 좀 타기 시작하는데~”


그때만 해도 리듬을 탄다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뻣뻣하기만 했던 몸치가 드디어 약간의 그루브와 함께 조금씩 리듬을 타기 시작한 것이었다.


알바가 끝나면 곧장 학원으로 달려가 하루 서너 시간 춤을 추면서 50분간 춤을 추고 수업이 바뀌며 중간에 10분씩 쉬는 시간에도 나는 절대 춤을 멈추지 않고 거울을 보며 계속해서 전 시간에 배운 것을 복습했고 정말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춤을 췄었다. 나와 실력이 비슷한 이에게도 쉬는 시간마다 잊어버린 동작을 물어보기도 하였고 주말이면 보조 강사들이 일찍 나와 각자 개인 연습을 하였는데 그들과 친해진 나는 그 틈에 끼여서 본 수업이 있기 전 혼자 거울을 보며 연습을 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어느 순간부터 안 되던 것들이 조금씩 되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남들에 비해 소질이 부족하면 남들 두 번 할 때 200번 하면 된다는 것을. 리듬이 조금씩 타지고 그루브도 조금씩 타면서 기본적인 웨이브는 어지간한 여자애들만큼 되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계획했던 세 달을 거의 채워가던 어느 날 원장님께서 다가와 진지하게 말을 거셨다. 솔직히 종현 씨 처음 봤을 때는 진짜 안 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금씩 느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인간이 진짜 하면 안 되는 것이 없구나라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도 나로 인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었다.


그만큼 그때의 나는 정말 엄청나게 답이 없는 모습의 몸치였었기에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았고 왠지 모르게 뿌듯했었다.


당시에 하려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사회로 돌아가 바쁘게 일을 시작했어야 해서 나에게 주어진 세 달의 시간을 끝마쳐야 했었다. 마지막으로 학원에서 춤을 출 때는 당시 가장 핫하던 방송댄스 안무를 나름 괜찮게 처음부터 끝까지 잘 추게 되었는데 당시 나를 좋아하던 보조 강사가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다가와서 깜짝 놀라며 말해줬었다.


“와~ 추는 거 처음부터 지켜봤는데 진짜 된다. 이제 진짜 다 되고 잘 춘다. 진짜 신기하다. 대단하다.”


라며 나보다 더 좋아해 주며 말했었다.


심지어 그 무렵 함께 수업을 듣던 한 남자분께서 자신은 앞으로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종현 씨 같은 사람과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말도 들었었다.


모든 종류의 수업을 모든 시간 다 수강하다 보니 알고 지내게 된 이들이 굉장히 많았었는데 학원을 그만두던 날 이따금씩 술집에서 뒤풀이를 하던 것처럼 날 위한 송별회가 열렸었는데 30~40명의 사람들이 호프집에 모인 자리에서 원장 선생님께서 이 사람 그동안 정말 열심히 배웠으니까 박수 한 번 쳐주자고 말씀하시니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일어나서는 기립박수를 굉장히 오래도록 쳐주셨던 기억이 난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기립박수를 오래도록 받아봤었다.


그렇게 나의 몸치 탈출 여행은 끝이 났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세 달간의 시간은 살아가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곤 하였었다.


어찌 보면 지금껏 가장 행복했었던 세 달간의 시간이기도 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진정으로 가슴으로부터 올라와 온 마음을 다해서 하고 싶은, 혹은 배우고 싶은, 다시 혹은 사랑하고 싶은 그러한 어떤 것을 배우고 해 나가고 사랑하는 것보다 이 삶을 가슴 떨리게 해주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진정한 삶이 주는 행복들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마흔이 넘은 나는 여전히 그러한 어떤 것들을 가슴 깊이 원하고 사랑하며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삶이 조금씩 권태로워지기도 하는 요즈음,

예전 추억을 돌이켜 보았다.


그때의 나처럼 다시금 열정적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다시금 희망해 본다. 소망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55년을 버틴 오른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