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수막염 입원기 (6)

by 서담

2025년 11월 26일 수요일


아침 식사를 하는데, 정말 오랜만에 밥 냄새가 너무 좋았다. 컨디션이 많이 나아졌다는 신호일 테지. 며칠 만에 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식사 후부터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원래도 위염이 조금 있었고, 먹어온 약들이 소화기에 영향을 주었을 테고, 며칠 동안 고용량 스테로이드제를 맞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전 회진에서 오늘 퇴원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와!!!! 이렇게 기쁠 수가. 수액으로 맞던 약도, 먹는 약도 모두 줄이기로 했다. 남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퇴원을 앞두고 짐을 정리했다. 여기까지 썼을 때까지만 해도 이 글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이 될 줄 알았다. (시리즈 제목은 왔다 갔다 했지만, 뇌수막염 입원기로 통일시키려다가 그냥 글을 적던 그때의 날 것 그대로 두기로 했다.)


집에 돌아가면 연말까지는 무리하지 않고 나를 잘 돌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먹은 대로 잘 못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정말 무리하지 말자, 무리하지 말자. 주문처럼 되뇌어본다. 나는 86년생이다. 마흔이 되면 여기저기 아프다고들 하던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공부하고 일하고 아이 키우느라 돌보지 못했던 나 자신을 이제는 조금 돌아보라는 사인 같았다.


그래. 나는 유한한 존재다.


…하는데, 12월부터 시작할 계획이었던 영어 스터디 교재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다음 주에 강의 및 보강 준비도 해야 한다. 수료식도 두 개나 있다. 아이들 공부며, 집 이사 준비까지. 그래도 오늘만큼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꽉 안아주고 볼을 부비고 뽀뽀하고 손 꼭 잡고 잘 생각이었다. 고생한 남편도 꼭 안아주고. 그리고 우리 집 침대에서 푹 자야지. 이런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그런데.


점점 속쓰림이 심해졌다.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주사제를 투여해 주셨다. 오전 회진에서 스테로이드제를 이제 끊자고 했는데, 그 여파인지 머리가 무거워지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메스꺼움도 밀려왔다. 침대에 기대어 힘없이 쳐져 있었다. 읽던 책도 덮고, 쓰던 글도 접고 누웠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입원했던 날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고용량 스테로이드제가 주삿바늘을 통해 몸에 들어오던 때와는 컨디션이 완전히 달라졌다. 눈도 침침해지고, 머리·목·어깨가 짓눌려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몸은 가라앉고, 정신은 물살에 휩쓸리듯 흔들렸다.


그래서.


퇴원이 하루 밀렸다. 메스꺼움 때문에 먹는 약이 추가되었고, 컨디션을 조금 더 보고 퇴원하자는 결론이 났다. 이미 싸두었던 짐을 다시 풀었다. 퇴원하는 줄 알고 왔던 남편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이고 돌아가야 했다.


내일 독서 모임에 가지 못한다는 연락을 드렸고, 몇몇 안부 연락에도 아직 병실에 있다고 답했다. 보수교육 강의를 틀어두고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래, 하루 밀린 김에 이 강의라도 다 듣고 나가자며 긍정 회로를 돌렸다. 속이 쓰려서 커피는 마시지 않기로 했다. 얼른 컨디션을 회복해서 집에 가야 한다.


저녁 회진에서 의사 선생님이 여러 가지를 확인하시고, 내일은 퇴원이 가능할 거라고 하셨다. 그때 남편이 아이들 사진을 보내왔다. 우리가 자주 가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모습이었다. 사랑스럽고 그리운 아이들… 엄마 없는 사이 더 부쩍 큰 것 같았다. 내가 집에 없는 동안 아이들 공부와 학원 스케줄, 챙겨야 하는 여러 가지를 남편에게 설명하다 보니, 평소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신경 쓰고 있었는지 새삼 느껴졌다. 평소에는 잘 몰랐지만, 막상 누군가에게 넘기려니 그 ‘내 몫’이 꽤 컸다.


가정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도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수고들이 있다. 그걸 알아보고 감사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메스꺼워서 도저히 저녁밥을 먹을 수 없었다. 내일 아침에 먹기로 하고 식판을 창가에 올려두고 샤워하러 갔다. 샤워를 마치고 수액을 다시 연결하고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왼쪽 팔이 뻐근했다. 보니 수액 바늘이 꽂힌 부분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바로 바늘을 제거하고 붕대를 감아주셨다. 많이 부었다며 얼음팩도 가져다주셨다. 내일 퇴원인데 다른 팔에 다시 라인을 잡아야 했다. 입원 중에 신기한 경험들을 많이 한다.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지만, 우리 몸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음팩을 팔에 대고 잠을 청해본다. 자는 동안에도 간호사 선생님들이 중간중간 다녀가신다.


태연하고 능숙하게 바늘을 꽂고 피를 뽑고, 혈압과 체온, 혈당을 체크하고, 약을 가져다 주며 친절하게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들을 보며 속으로 매일 감탄한다. 프로페셔널한 모습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다.


4인실에 3명이 입원해 있었는데, 나는 제일 먼저 나갈 줄 알았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남았다. 그 사이 새로 두 분이 더 들어오셨다. 병실이 조금 왁자지껄해졌다. 오늘은 컨디션도 안 좋고, 보고 싶은 유튜브도 없고, 눈이 침침해서 책도 읽고 싶지 않았다. 어지럽기도 해서 그냥 누워서 주구장창 강의만 들었다. 한국사와 세계사에 대한 강의였다. 나는 역사를 전공했다. 그래서 쉽고 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무기력한 상태에서도 뭔가를 귀에 담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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