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늦은 감상, 폭싹 속았수다

by 서담

나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모두가 열광할 때면 한 발짝 물러선다. 사람들의 과몰입을 관찰하는 게 묘하게 재밌다. 그러다 열기가 사그라들 즈음, 그제야 조심스레 시도해보곤 한다.


최근에 그런 시도는 바로 ‘폭싹 속았수다’였다.

SNS를 도배하던 관식이 열풍, 관식이 같은 남편 자랑글, 오열 인증샷까지… 다들 그 열기 속에 있었을 때, 나는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몇 편을 연달아 보며 눈물이 핑 도는 장면에서 슬쩍 남편을 바라보면, 그도 어김없이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오늘은 친정아버지 생신이라 친정에 가 저녁을 먹고, 부모님과 함께 그 드라마를 봤다.


부모님 세대는 추억으로, 우리 세대는 어렴풋한 기억으로, 아이들은 호기심으로… 세 세대가 한자리에 앉아 같은 드라마를 보는 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 같았다


오늘 본 화에서는 금명이의 일본 유학을 위해 애순이가 집을 파는 묵직한 이야기, 학씨 아저씨네 딸과 애순이네 아들이 사랑에 빠지는 얄궂은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리고, 수십 년 전 애순이가 도왔던 한 사람이 애순이의 딸, 금명이를 돕게 되는 장면이 나왔다.


그래, 인생이란 참 그렇다. 돌고 돌아, 마음을 전하고 또 받는 것. 눈 앞의 현실이 전부가 아니기에, 옳은 일을 선택하며 살아가기로 한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고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도울 수 있을 땐 기꺼이 돕고, 도움을 받을 땐 감사히 받기로 한다. 그렇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대학생 딸을 둔 애순이가 이렇게 묻는다.

“나는 언제 커?”

그러자 나이 지긋한 이모가 웃으며 말한다.

“나도 덜 컸쪙.”


그 장면을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나도 마흔이지만 아직 덜 큰 것 같을 때가 많다.

스무 살에도, 마흔에도, 아마 예순에도

“나는 언제 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겠지.

우리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계속 자라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부부,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이렇게도 풍부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그 이야기들은 이어진다. 같은 드라마를 보며 같은 장면에서 마음이 머무는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라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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