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내 딸은 난소암입니다』

우산을 씌워주는 일, 함께 비를 맞는 마음

by 서담

우리 교회 권사님이 책을 내셨다.

항상 하얀 얼굴로 환하게 웃으시고, 여러 사역으로 늘 바쁘게 움직이시는 분이다. 책을 쓰신다고 했을 때도 ‘바쁜 중에 가능하실까’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책으로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책의 제목은 『열세 살, 내 딸은 난소암입니다』.

함께 중보기도팀에서 기도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꽤나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생각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고통은, 아픔은, 언제나 당사자만이 가장 깊이 아는 것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위로와 이해가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 생각했다.


권사님은 열세 살 딸의 난소암 발병, 수술, 회복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써내려가셨다.

딸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감사,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한 줄 한 줄에 담겨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놀이터에서 민서랑 서준이는 신나게 뛰어노는데, 나 혼자 책을 들고 앉아 울고 있었다.


내가 존경하는 한홍 목사님께서 “고난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적 있다.

권사님은 자신의 고난을 낭비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고통을 지나, 다른 이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는 아름다운 기록으로 남기셨다.


곱씹게 되는 문장이 있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이 문장을 읽고, 얼마 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비 오는 날이었다. 나는 우산을 쓰고 길을 걷고 있었고, 길가에 정차된 차에서 중년의 여성분이 연로하신 어머니를 부축하며 내리고 계셨다.

두 분 다 속수무책으로 비를 맞고 계셨다. 나는 무심결에 다가가 우산을 씌워드렸다.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하셔서 비를 피할 수 있는 건물로 이동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나는 엉거주춤 우산을 씌워 드리며 건물 입구까지 함께하고, 다시 내 길을 갔다.

​따님은 연신 감사 인사를 하셨고, 할머니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셨다.


이 문장에 비추어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잠시 우산을 씌워드린 사람이고, 그 딸은 함께 비를 맞는 사람이었다.


우산을 씌워주는 일은 어쩌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잠깐의 호의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함께 비를 맞는다는 건, 함께 아파하고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일이다.

그것은 훨씬 더 어렵고도 귀한 일임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천성이 오지랖이 넓은 편이라,

건널목에서 천천히 걸으시는 어르신을 부축해드리거나,

자전거 타다 넘어진 아이에게 다가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일들을 종종 한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오지랖 부리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요즘 세상은 그런 게 불필요하거나,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한 시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국에 살았을 때는 도와주려다 되레 봉변당하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고, 일본에 살았을 때는 누군가 어려움에 처해도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하는 분위기에 낯섦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그런 세상 속에서도 기꺼이 제 갈 길을 멈추고 누군가를 돕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유독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런 장면이 담긴 영상이 종종 화제가 되곤 하는데,

그럴 때면 괜히 뭉클하고, 댓글 속 비슷한 마음들을 보며 든든해진다.


나는 그런 ‘한국인특’을 사랑한다.

길에서 누가 쓰러지면 여럿이 몰려가 일사분란하게 누군가는 심폐소생술을 하고 누군가는 119에 신고하는 ‘한국인특’. 길에서 누가 물건을 떨어뜨리면 다같이 주워주는 ‘한국인특’. 처음 보는 사람과 눈 맞추고 활짝 웃는 것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못 본체 하지 않는 츤데레의 민족.


우리가 계속 그랬으면 좋겠다.

조심스러운 세상이라 해도,

우리가 그런 마음을 완전히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함께 비를 맞는 일은 어렵더라도,

우산 정도는 기꺼이 씌워줄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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