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수막염인 줄 알았던, 입원기 (4)

기다림

by 서담

2025년 11월 24일 월요일


채혈을 하겠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피를 무려 13통이나 뽑았다. 아침 식사 전에 몸무게도 재라고 하셔서 저울 위에 올랐는데, 몸무게는 어제와 같았다. 흥.


양치도 하고 물도 마시고, 아침 식사도 했다. 남편과 짧게 통화한 뒤, 회진을 돌러 오신 선생님께 CT 결과가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 피검사만 문제 없으면 큰 걱정은 없을 거라고. 안과 진료도 의뢰해 주셨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도대체 나는 왜 그렇게 아팠던 걸까. 원인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혹시 응급실에 올 정도가 아니었는데 엄살이었나? 병원비만 더 쓰고 여러 일정이 엉킨 건 아닐까. 만감이 교차했지만, 그래도 병원에 있으니 덜 불안했고, 적절한 조치들 덕에 그 극심한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다.



뇌파 검사


오전에 들어야 할 강의를 세팅해 두었는데, 9시 40분까지 뇌파검사실로 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민서는 소아뇌전증으로 정기적으로 뇌파 검사를 받지만, 나는 처음이었다. 민서처럼 나도 누워서 머리에 수십 가닥의 전선을 연결했다.


그 순간, 뜬금없이 에바 알머슨의 그림이 떠올랐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꽃이 피어 있는 그 그림. 내가 베개 위로 머리를 올리고 전선을 빼곡히 꽂은 모습은 그 그림과는 전혀 다르겠지만, 묘하게 겹쳐 보였다.


40분 동안 눈을 감고 누워 있어야 했다.

민서는 전날 잠을 줄여서 거의 자면서 검사를 받는데, 나는 갑작스러운 검사라 그 시간을 온전히 버텨야 했다. 손목도 저릿하고 허리도 아팠다. 고역이었다. 눈을 살짝 뜰라치면 의사 선생님이 귀신같이 알아채고 “눈 감으세요”라고 마이크 너머로 말했다.


검사 중에는 민서가 그동안 어떤 기분으로 이 검사를 견뎌냈을까 싶었다. 민서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에 감사하기도 했다. 검사 후에 “제가 눈 뜨는 걸 어떻게 아세요?”라고 묻자 선생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뇌파에도 잡히고, 카메라도 있어요.”


젤을 떼고 나니 머리는 엉망. 샤워를 하고 젖은 병원복을 갈아입었다. 수액을 꽂은 채 병원복 안쪽으로 줄을 넣고 옷을 갈아입는 내 모습이, 혼자서도 제법 능숙했다. 아이들 입원 경험 덕에 배우게 된 스킬이다. 역시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떠오르는 오래된 기억


뇌파 검사를 마치고 오니 기분이 묘했다. 혹시 나도 뇌전증일까?

20대에 실신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는 흔한 기립성 저혈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30대에 쓰러졌던 기억이 오늘 따라 선명하게 떠오른다. 남편과 얘기하다가 아무 전조 없이 뒤로 넘어지고, 잠시 후 깼던 그 날.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어서 과로였겠거니 넘겼지만, 그 시절 나는 잠 부족에, 아이 둘 돌보기에, 부업까지 하며 몸과 마음이 늘 한계였다. 쓰러진 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 일이 오늘따라 유난히 생생하다.



검사와 기다림 사이에서


안과 진료는 내일로 밀렸다. 퇴원도 하루 미뤄졌다는 의미. 마음을 조금 비우기로 했다.

오전 강의를 듣고 책을 읽었다. 지인들 몇이 퇴원했냐고 연락이 왔다. “아직…”이라고 답하면서도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모두가 “그간 너무 힘들었으니 푹 쉬라”고 말해줬다.


생각해 보니 2주 전부터 너무 지치고 피곤했다. 저녁 5~6시만 되면 에너지가 방전된 것처럼 누워 있어야 했다. 나는 원래 누워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도. 며칠 동안은 속이 매스꺼워서 저녁을 거의 먹지 못했고, 빈속에 활명수로 버티기도 했다. 갑상선 검사를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 극심한 두통과 안구통이 찾아왔고, 결국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다.


혈당 검사 때문에 조심했지만 기분 전환을 위해 점심엔 폴바셋에서 달달한 돌체라떼를 사 마셨다. 퇴원이 미뤄진 만큼 일정 조정 연락도 하고.


오후 회진에서 아이들 병력과 내 과거 전력을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기립성 저혈압 검사를 해보자 하셨다. 전에 검사했는데 이상없었어요. 라고 하니 그러냐며. 시신경 검사를 의뢰하셨다. “뭐 이렇게 검사가 많나, 과잉진료 아닌가…” 싶다가도, 여기까지 온 김에 원인을 확실히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양쪽 팔의 주사바늘 자국과 멍이 아프게 증명하고 있었다.


시신경 검사는 머리 뒤에 전극을 붙이고 한쪽 눈을 가린 채, 체스판 화면 가운데 빨간 점을 응시하는 검사였다. 왼쪽은 괜찮았지만 오른쪽은 동그란 점이 타원형으로 보이고 가운데에 갈색 막이 씌워진 듯했다. 역시 문제가 있다. 이제는 피검사 결과와 안과 진료를 기다려야 한다.



아이들, 그리고 남편


아이들 하교 후 영상 통화를 했다.

그새 민서는 핸드폰 액정을 또 깨뜨리고, 다운 점퍼도 찢어놓았다. 액정도, 옷 수선도 몇 번째인지 셀 수 없다. 남편은 직접 그 장면을 보고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한숨이 깊었다. 민서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요즘 고민이 많다. 이런 고민이 생길 때면 나는 기도하고, 읽고, 공부한다. 답이 내 안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남편이 안쓰럽고 보고 싶어 오늘 밤에 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헤드셋 충전기, 속옷, 책, 화장품, 발톱깎이… 필요한 게 많았다.

남편을 기다리며 강의를 듣다가, 밤 11시쯤 남편이 병실로 들어왔다. 반갑고 애틋했다. 평소엔 스마트하지만 나에게만큼은 참 귀여운 사람.


자판기 음료 하나씩 사서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 시간이 훌쩍 지나 12시 전에 서둘러 돌려보냈다.

2025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연말 일정들, 2월 이사, 해야 할 일들은 많은데 정작 내 몸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건강.

정말 건강이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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