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은 소리 표현이 가능한 훈민정음, 언어교육의 혁신?
알림: 이 글은 6 소제목으로 나뉘었습니다. 아는 작가님의 조언도 그렇고, 제가 보기에도 너무 길긴 해서요.
훈민정음은 한글의 원본 모습으로서, 훈민정음으로 보면 과거의 한국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소리도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훈민정음이 근대 한국어로 진화하면서 사용되지 않는 몇가지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기호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성조 표기법도 사라져 버렸죠.
만일 우리가 훈민정음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f,v,th 등의 소리가 존재하지 않아 국적불명의 이상한 소리를 내는 해프닝도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훈민정음의 소리를 잃음으로서 한글 언어 표기의 복잡도 또한 증가했습니다. 미국에 사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실제 발음과 표기의 차이점은 설명하기가 정말 곤란합니다. 그냥, "그게 더 편해서 그렇게 바뀌었다" 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있었다 - 발음은 [이써따] 가 됩니다. 있어 가 [이써]로 발음되는 건 기존의 연음법칙으로 설명이 됩니다. 그냥 초성의 ㅇ은 발음이 안 되니 받침의 소리를 가져 온다고 하면 됩니다. 그런데 었다 가 [어따]가 되는 건 어떻게 설명하죠? 일단, 었이 왜 [얻]의 소리를 내야 하는 거죠?
이 소리의 변경을 훈민정음 식 발성으로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었'이 [어ㅆ]로 발음되고, 연음 법칙에 의해 ㅆ다가 발음되는 겁니다. 그럼, 혀로 이를 세게 막는 [ㅆ]의 초성 혀모양과 입천정에 혀를 대는 [ㄷ]의 혀모양을 모두 발음할 시, [ㄸ]의 발음이 나는 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외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말 그대로 었다는 [어ㅆ다]로 발음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썼던 "었" 이라는 글자는 사실 [얻]으로 발음할 것이 아니라 [어ㅆ]로 발음되어야 했을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훈민정음을 쓰는 그대로 발음하는 것은 또 다른 가능성을 낳습니다.
gas를 한글로 발음해 보죠. "개스" 혹은 "가스" 라고 발음할 겁니다. 그런데 이 표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ㅡ" 발음이 실제 소리값을 가진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사실은 gas와 "가스"의 발음에 커다란 차이를 만듭니다.
영어의 "gas" 는 1 syllabal, 즉, 1음절 단어입니다. 그렇지만 그걸 "가스"로 쓰는 순간, 이 단어는 2syllabal의 단어, 즉 2음절의 단어가 되어 버립니다. 영어 교육에서 음절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러한 음절 차이 때문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지요.
위 "ㅡ" 발음이 우리 나라에서는 자음의 기본 소리값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ㅡ"는 분명한 소리를 가진 모음값입니다. 따라서, 자음만 발음할 때는 성대에서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합니다.
한글에서 이렇게 입모양만 바뀌고 소리를 내지 않는 글자 단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바로 "받침"이지요. 하지만 근대 한국어에서는 이 "받침"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앉다": [안따]
"앉": [안]
"높다": [놉따]
"높': [놉]
"같다": [가따]
"같": [갇]
"빨갛다": [빨가타]
"갛": [갇]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ㅅ,ㅋ, ㅌ, ㅎ, ㅍ, ㅈ, ㅊ, 그리고 수많은 겹자음이 제대로 발음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걸 설명하는 것도 어렵기 그지 없습니다. 단어의 원형을 알아야 하고, 그 원형에서 파생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그 발음과 차이가 나더라도 그렇게 쓴다 - 그렇게 가르칠 뿐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과연 사실일까요?
저는 이 모든 것이 본래의 발음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로서, 사투리에는 원형의 발음법이 많이 존재합니다.
