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를 되돌아오게 하는 마법의 주문
전공도 그렇고, 직업도 그렇다.
도둑질을 못한 탓에, 미디어 관련 책과 영화를 즐겨 본다.
덕분에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원제 Morning Glory)>이 알고리즘에 걸렸다. 보통 때라면 지나쳤을 영화였지만 어쩐지 전체 보기 클릭을 누르고야 말았다.
뉴욕 방송국의 신참 PD 베키와 한때 전설적인 뉴스 앵커였던 마이크.
아무리 애를 써도 시청률이 바닥인 모닝쇼에, 마이크는 부득부득 "fluffy" 따위의 단어는 입에 올리지도 않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솜털처럼 보송보송한'이라는 뜻의 단어 때문이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는 곧 깨달았다 이 영화가 내 이야기라는 것을.
영화 후반부에서 마이크는 스스로 "fluffy"가 되며 관계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스스로 증명한다.
그 장면을 다시 보며, 새삼 실감했다. 나도 그녀와 함께하며 조금씩 변해왔다는 사실을.
지방 대학 신방과 출신의 모닝쇼 <데이브레이크> PD 베키(레이철 맥애덤스)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 돌파구는 한때 퓰리처상까지 받은 앵커였지만 지금은 계약기간이 남아 방송사 돈만 축내고 있는 마이크(해리슨 포드). 하지만 베키를 좋아하는 동료 PD 애덤은 "마이크는 세상에서 3번째로 사악한 사람"이라며 '심각한 뉴스'가 아닌 프로그램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한다.
마이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지만 베키는 계약 조항을 이용해 그를 억지로 끌어들이고, 화가 난 마이크는 첫 방송 전날밤 연락을 끊고 사라진다. 단골 바에 있던 마이크를 찾아낸 베키는 아침 방송이 시작될 때까지 같이 있겠다며 마이크의 집까지 따라간 뒤 소파에서 잠이 든다.
새벽에 그녀를 깨운 건 마이크. 방송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침은 먹어야 한다며 계란을 꺼내 프리타타(Fritata, 이탈리아식 오믈렛)를 만든다. 어쩔 수 없이 진행석에 앉은 마이크는 공동 MC 콜린(다이앤 키튼)과 사사건건 부딪히고 자신이 해야할 멘트도 무시하며 방송을 엉망으로 만든다.
시청률은 더 추락하고 책임 CP는 6주 후 프로그램이 폐지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전한다. 하필 그 날 마이크는 원고에 있는 대사 가운데 'fluffy'라는 단어 때문에 절대 멘트를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Fluffy'는 가볍고 천박하다는 의미의 속어이기도 하다.
결국 베키는 폭발하고 "어려서부터 당신을 존경했고, 아빠와 함께 매일 당신의 뉴스를 봤는데 지금 보니 세상에서 제일 사악한 사람"이라며 분노의 눈물을 흘린다. 마이크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방송에 임하는 태도는 그리 변하지 않는다.
어느날 마이크는 갑자기 지역 양배추 축제 취재를 가겠다며 베키와 카메라맨을 부르고, 베키는 마이크의 바뀐 모습에 당황한다. 하지만 마이크가 향한 곳은 주지사 관저. 마이크는 현장에서 주지사의 비리와 성매매 의혹을 보도하고 데이브레이크 카메라는 출동한 경찰이 주지사를 체포하는 장면을 생중계한다.
기대하지 않던 마이크의 '심각한 뉴스' 덕에 시청률이 오르고, 프로그램은 살아남는다. 게다가 베키는 꿈에 그리던 NBC 투데이쇼의 스카웃 제의를 받는다.
베키는 데이브레이크 식구들에 대한 정 떄문에 망설이지만 마이크는 하기 싫은 일을 부탁하는 베키에게 "투데이쇼에나 가라"고 비아냥 거린다. 화가 난 베키는 투데이쇼 면접을 가느라 방송에 빠지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안 마이크는 갑자기 도마와 칼, 계란을 가져오라고 소리친다.
마이크는 생방송으로 프리타타를 만들며 "가끔 집에서 만드는데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만 해준다"면서 "프라이팬이 뜨거워야 계란이 'fluffy' 해진다"고 말한다. 면접 도중 TV를 통해 방송을 보던 베키는 눈물을 흘리며 뛰쳐 나와 데이브레이크로 달려간다. 베키가 스튜디오로 돌아오자 마이크는 카메라를 향해 "다음 주에는 베니에(beignet, 프랑스식 도넛)를 만들겠다"며 미소짓는다.
55개월 전까지만 해도 실란트로(고수)를 전혀 먹지 못했다. 아니 혐오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초대받은 저녁 자리에서 실란트로가 들어있던 에그롤을 남몰래 뱉어내고 물을 마셔야 했을 정도니까.
지금은 실란트로가 들어가지 않은 소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실란트로에 맛을 들이니 이보다 더 상큼한 채소는 세상에 없을 듯 하다.
우리가 처음 서로의 삶 속으로 걸어들어간 그때, 흰 원피스에 세상에서 가장 환하고 선한 미소를 짓던 그녀와 서로 너무 쉽게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이후 우리는 세상 누구보다 어렵고, 치열하게 사랑을 지켜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다툼도 더 치열해졌다. 대부분은 내가 시작한 일이다. 지난해 연말 나는 또 한 번 그녀를 울렸고 그때 한 짓은 최악이었다.
그러고는 혼자 격리된 시간, 무수히 많은 밤을 새며 생각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생각이 깊어지면 질수록 내 마음은 언제나 다시 그녀에게 돌아갔다. 함께 먹었던 음식, 함께 찾았던 식당, 서로 고개를 기댔던 비행기 좌석, 함께 봤던 영화, 여행지에서 나눴던 추억 모두 트리거가 됐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는 "왜 돌아가야 하나"로 바뀌었고 생각할수록 돌아가야할 이유들만이 가슴을 후벼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마이크가 "fluffy"라는 단어를 버텨내다 끝내 그것을 받아들이고 삶이 변했듯이, 나도 그녀와의 시간 속에서 점차 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실란트로를 싫어하던 내가 어느새 그것 없이는 음식을 못 먹게 된 것처럼, 나는 그녀와 함께하면서 내가 싫어했던 것, 고집스럽게 지키던 것들을 놓을 줄 알게 됐다.
마이크가 마지막 순간에 프리타타를 만들며 말한다.
"프라이팬이 뜨거워야 계란이 fluffy 해진다."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마이크는 프리타타를 만들며 "fluffy"를 강조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깨달았다.
사랑도 프리타타와 같다.
뜨거운 팬 위에서 모든 재료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뜨거운 순간들을 견디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에게 부드러워질 수 없었다.
끝까지 견디면 서로에게 사랑을 넘어 존경을 바칠 수 있게 된다. "리스펙!"
서로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함께 불 위에서 섞이며 익어가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성탄절 다음날 새벽, 나는 그녀와 함께 로드트립을 떠났다.
어쩌며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프리타타를 만들기 위해.
다음에 계속
* 동료 PD 애덤이 말한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사람 순위는 1위부터 김정일, 앤젤라 랜스버리, 마이크다. <제시카의 추리극장(Murder, She Wrote)>으로 유명한 대배우 앤젤라 랜스버리는 인품은 훌륭했지만 현장에서의 완벽주의로 방송가에서 악명이 자자했다고 한다.
** 이 영화의 감독은 <노팅힐>의 로저 미첼, 제작은 할리우드 최고의 프로듀서 가운데 한명인 J.J. 에이브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