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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송현 Oct 29. 2024

이해와 소통:나와 타인은 왜 다른가(1)

아우 이걸 왜 이해 못 해? 아유 답답해! 아니예요. 그게 당연한 거예요

가끔 이런 생각 해 보신 적 있나요?


아유~! 왜 이걸 이해 못 해? 이건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예요. 사실 이해 못하는 게 당연한 거예요. 이 세상에 모든 사람에게 "당연한" 것이라는 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어요.

이제부터 그 이유와,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간에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 보려고 해요.


사실 이해라는 건 굉장히 개인적인 현상이예요. 

일단 "안다" 는 단어부터 보죠. 우리는 알기 위해서 먼저 "배우는" 과정을 거쳐요. 배운다는 것은 "경험한다"는 것이고, 그 경험은 우리의 뇌의 한 구석에 저장이 되죠.

배운 것을 다 기억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정보라도 일단 "경험"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거든요.

곰곰히 생각해 보죠.


당연한 건 사실 당연하지 않다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에 대해 "왜 당연하지?" 라고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나요? 그게 무엇이던지 간에 계속 "왜? 왜?"하고 파고 들다 보면, 결국에는 막다른 길에 부딪히게 될 거예요. 여러분들의 "이유"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다른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이유라는 걸 깨닫게 되겠죠. 

예를 들어, "남을 때리는 건 나빠"라는 명제에서 시작하죠. 이해를 돕기 위해 철수와 영희의 대화를 써 볼게요.


철수: 남을 때리는 행위, 즉 폭력은 상대방을 아프게 하고 그 폭력을 막지 않을 경우 그 폭력이 나에게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에 나쁘다고 할 수 있어. 

영희: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건 왜 나빠? 그럼 병원에서 주사를 놓는 간호사는 나쁜 사람이네? 그리고 내가 나에게 돌아오는 폭력을 괜찮다고 받아 들인다면 그것 또한 나쁘다고 해야 해? 

철수: 간호사가 나에게 아프게 하는 건 내가 동의 했잖아. 내 건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니까.

영희: 그럼 아이들은? 부모는 동의하겠지만 아이들은 동의하지 않았잖아?

철수: 아이들은 무엇이 좋은 지 모르잖아. 다소 아프더라도 그게 아이를 위한 거니까 그걸로 폭력이라고 할 순 없지.

영희: 그럼 왜 맞는 지 모르고 맞으면 그건 정당화 될 수 있는 폭력이겠네? 무슨 좋은 뜻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아이들에게 일일이 이게 왜 좋은지 설명하지 않고,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부모와 간호사는 아이를 아프게 해. 그럼 상대방을 아프게 하기 때문에 폭력이 나쁘다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은데? 같은 이유로 그 폭력이 나에게 돌아와도 그 폭력 뒤에 어떤 의도가 있는 지 모르기 때문에 역시 폭력이 돌아오는 것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어.

철수: 하지만 "때린다"는 행위는 보통 악의를 가지고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하는 거잖아? 선의를 가지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과는 다르지. 상대방이 선의를 가지고 있다면 나를 아프게 하는 행위가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나쁘지는 않은 것 아니야?

영희: 좋아. 그럼 때린다는 것의 정의가 "악의"를 가지고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하는 행위라고 해 보자. 그런데 상대방이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혀 왔다면? 상대방의 악의를 갚기 위해서 때리는 게 뭐가 나빠?

철수: 상대방이 악의를 가지고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고 하더라도 내가 물리적인 폭력으로 되갚는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잖아. 괴롭힌 건 증명하기 어렵지만 때린 건 증거가 바로 남으니까.

영희: 그럼 그런 폭력에 관한 법이 없다면, 혹은 유명 무실하다면 때리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 아니야? 어차피 문제는 일어나지 않으니까.

철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는 건 나쁜 생각이야.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야.

영희: 그럼 상대방의 괴롭힘을 그냥 당하고 있어야 해? 예를 들어 상대방이 나를 계속 때린다고 해 보자. 그럴 때에도 나는 상대방을 따리면 안되는 거야? 법이 없거나 유명 무실하다면, 상대방의 폭력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맞서 싸우는 것인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폭력이잖아?

철수: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결국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돼. 내가 더 힘이 세서 싸움에서 이겼다고 해 보자. 그럼 싸움에서 진 사람이 그대로 있을까? 더 힘 센 사람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 할 수도 있어. 그럼 이 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겠지. 누군가는 죽어야 끝날 수도 있어. 만일 상대가 폭력으로 나를 생대한다고 해도 내가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적당한 선에서 끝날 수 있겠지.

영희: 과연 그럴까? 상대방과 계속 함께해야 하는 상황이면 폭력만큼 상하 관계를 정리하기 좋은 방법이 없잖아. 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지속적으로 더 "약한" 사람을 괴롭히거나 자기가 다른 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폴 수도 있지. 이게 과연 더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위의 대화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맞다" 혹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명제는 사실 수 많은 의문을 낳을 수 있습니다. 위의 명제, "사람을 때리는 것은 나쁘다"는 사실 법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성립될 수 없는 명제인 것입니다. 법이란 그 사회의 대부분이 동의하는, 혹은 그 지역에서 태어날 때부터 그에 동의하도록 정해진 조항 들입니다. 일부의 사람이 그 것이 싫다고해도 지키지 않을 수는 없죠. 거칠게 말하면 "힘"을 가진 다수가 "힘"을 갖지 못한 소수를 제어하기 위해 만든 것일 뿐이죠. 


그럼 "힘"이 있는 사람이 그 "힘"을 휘두르는 것은 괜찮고요? 그 이야기는 더 긴 이야기니까 일단은 여기까지 하죠. 일단, 핵심은 나에게 "당연한" 일이 상대방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니까요. 특히 법으로 정해지지 않은 명제는 더더구나 그렇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해란 무엇인가" 에 대해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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