"일 없수다": [일 업쑤다]
"일 없다" -> [일 업ㅅ다] -> 일 업수다 -> 일 없수다
"이 아-가 그 아-가?"(경상도) : 이 아이가 그 아이냐? [이 아<..>가 그아<..>가?] (<..> 는 훈민정음에서 성조를 표현했습니다. 위로 올렸다가 내리는 소리로, 훈민정음에서 글자 좌측에 점을 하나나 두개로 표기했었습니다)
"높아불그만": [노파불그만] - 높아버리는구만 - 높구만
"넓어부리는구만": [널버버리는구만]
우리 말에는 수많은 어미(語尾:말꼬리)가 존재합니다. 우리 말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더 많은 문맥을 제공하는 유용한 특성이지요.
하지만, 언어 교육의 측면에서 "기본형"(-다)의 필요성에 대해서 의문이 듭니다.
만일,우리가 받침의 발음법을 잃지 않았다면, 과연 기본형이라는 것이 필요했을까요? 그냥 상황에 따른, 목적에 따른 어미만 있었다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다" 라는 기본형 문장이 쓰이기나 하나요? 글을 쓸 때, 말을 할 때, 기본형 문장은 가장 쓰이지 않는 형식입니다.
"철수가 학교에 가다/철수는 학교에 가다"
"철수가 학교에 간 날이 언제니?"
"철수가 학교에 가고 얼마나 되었지?"
"철수가 학교에 갈까? 가지 않을까?"
"철수가 학교에 갈건 지 물어봐 줄래?"
"철수가 학교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철수는 학교에 갔거든?"
"철수가 학교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어."
위 문장에서 가장 쓰이지 않는 문장이 어떤 문장인가요? 우리가 "기본형"이라고 부르는 첫 문장일 겁니다. 쓰기에도 애매하고, 말하기에도 애매합니다. 애매하기 보다 어색하죠.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어색한" 기본형을 배워야 하나요? "가" 라는 단어 자체가 영어의 "go" 처럼 모든 의미를 담고 있지 않나요?
겹자음 받침을 사용하는 몇 가지 단어들도 봅시다.
잃다: [일따]
잃: [일]
잃어버리다: [이러버리다]
핥다: [할따]
핥: [할]
핥아: [할타]
긁다: [극따]
긁어: [글거]
긁는: [긍는]
맑다: [막따]
맑은: [말근]
맑아: [말가]
위의 기본형을 먼저 보죠. 단어가 "잃다"인데, 기본형의 발음인 [일따]는 원래 단어의 "잃"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대로 발음하기 위해서는 [일ㅎ]와 같이 발음되어야 합니다. [일]뒤에 [ㅎ]발음을 [ㅡ] 없이 발음해서 그냥 바람만 빠져나오게 발음하는 거죠. 그럼, 잃다는 다음과 같이 발음될 겁니다. [일ㅎ다]. 저는 이렇게 발음하는 것이 원래의 발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훈민정음이 그대로 살아남았다면, 그리고 그 발음법이 그대로 전해 내려왔다면, 예외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왜냐하면, 훈민정음은 소리나는 대로 적은 일종의 "발음기호"였기 때문입니다.
핥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할따]로 발음하는 대신, [할ㅌ다]로 발음해야 글자가 가진 본래의 발음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핥"는 [할ㅌ]로 발음되고, 그에서 파생되는 모든 어미는 본래의 소리를 간직한 채, 각 문장의 의미에만 신경써서 표현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한글교육도 마찬가지로 매우 쉬워졌겠지요.
