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2025년 11월 27일 목요일
새벽이 눈이 떠졌다. 팔에 맨 붕대를 풀러 주셨고 간단한 체크를 하고 몸무게도 체크했다. 병동을 한 바퀴 돌았다. 강의를 이어서 듣는데 배가 고파왔다. 어제 저녁밥 못 먹은 것을 데워서 먹었다. 그리고 커피도 사왔다. 수액을 제거해도 된다고 하셔서 주사 바늘을 뺐다. 그리고 피검사를 했다. 이번엔 2통이었다. 이제 집에 돌아갈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오후 회진만 있는 날이라고 하셔서 오후에 오실 줄 알면서도 아침부터 목이 빠지게 선생님을 기다렸다.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쳐져 보이면 안된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퇴원하리라.
회진 때 뵌 선생님은 친절하게 이것저것 체크 하셨고 2주 뒤에 외래로 다시 뵙기로 했다. 아프면 바로 와야 한다고 하셨다. 잘 회복돼서 다행이라며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고 누워서 기다렸다. 온 몸이 뻐근하고 어지러웠다.
입원 기간 내내 메스꺼워서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아빠가 암 수술 후 입맛이 없으실 때 먹방을 그토록 열심히 보셨던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퇴원하면 부대찌개에 스팸을 넣어 먹고 싶다고, 그건 그래도 넘어갈 것 같다고 남편과 얘기했다. 어디에서 시켜 먹을지까지 다 상의했는데, 퇴원은 계속 미뤄졌다.
저녁 시간이 다가왔고, 아이들이 집에서 기다릴 생각을 하니 마음이 쓰였다. 나는 혼자 퇴원할 테니 먼저 가라고 남편을 돌려보냈다. 나를 퇴원시키러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것이 벌써 세 번째였다.
‘그래 뭐… 부대찌개는 자극적이니 속에 부담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병원 저녁 식사를 열었는데—
거기에 부대찌개가 있었다.
수많은 국물 메뉴 중에, 하필 내가 ‘먹고 싶다’고 속으로만 되뇌던 그 음식. 이걸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환자식답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따뜻하고 맛있는 부대찌개를 먹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먹고 싶은 거 먹여서 보내고 싶다’는 아버지의 마음.
‘내가 얼마나 섬세하게 너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겠느냐’는 주님의 속삭임. 병실에서조차 함께 계셨던 주님.
그렇게 병원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가수납을 마친 뒤, 택시를 타고 퇴원했다.
그런데 택시 안에서 컨디션이 갑자기 확 나빠졌다. 비행기 착륙할 때처럼 양쪽 귀가 막히고 터질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약해졌다. 이렇게 오래 입원해 쉬었으니 퇴원할 때쯤엔 멀쩡해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현실.
‘어떡하지… 건강하게 오래 아이들 곁에 있어주지 못하면 어쩌지…’ 불안과 우울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오늘 밤이라도 나를 데려가실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몸이 안 좋았다.
겨우 집에 도착했는데, 서준이가 울고 있었다. 저녁 메뉴 선정 문제로 아빠에게 혼나고 있었다. 민서는 푸라닭, 서준이는 BBQ를 외치다가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서준이가 지고, 그걸 인정하지 않고 떼를 쓰는 상황이었다.
서럽게 울던 아이가 내게 달려와 안겼다. 그 울음도 안쓰러웠지만, 아이에게서 땀 냄새와 씻지 못한 냄새가 나서 더 마음이 아팠다. 8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밥도 못 먹었다니. 엄마 없는 일주일을 겨우 버텨낸 애들. 간식도 못 먹고 배고플 텐데. 억장이 무너졌다.
죽을 것처럼 힘든 몸을 억지로 일으켜 말했다.
“알았으니까… 김에 싸서라도 밥부터 먹여줘.
치킨 오기 전에 허기를 좀 달래줘.”
그런데 남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아이를 혼냈다.
양보를 모르고 버릇이 없다고,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밥부터 먹여줘.
며칠 동안 엄마 없이 보냈잖아… 불쌍한 애들인데.
혼내지 말고 밥이라도 먹이고 얘기해.
지금은 소용 없어. 나중에 얘기해.”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나가 소리를 질렀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내 새끼가 중요하지!!!
밥부터 먹이라고!!! 밥부터 먹이란 말이야!!!!!”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감정의 끈이 완전히 끊어진 것 같았다. 옆에 있던 물건도, 손에 잡히는 옷가지도 바닥에 내던졌다.
“내가 없으면… 내가 없으면 내 새끼들 이렇게 굶기고 울리고 아프게 할 거야…!”
온몸을 쥐어짜듯 남편을 향해 울부짖었다. 억눌렸던 불안과, 퇴원길에 느꼈던 공포와, 아이들을 향한 미안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나는 남편을 원망하며 엉엉 울었다.
남편은 마치 정신이 탈출해버린 사람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한 채.
———
남편에게는 사과했다.
내가 이러저러한 마음에 괴로웠고 그래서 누구보다 고생했을 남편에게 그렇게 화를 내 버렸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고상한 척 해도 소용없다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은 불안하고 두렵다는 얘기일 뿐이다.
아직 몸은 아프고 마음도 불안하지만, 그래서 내가 당연하게 해내던 일들을 전혀 할 수 없고, 언제쯤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은 몸을 일으켜 새 밥을 짓고 아이들 저녁밥을 차려주고 설거지 한 것이 최대의 성과이지만.
이 기록이 언젠가 나에게,
‘너 그때 그렇게 버텼어’ 하고 말해주는 목격자가 되어주기를.
정말 부끄러운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