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에서 내가 배운 것
저는 국제 결혼을 했어요. 의도한 건 아니었고, 전 여친과 헤어지고 홧김에 가입한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가 국적 불문하고 가입할 수 있었거든요. 거기에서 미소가 마음에 드는 여자의 사진을 보고 안 되는 영어로 만나자고 하고, 만남이 잡히고... 어찌저찌 하다 보니 3개월만에 프로포즈 하고 1년 뒤에는 결혼 식까지 올렸죠. 나이도 있었지만, 연애를 몇 번 하면서 될 관계는 되고 안 될 관계는 안된다는 운명론을 믿게 되었거든요.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중요한 건 제가 제 아내라는 사람에 대해 그닥 많이 알지 못하고 결혼 했다는 거예요. 그런 데다가 중국계 미국인, 부모님들은 영어도 잘 못하시고, 저는 중국어는 아예 모르고... 그것도 미국에 사는 중국인들은 중국 표준어인 보통화(만다린)을 쓰지 않고 광둥어(캔타니즈)를 쓰거든요. 배우기에도 애매했죠.
3년 간 한국에서 살다가 아내가 임신하고 미국으로 간 뒤에 자기 가족들이 주변이 있어서인지 아내도 자기 본 모습이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한국에 있을 땐 그렇게 착하던 아내가 임신 후 홈그라운드로 가니 어찌나 말이 안통하는지... 한국에서의 상식도 안 통하고, 졸지에 인종차별주의자 취급도 받고, 정말 황당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데다가 미국에 왔으니 한국어는 완전 까먹었는지 부부싸움에서도 영어로 하는데 짧은 영어로 다툼이 되겠어요? 상대방의 마음에 드는 단어를 골라 써도 상대방의 화가 풀릴까 말까 하는데, 내가 아는 단어로 그냥 직진을 해 버렸으니, 싸움이 거세지는 건 한 순간이었습니다.
결국에는 내가 알던 "상식"이라는 건 "한국"이라는 우물에서만 옳은 사실이라는 걸 받으들이는 날이 오고야 말았죠. 스스로 사실이라고 알던 사실을 부정하는 건 쉬운 과정은 아니었어요. 이걸 부정하면서 이해하려 하면, 저게 가로막고, 저걸 부정하면 내 스스로의 소신이 흔들리고, 소신을 지키려 하면 도저히 말이 안되는 상황이 수시로 일어났죠. 그러다 보니 남녀의 관계도 다르게 보이더군요.
내가 나의 생각, 또는 소신을 부정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삶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삶의 근간이 이미 흔들렸으니 가능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것의 가치가 결코 적은 건 아니었어요. 그리고 내가 알던 모든 "사실" 혹은 "상식" 또한 특정한 상황에서만 통하는 것일 뿐,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죠.
상대를 더 이해하면 이해 할수록 상대가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별 것도 아닌 작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 부부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아내가 무엇을 원한다고 말할 때 그걸 그대로 들어주는 건 그래서 하수나 하는 짓이죠. 상대방의 진의는 상대방의 말에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지식과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종합해서 "이해" 해야죠. 서로 맞지 않는 정보에 "연결"해서 "이해"를 시도하면 당연히 잘못된 답이 올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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