"맑다" 같은 경우에는 더 심합니다. 표준 한국어에서는 "맑다"를 [막따]라고 발음합니다. 아니 왜? "잃다"의 경우에는 "ㄹㅎ"에서는 앞에 있는 "ㄹ"을 선택하고, "ㄹㄱ"에서는 뒤에 있는 "ㄱ"을 선택한다고? 왜요? 이러한 불일치 때문인지 어떤 사람은 [말따]라고 발음하기도 합니다. 둘 다 싫으면 [말]뒤에 목구멍을 좀 막고 [따]를 발음합니다. 발음이 되지 않은 [ㄹㄱ]을 발음하려고 노력하죠(이전엔 이게 맞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틀렸다네요). 하지만 이러한 혼란은 애초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ㄹㄱ를 그대로 발음할 수도 있었는데 조금 편해지자고 그 둘 중 하나를 고른 건 대체 왜 그런 건가요? 내심 짐작가는 바는 있지만 확실히 알 수 없으니, 그저 속으로 혀만 찰 뿐입니다. 물론, ㄹㄱ의 발음을 제대로 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려우니 이렇게 발음하는 것과, 아예 표준 발음 자체를 바꾸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건 fasion을 [패션]이라고 쓰지만, 원래 발음은 [ ˈfæʃn]이라고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예 원본 발음이 패션이고, 단어는 fasion이라고 우기는 수준입니다.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교과서에서 로버트라고 쓰고 진짜 Robert가 자기 이름을 "롸벝"이라고 하면 걍 "로버트"라고 해. 라고 한다고 하더군요. 어색하다고요.)
발음기호로서의 훈민정음은 근대의 한글을 아득히 뛰어 넘는 기능성을 가졌습니다. 한국말의 소리를 소리 나는대로 쓰는 것을 넘어, 수 많은 외국의 언어들까지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 혜례본에서는 집현전 학자 정인지가 한글이 동물의 소리나 자연의 소리까지 모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죠.) 특히 없어진 글자들은 영어, 아랍어, 중국어와 같은 완전히 다른 발음 시스템을 가진 언어들까지도 어느 정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막말로, 훈민정음을 사용하면 그들의 발음을 그들보다 정확히 후대에 변형 없이 옮길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인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이 언어를 시작할 때 겪게되는 phonics(발음 교육) 교육의 난이도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건 입과 목이 움직이는 기본 원리 뿐일 겁니다. 하지만 기존의 발음법은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따라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집니다. 성인 교육의 경우 더욱 힘들어 집니다. 하지만 훈민정음의 수학적 발음 합성법은 이 어려운 발음교육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실 영어와 한국어의 1:1 mathing은 불가능합니다.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어를 예로 들면, 자음에도 유성음, 무성음이 있고, 우리 말에서 모음이 있어야 소리나는 것이 영어에서는 자음 자체로 소리가 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문장이 되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훈민정음 혜례본의 창제 원리에서도 말하듯이, 그 언어의 기원이 다름과 관계 없이 어차피 입과 목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기본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입으로 만들 수 있는 소리라면 훈민정음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영어의 fan 발음을 가르친다고 해 봅시다. 정확하게 같지는 않지만 팬과 휀의 중간 발음 정도가 됩니다. 이를 겹자음으로 표현 시 ㅎ풴 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발화 시 나오는 바람의 세기와 열린 입술의 크기 등이 비슷하기에 발음은 비슷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ㅍ에서 표현하는 "입술이 닫혔다가 열리는 모양"과 f에서 사용하는 "윗니가 아랫입술에 살짝 닿은 모양"의 차이에서 나오는 미묘한 차이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여기에 더 알맞은 훈민정음의 자음이 있는데, 이는 ㅿ(반치음/반시옷)으로, 영어의 [z]와 비슷한 소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ㅿ"가 윗치아와 관련된 소리라는 것이죠. 이러한 원리를 돌아 보았을 때, f를 위해 "ㅿㅎ"와 같이 표현하면 쉽게 윗니를 아랫입술에 대고 ㅎ를 발음하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v는 "ㅿㅂ", th는 "ㅿㅅ"혹은 "ㅿㄷ"가 될 겁니다.
