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배운 삶의 안전장치
2025년 11월 25일 화요일
새벽 묵상과 하루의 시작
새벽에 눈을 떠 성경을 읽고, 아침 식사 후 커피를 마셨다. 오전 회진 때 의사 선생님께서 내 자리를 보시더니 “공부 좀 그만하라”고 하셨다. 책 두 권과 노트, 노트북 정도였는데, 나에게는 작은 일상이자 정신적 위안이었다.
한동안 손을 놓았던 브런치 글도, 날 것 그대로지만 다시 쓰게 된 것이 보람 있었다. 11월 초 자격증을 딴 후 평생 자격증으로 만들기 위해 들어야 하는 보수교육 강의를, 입원한 김에 누워서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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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와 사실의 의미
이번 목요일 독서모임에서는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를 나누기로 했다. 이미 지난 주 다 읽었지만, 좋은 책이라 인덱스를 붙인 페이지 중심으로 다시 보고 있다. 수요일 퇴원하면 모임에 참석할 수 있지만, 하루가 늦어지면 못 갈 수도 있다. 그래도 희망을 갖고 발제문을 올려 놓았다.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사실은 ‘부분적이며, 점진적으로 검증되며 언제든 수정 가능한 형태’라는 점이다. 개인 경험은 편향될 수 있고, 언론은 극단적 사건을 선호하며, 전문가조차 자신이 아는 분야의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
언론의 자극적 뉴스, 주변의 단편적 주장, 나의 경험과 가치관이 합쳐져 형성된 세계관을 의심 없이 오래 유지하게 되는 인간의 한계를 다시 깨닫는다. 내가 세계를 게으르게 이해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은 극단만 보여주어 세상이 무너지는 듯 보이지만, 실제 데이터 패턴은 대부분 천천히 개선되는 중이다. 사실을 아는 순간, 공포 대신 현실적인 희망이 들어온다.
사실을 아는 것은 안전장치다. 지금보다 덜 흔들리고 덜 불안한 삶을 위한 것이다. 불확실한 정보 속에서 불안해하는 내 마음과, 병원에서 느낀 불안이 닮아 있었다. 병원에서 이런 저런 의심되는 검사들을 하며 위험 요소를 배제해 가며 필요한 최선의 조치를 해 나갔던 과정은 뭔가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불확실한 세계를 안정적으로 건너가는 삶의 과정 같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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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검사와 작은 안도
점심 후 안과 검사를 받았다. 시력, 시야, 망막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했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검사상 문제는 없고, 오른쪽 시력만 떨어졌을 뿐”이라고 하셨다. 심각한 신경 손상이나 염증 흔적도 없다고. 당장은 큰 문제 없다는 말에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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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문안과 마음의 따뜻함
오후에는 지인과 교회 권사님의 안부 연락을 받았다. 아직 병원에 있다고 하니 놀라셨다. 저녁에 권사님이 교회 목사님 두 분을 모시고 병문안을 오셨다. 초췌하고 부은 모습이 민망했지만, 마음은 따뜻해졌다. 빵과 차를 나누며 목사님들은 솔직하게 자신들의 연약함과 하나님이 다시 일으키시는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다.
병실에 올라와 가만히 생각했다. 병실은 그런 곳인 듯 하다. 나의 유한함과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생각하게 하는 곳.
가장 완전하신 분의 계획을 믿고 내 인생의 백지 수표를 내어드리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어느 정도 안전하고 잃을 것이 없는 계획을 내밀며 결제해 달라는 태도를 왜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병실에 올라와 식은 밥을 천천이 먹었다. 맛있었다. 외래가 늦어지신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저녁에 회진을 오셨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으로 결론이 맺어지는 것 같다. 사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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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듣는 한국 문학 강의
홀가분한 마음으로 씻고 보수교육 강의를 이어 들었다. 1920년대부터 80년까지의 한국문학에 대한 강의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감명깊게 읽은 단편 소설들에 대한 강의여서 재미있게 들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빈처. 김유정의 동백꽃, 봄봄. 이상의 날개. 이광수의 삼대. 하근찬의 수난이대. 이범선의 오발탄 등등... 우리 역사와 맞물려 있는 작품들.
그 글들을 읽었을 때의 충격 같은 것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 때는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세월이 흘러 더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인생이란 참 처절한 것이구나. 개인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투쟁 같은 것들이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투쟁은 어떠한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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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인생은 개인의 힘과 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그런데 아래 문장이 조금은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치명적인 에볼라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은 영웅적 지도자도, 국경 없는 의사회나 유니세프 같은 영웅적 조직도 아니었다. 공무원과 지역 보건 의료 종사자들이 나서서 묵묵히 공중 보건 캠페인을 벌여 오랫동안 내려오던 장례 관습을 단 며칠 만에 바꿔놓고 죽어가는 환자를 목숨 걸고 치료하고,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 격리하는 성가시고 위험하고 복잡한 작업을 해냈다. 인내심을 갖고 사회를 움직이는 용감한 사람들, 좀처럼 언급되지 않지만 이 세계의 진정한 구세주들이다. 『팩트풀니스』 , 322P
‘인내심을 갖고 사회를 움직이는 용감한 사람들’이라는 구절이 계속 마음속에 남았다. 불안과 투쟁으로 가득한 우리의 삶 속에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세상을 조금씩 더 안전하고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