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by pyj

성인의 발달과업의 마지막은 죽음에 대한 극복과 수용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상당 부분은 ‘소멸’과 ‘잊혀짐’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되돌릴 수 없는 사라짐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기 자신의 죽음, 죽어가는 과정, 타인의 죽음과 그들이 사라져 가는 장면에 대한 공포까지. 인간은 이러한 두려움을 철학과 종교, 교육과 자기 성찰을 통해 ‘수용’이라는 과정을 배우려 애써왔다.


곱던 아이는 어른이 되고, 사회의 잔인함 앞에서 울어보기도 하며, 때로는 성취와 행복을 경험한다. 그러다 중년에 이르면 누구나 다음 단계를 떠올린다. 물론 예기치 못한 불행으로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간에 따라 당연한 수순처럼 죽음을 만난다.


죽음의 잔인함은, 내가 살았던 공간에 어떤 공백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장소든 시간이든, 그 무엇이든 그것은 곧 메워지고 나는 완전히 사라진다. 그래서 죽음은 더욱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다.


죽음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상황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르다. 죽음에 대한 태도, 종교적 신념, 교육 수준 등은 죽음을 적절하고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죽음의 정당화’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자신의 삶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어떤 이에게 죽음은 숭고한 희생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두려움이 되며, 상황에 따라 비겁함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영화「부산행」에서 김의성 배우가 연기한 ‘용석’처럼,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에게 한없이 잔인할 수 있는 집착이 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누구나 겪게 되는 노화 또한 죽음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것은 젊은 날의 미련과 사라져 가는 건강에 대한 공포, 그리고 언젠가 맞닥뜨릴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인 잔인한 여정이기도 하다. 마치 인생에서 저지른 잘못들에 대한 징벌처럼, 합리적이면서도 냉혹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젠가 만날 그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아마도 각자의 의미의 찾아 현재에 집중하는 것. 그것 외에 다른 것이 있을까?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