훈민정음은 성조조차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에 accent가 존재하듯이 우리 말에도 톤의 높낮이가 뜻에 영향을 주는 '성조'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interesting을 훈민정음으로 표현 시, 첫 i에 붙은 강세에 성조를 넣어 [인<.> 떠 ㅇ뤠ㅅ ㄸㆍ(아래아)ㆁ(꼭지이응)] 또는 [인<.> 떠 ㅇ뤠ㅅ ㅇㆍ(아래아)ㆁ(꼭지이응)]으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ㅅ 다음에 오는 ㅇ는 영어의 묵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ㆍ(아래아)는 ㅡ와 ㅏ의 중간 정도 소리라고 하지만 사실 "ㅏ"인지 "ㅓ"인지 구분이 좀 힘듭니다. 제 뇌피셜로는 모음 중 가장 작은 점, ㅡ와 ㅓ의 중간이라고 표현되는 점, 낮은 소리가 난다는 점을 보아, 입을 자연스럽게 혹은 어중간하게 벌린 채 목구멍의 소리만 낸 소리였다고 생각되며, 그 당시 사람들도 쉽게 구분하기 힘들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자음과 모음을 잇는 모음 소리를 정하기 어려울 때 어중간하게 발음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insteresting에서 ting 부분이 [띵]처럼 입모양이 확실히 만들어지지 않고 약간 얼버무리는 소리라고 생각했을 때, 아래아가 부활되면 자음과 받침만 확실히 발음할 때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ㆁ(꼭지이응)은 현재의 받침에 들어가는 ㅇ 받침이 그대로 쓰일 수는 있지만 목구멍을 막는 이응의 발음에는 원칙적으로 꼭지 이응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냥 ㅇ은 목구멍이 열린 채 그대로 두는 ㅇ으로 만일 꼭지이응이 복원된다면 받침에 있는 ㅇ은 소리가 길게 늘어지는 것을 표현 시 쓸 수 있습니다. 즉, 앙 은 [아-]와 같이 소리가 날 겁니다. 현재의 한국어에서 길게 소리가 날 때, [아-]를 표현하기 위해 [아아]를 사용할 텐데, 사실 [아, 아] 두번 발음하는 것과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가 받침 발음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설은 아니니 적당히 가능성의 하나라고 생각해 주세요)
표준 한국어 - 정확히 말하면 표준어가 된 경기도 사투리에는 성조가 없어 우리 말에는 그런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상도에는 아직도 "성조"로 뜻을 파악하곤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아이"를 아<..>라고 발음합니다. 제 생각에 지금 우리가 영어 단어를 한국말에 섞어 쓰듯이 중국어에서 전해진 단어를 성조까지도 그대로 쓰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지칭하는 "아<..>"는 중국어의 "兒(아이 아)"에서 온 듯하고, "그놈의 자식"을 "그노마<..>"="그놈아<..>(兒)", "얼라<..>"(=어린아이=어린아(兒)), "가시나<..>=가스나(계집아이)=가슨아=갓(여자를 뜻하는 순우리말)은아" 와 같이 수많은 예가 있습니다. 이 정도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좀 많죠. (재미있는 사실은 만다린에서는 아기(嬰兒)를 잉어- 라고 발음하고 광둥어에서는 잉애라고 발음합니다. 응애, 잉애, 비슷하지 않나요? 만일 응애가 여기서 나왔다면 아기는 태어날 때 "아기!" 하면서 태어난 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동시에 우리가 아이를 '애'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이 아'라고 발음하기도 하는데, 둘 모두 지역에 따른 차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단 중국어의 성조와는 조금 다른 게, 중국어에는 1,2,3,4성조가 있고, 광동어는 9성조 가 있지만 우리는 3성조밖에 없다는 겁니다. 중국어(maindarin/보통화)에서 兒는 2성으로, 높이가 낮았다가 높아집니다. 경상도 발음에서 아<..>는 높았다가 낮아지죠(중국어의 성조로는 4성에 해당합니다). 훈민정음에 기재된 성조는 일반 톤(1성), 강세 톤(점 하나-3성), 높았다가 낮아지는 톤(점 두개-4성)입니다. 兒처럼 낮았다 높아지는 건(2성) 없죠. 그래서 바뀐 건 지, 아니면 사투리에서 쓰이는 게 원본 소리이고, 중국에서 쓰이는 게 변경된 건 지, 그건 알 수 없겠죠. 또 하나 이상한 점은 대부분의 중국어 발음은 광둥어에서 왔는데, 이 발음인 "아"는 오히려 북방계 언어인 "보통화"와 더 비슷하다는 겁니다. 물론 국경이 맞닿아 있어 서로 영향을 많이 받았겠지만 이 부분에서는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쓰는 한자 발음이 원래의 발음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미루어, 광둥어가 변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의 핵심에서는 빗겨난 문제이니 넘어가죠. 