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파랑』

기술은 모두의 것이 아닐 수 있다

by 서담


『천개의 파랑』은 이번 달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이다. 한부모 가정, 장애, 동물 복지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품은 작품이었다. 어떤 분은 너무 많은 주제를 다루다 보니 각 주제의 깊이가 얕아졌다고 지적하셨고, 또 어떤 분은 딥한 주제를 무겁지 않게 풀어낸 점이 오히려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주제가 다양하다 보니, 모임 구성원들이 주목한 부분도 제각각이었다. 나는 ‘기술의 선택적 수혜와 소외의 문제’에 가장 마음이 머물렀다. 기술의 발전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휠체어를 타는 은혜는 렌즈삽입술을 받으러 미국에 간 친구 주원을 보며 외롭고 괴로운 마음을 느낀다. 기술의 발전은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 기술을 ‘살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간극을 우리는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또한, 인간의 쾌락을 위해 만들어진 경마장의 기수 로봇은 빠르게 발전해 나가는데, 은혜는 여전히 휠체어를 타고 살아간다. 그 대비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마주하게 된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대, 우리는 노동력이 대체되는 효율성에 기대를 품는 동시에,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다. 기술은 권력과 자본에 따라 집중되고, 그로 인해 우리는 점점 더 불균형한 사회를 목도한다.


나 역시 새로운 기술의 도움을 자주 받는다. 빠르고 편리한 답변은 때론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 고유의 고민과 창작의 몫이 흐려질까 두려움도 함께 따라온다.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전은 멈출 수 없다. 그렇기에 적극적으로 배우고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철학과 규제가 함께 가고 있는가 의문이 든다. 사고가 터진 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며 우리 사회가 선제적으로 방향을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기술이 모두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을 만드는 사람들만큼이나,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 모두의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 책을 읽으며 문득 카이스트 배상민 교수가 떠올랐다. 그는 아프리카에 가서, 그 나라에 있는 자원을 활용해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고, 그 기술을 현지 사람들에게 전수한 뒤 조용히 떠난다.


그 방식이야말로 그 지역을 자립하게 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과 아이디어, 자본을 앞세워 시혜자의 위치에서 우월감을 드러내는 보여주기식 활동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도움이라고 느꼈다.


기술이 누구의 것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할 때, 우리는 ‘어떻게’ 나누고 ‘누구와’ 함께할지를 더 자주, 더 치열하게 물어야 한다.


기술이 모두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 그 자체뿐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와 철학 또한 함께 고민해야 함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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