하지만 이러한 우리 말에도 성조가 있었고, 훈민정음에서는 이를 표현할 방법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점입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90년대 후반~2000년 초반) 한창 채팅과 커뮤니티등이 발달함에 따라 언어를 장난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말 줄임 현상과 새 단어 형성 현상은 존재하고, 오히려 가속화 되었죠. 이러한 언어의 변형은 언어의 자연스러운 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줄임과 변형은 그 원본을 짐작하는 데 어려움을 주죠. 오랜 시간동안 변형 된 신조어의 경우에는 그 역사를 알고 보면 정말 혀를 내두를 만큼 창의적이고, 어떨 때는 정말 어이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언어의 변형은 그 나이 또래의 문화에서도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어른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문맥상의 이해가 필요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러한 이해 상의 문제는 젖혀 두고, 그 창의성에 집중한다면, 한글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한 힌트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례로, 우리는 재미로 한글의 ㄷ, ㅅ, 또는 ㅆ발음으로 발성해야 할 곳에 th을 붙이곤 했습니다. 실제 th가 들어간 영어단어를 표현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발음을 재밌게 하고 싶었을 뿐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 이야기가 한글의 창제원리에서 비롯된 자유도가 얼마나 높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ㅿ(반치음)과 같은 자음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지금처럼 한글의 조형이 제한되지 않았다면 아마 훈민정음 조형법으로 수많은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앞의 성조의 예에서 처럼, 훈민정음이 모든 소리를 완벽히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에 가지고 있던 언어에 대한 이해도, 외국어에 대한 노출 빈도 등을 미루어 보았을 때, 그 정도의 유연성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이 모든 글자를 완벽히 표현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위키피디아에서 자음으로 검색하면 아래의 표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초반에 제가 생각했던 "한계"는 반치음이 th, v, f의 대체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때 생각했던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부 잘 알려진 언어들(일본어,중국어,영어,독일어)에 대해서는 기존의 훈민정음으로 꽤나 좋은 발음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훈민정음의 유연성과 확장성에 다시 한 번 감명받았죠... 모로코 친구에게 내가 못 할만한 아랍어 발음을 말해 보라고 하니 "목구멍에서 긁는 듯하지만 'ㅋ'와 'ㅎ' 중간의 발음을 내더군요.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알아보니 이미 사라진 자음인 ㆆ(여린히읗)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듣기도 쉽지 않고 발음은 더더구나 쉽지 않지만, 그걸로 거의 모든 언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니, 감계가 무량했습니다.
그래서 위 테이블에 있는 모든 언어의 "가능한 발음영역"을 다 살펴보기 전에는 훈민정음의 한계는 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일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훈민정음의 창제 정신 뒤에 숨어있는 구강의 모습과 발성 방법에 따른 글자의 형성은 이러한 한계를 한계가 아니라 단지 version up 의 문제로 만들어 버립니다.
사실, 훈민정음의 한계는 생각보다 찾기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만일 어떤 소리를 우리가 훈민정음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건 어쩌면 세종대왕님께서 한글을 처음 창제하실 때 후대에 맡겨놓은 손쉬운 과제일 지도 모릅니다.
저는 여기서 훈민정음을 되살리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이지요. 한글은 그대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한글의 창제 원리는 우리에게 수 많은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변화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한글 학자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지금의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 평가 절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한글과 한국어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물론, 공문서나 공식 자료의 표기 측면에서 언어의 표준화는 불필요한 통역에서 오는 비용을 줄이는 측면에서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향에 있어서 조금 더 생각할 수는 있었지 않나, 하고 조심스레 대신해서 회고해 봅니다.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겠지만, 우리는 회고와 반성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육의 측면에서 배우는 이의 입장을 적극 반영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육의 가장 큰 목적, 과거의 문물을 후대에 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존의 문물이 가진 장점을 잘 이용하여 그것이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목적을 생각해 보면, 예외가 더해지고, 역사가 더해지고, 그 어원을 이해하는 데 더욱 더 어려움을 겪게 되는 지식이라면, 한 번 쯤 되돌아보고 더 간단하고도 더 강력해지기 위해 고치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 "-다" 의 기본형은 교육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대신, 본래 단어의 받침 같은 본래 단어의 발음은 그 단어 자체로 발음이 가능해야 합니다. (예> "많다" 대신 "많[만ㅎ]", "빨갛다" 대신 "빨갛[빨가ㅎ]" )
- 받침은 그대로 발음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실제 문장에서 받침이 연음법칙에 의해 다르게 발음되더라도, 한 글자를 발음할 때는 예외 없이 발음 되어야 합니다. (예> 갓: [갇] 대신 [가ㅅ], 같: [갇] 대신 [가ㅌ])
- ㅇ과 ㆁ(꼭지이응/옛이응)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ㅇ은 목구멍을 열고 내는 소리이지만, ㆁ은 목구멍을 닫았다고 여는 다른 소리입니다. 강아지를 발음할 때, 가-다음에 나는 소리가 꼭지이응 소리 입니다. 이는 중국어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소리입니다. 우리 말에서 굳이 있는 소리에 대한 문자를 사용하지 않을 필요가 없습니다. 강아지의 발음을 꼭지이응으로 표기하면 [가 ㆁㅏ 지] 가 됩니다. 최소한 주먹구구식으로 [ㅇㅇ]을 ㆁ로 발음한다고 하기보다 정확한 연음법칙으로 "ㅇ[받침]ㅇ[초성]은 ㆁ로 발음한다"와 같은 연음법칙이 있어야 합니다. ㆁ부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 초성 자음에서의 겹자음 한계는 사라져야 합니다. 어떠한 자음이라도 겹자음으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어야 세계화 시대에 한글의 경쟁력을 더 높일 수 있습니다. sky와 같은 발음에서, 기존 한글에서는 [스까이]라고 발음하지만, [ㅡ]가 들어간 [스]는 바르지 않은 여분의 음절을 발생시킵니다. 올바른 표기가 되기 위해서는 [ㅅ카이] 혹은 [ㅅ까이]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와 같이 쓸 수도 있겠지만 디지털 시스템에서 교정 알고리즘을 넣는다고 했을 때, 모음 없이 자음만 있는 경우 복잡성이 증가하고, 2byte로 해결될 수 있는 문자에 4byte를 사용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 말이 한 글자 당 한 음절을 나타낸다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한국어가 여러 언어 전반에 걸쳐 사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 각 단위 요소 당 구강 구조와 발성 등의 설명에 위반 된 발음은 모두 교정 되어야 합니다. 만일 단어와 발음에 차이가 있을 시, 어원과 가까운 쪽으로 교정 되어야 하며, 교정이 되기에 실제 사용과 너무 동떨어진 경우, 실제 사용 시 발음은 사투리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싫어요"라는 표준어에 대해 사투리로 "일업슈" 라고 말했을 때 "일업슈"가 표준어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문어체로 그대로 쓰기는 합니다. 문어체를 표준어로 바꾸는 수많은 "표준어 교정"은 한국어 교육에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있습니다, 없습니다"와 같은 표현은 90년대 말에 교정된 표준어로서, 이전에는 "있읍니다,없읍니다"라고 표시했습니다. 이는 "있"과 "없" 이라는 기본형에 "읍니다"를 붙인 것입니다. 하지만, "읍니다"를 "습니다"로 고치면, 연음법칙에 복잡도가 생깁니다. "있습니다"는 [잇씁니다]로 발음되지 않고 [이씁니다]라고 발음됩니다. 여전히 쌍시옷입니다. 3시옷이 아닙니다. 한글의 수학적 아름다움이 훼손된 겁니다. "없습니다"도 마찬가지 입니다. [업습니다]로 발음이 충분합니다. 실제도도 그렇게 발음합니다. 그런데 [업씁니다]가 되었습니다. 발음 상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만, 더 간단할 수 있었던 것이 복잡해 졌습니다.
- 사라진 자음을 되살리거나, 기존 한글에서 고려되지 않던 구강 모습을 본딴 자음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단, 기존의 한글 자음 원리와 비슷하다면 조합으로 해결하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의 혀를 굴리는 소리의 경우, ㄹㄹ과 같이 쌍리을과 같은 자음은 누구나 짐작하기 쉬울 것입니다. 아랍어에서 혀를 뒤로 붙이고 'ㅋ'와 'ㅎ' 중간 발음을 내는 소리가 있는데, 이는 ㆆ를 되살림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ㆆ의 소리는 추정을 하고 있지만, 훈민정음의 "ㆆ은 청탁의 구별에서 전청이고 조음 위치로는 목구멍소리로 설명하고 있어서 성문 파열음으로 그 음가를 추정하고 있다."는 설명은 이 아랍어의 발음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이미지와 미디어를 이용한다면 어려운 발음을 표준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 주장이 그냥 언어 교육적인 측면에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나이가 들고 직업이 프로그래머이다 보니, 눈이 쉽게 피로해져서 요즘은 자기 전에 오디오북을 자주 듣습니다. 미국에서 살다 보니 한국어에 노출되는 것은 이렇게 책을 읽는 시간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한글을 읽어주는 기능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단어들을 제대로 읽지 못합니다. 문장에 따라, 문맥에 따라 똑같은 글자들이 다르게 발음되기 때문입니다. 토요일마다 한국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과 더불어 인공지능에 대해 공부하면 할 수록 이러한 문제는 더욱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외국인들이 입을 모아서 얘기하는 한국어의 어려움은 비단 한국어의 형용사, 조사, 어미의 복잡성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예외는 정말 설명하기도 어렵고 배우기는 그것보다 더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도 이렇게 힘든데, 인공지능이라고 다를까요?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한글이 수학과 아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훈민정음"이 수학과 아주 비슷하지요. 수학에 가깝다는 것은 컴퓨터가 그만큼 더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인공지능은 거기에 이르지 못했을까요? 영어가 압도적인 학습량으로 그 한계를 극복한 것에 비해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그리 많이 않은 한국에서 한국어 읽기 모델은 대체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 걸까요?
여기에 국가 차원에서 한국어가 교정되어야 할 당위성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일부의 학자들이 아무리 주장하고, 저 같은 보통 사람이 아무리 주장한다고 해도 이러한 일개 의견이 국가의 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국가도 기업과 같이 이득이 되지 않으면 투자를 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장기적으로 한국에 엄청난 이득을 안겨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인공지능 시대에 한글이 인공지능 언어모델을 훈련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면, 한국의 위상이 높아짐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한글 자막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자연히 한국어 컨텐츠의 소비도 높아질 겁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위상은 세계적으로 높아질 것이고,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아질 겁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한글은 일정 부분 수술이 필요합니다. 많이도 필요 없습니다. 단지, 세종대왕께서 처음 한글을 창제하실 당시 한글에 넣어 두었던 의도만 우리가 "발전" 시키면 되는 겁니다. 좁은 공간에서 같은 종끼리 교배하다가 유전성 다양성을 상실하고 멸종의 길에 다다르는 생물과 같이 지금까지 한글은 오히려 퇴보를 하고 있었지만, 이제 다양한 DNA를 받아들여 더 강력하게 진화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공지능 언어 훈련에 한글을 어떻게 이용하냐고요?
한글의 모든 자음/모음에 입모양과 발성에 대한 힌트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실겁니다. 세상 어떤 글자도 글자에 입모양 자체에 대한 힌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말은, 글자 자체가 조음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이는 인공지능 훈련에서 입력과 출력의 결과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공 뇌신경망 훈련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입력에 대한 결과값이 맞는지, 아닌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정보로 뇌신경망 학습의 입력을 넣을 수는 있지만, 그것에 맞는지 아닌지 결정하는 labeling작업은 엄청난 자본과 수작업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한글은 이미 어떤 소리가 날 지 알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소리가 입력으로 주어졌을 때, 가상의 입모양/성대에 주어지는 변수를 조정하여 여기에서 발생하는 출력과 입력의 소리를 대조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여기에서 추가로 예외사항에 대한 추가 학습만 해 주면 각 언어에 대한 학습이 마무리 되는 겁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굳이 어떤 단어에 대한 학습 데이터가 따로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목소리로 변조하는 것은 기본 음성 모델에서 tone을 변경하는 것으로 가능하고, 반대로 tone이 다른 음성에 대해서는 이 tone을 알고리즘 적으로 모델이 기본 사용하는 tone으로 먼저 변경 후 입력값으로 사용하면 오류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글이 국제 표준 발음기호로 채택된다면 한국인으로서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일까요? 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냉정하게 봤을 때, 기존의 한글로는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한글과 한국문화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각 민족들은 그들에 맞는 문화를 각자 긴 시간동안 발전시켜 왔습니다. 문화의 우수성을 논하는 건, 상대에 대해 다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제일 잘났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애국심? 좋죠. 민족주의? 좋습니다. 그런데 그게 우물안의 개구리들의 주장으로 끝났을 때에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겁니다. 우물 밖의 거대한 세상에서 여전히 힘을 과시하고 싶다면, 무엇이 부족한 지 먼저 알고, 그 능력을 키우는 데 노력을 아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이미 수많은 외부 인물들이 모두 인정하는 한글이라는 우수한 문자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세계인들은 그 우수성을 인지도 못하고 있고, 그러한 필요성 또한 느끼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에게 가시적인 이득을 제시하지 않는 한, 그들은 영원히 한글을 접할 이유도, 한국에 대해 알 이유도 없을 겁니다. BTS가 한국을 알리고 한국 드라마와 한류가 큰 역할을 했지만, 아직 자만하기에는 너무나 모자랍니다.
최근 십수년 간 한국의 출산률이 낮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구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한국에는 미래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을 이어나갈 후대가 사라지는 시점에서 개인의 시간을 희생하며 한국을 알리고 한국어를 교육하는 (저를 포함한) 외국의 교육자들에게 한국이 발전하고 잘 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유일한 보상이 됩니다.
또한, 한국이 멸망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서는 폐쇄적인 이민정책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어를 쓰지 않고, 한글을 쓰지 않는 외국인들로 채워진 한국이 과연 한국일까요? 그들에게 한국어를 쓰라고 강요하는 것만이 한국이 한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까요? 한국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낫다고 강요하는 것이 정말 좋은 방법일까요? 우리가 정말 중국과 일본 문화, 태국의 문화, 몽골의 대제국의 역사, 미국의 힘보다 더 나은 무언가로서 한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한국으로서 발전할 수 있는 가치가 있습니까?
네. 물론 있겠죠. 그 가치에 동의하는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말이죠. 하지만 강요된 존중은 일정 수준 이상의 동의를 이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일정 수준 이상의 "비율"은 크게 높아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수를 늘릴 수는 있죠. 바로 파이를 키우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그 비율이 뱉어내는 절대적인 수를 늘리는 방법 말이지요.
저는 수 많은 좋은 아이디어들 중 한 가지, 한국이 가진 수 많은 것들 중, 거의 유일하게 반론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유산인 한글을 최대한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알리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가치를 창출해야 하며, 세계 언어의 발음기호로서의 역할이 조금 큰 야망일지는 몰라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이전에 우리 한국 학생들의 외국어 학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글로 공부하는 외국어, 그리고 그 외국어의 발음이 끝내준다는 칭찬을 들을 우리의 학생들을 생각해 보세요. 너무 가슴 뛰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