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오프닝처럼

차마 언표言表할 수 없는..

by 봄작

도시 프라하를 겨울이 한창인 때 갔으니, 제대로였을 겁니다. 밤기차를 타고 입성했는데 내딛는 순간부터 숙소를 찾아가고 먹을거리를 구하러 다니는 내내 눈을 피할 수 없었죠. "하늘에서 내리는 가장 신성한 언어"라고 했던 그 학자도 프라하 같은 밤이나 새벽을 겪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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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별- 12월 32일



비도 있고 바람이나 별빛도 있는 것을 오직 겨울 눈한테만 신격화된 언어라고 했던 건 학자만의 시선일까요. 온갖 시인과 뮤지션과 화가와 어린이들의 가장 많은 찬사와 은유를 받았을 것이 눈일 겁니다. 겨울 눈.

서울 한복판의 신문사에서 기자를 했던 시인 기형도가 어느 날 쓴 <도시의 눈>은 노래처럼 인트로가 세잖아요.

"도시에 전쟁처럼 눈이 내린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가로등 아래 모여서 눈을 털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서 내 나이를 털어야 할까? 지나간 봄 화창한 기억의 꽃밭 가득 아직도 무꽃이 흔들리고 있을까?...(후략)


청년 장석남에게 시인의 길을 열었던 <맨발로 걷기>는 눈 내리는 아무 때나 노래처럼(그의 많은 시가 그러하듯) 읊조려집니다.


생각난 듯이 눈이 내렸다


눈은 점점 길바닥 위에 몸을 포개어

제 고요를 쌓고 그리고 가끔

바람에 몰리기도 하면서

무언가 한 가지씩만 덮고 있었다


나는 나의 뒤에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걸었다

(후략)


딱 여기까지만 읊어지다 뭔가 울컥해지면 더 진행되기 전에 어디론가 들어가 커튼을 닫거나 TV를 켜버리거나 하지 않았을까요. 길이 막히거나 약속된 일이 늦어지거나 하는 일상에 삼투하면서 폭설에 갇히고픈 내 마음을 내쳤던 것 같습니다.



오래전 고려 시절, 멀리 떠난 신부님의 성당을 찾아가 문밖에서 쳐 울다 돌아 나오는 친구가 파주 벌판 눈밭으로 걸어가 버린 그 겨울

걱정돼서 수업 빼먹고 쫓아갔던 우리들은 친구를 말리느라 몸이 눈 투성이가 된 것도 몰랐습니다. 사랑도 외로움도 슬픔도 아닌데 그냥 울고만 싶어 울었던 친구가 우린 왜 걱정돼서 그렇게 옷자락을 붙들고 말렸을까요. 그로부터 한참이 더 지나서 시인 조원규의 눈밭을 읽고 난 아주 오래 웃었습니다. 그때 우린 모두 시인 같은 소녀들이었구나... 싶어서요.


희고 넓은 눈밭,

대체 어디쯤이었을까

사라지는 누군가가

따뜻한 눈물 흘리던 그곳

(후략)


삶엔 차마 언표 할 수 없는 대화가 있고 다행히 그것을 시인이나 버스커들이 대신해 줘 고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내 생에 없는 시간과 오늘은 존재하지 못할 25시나 지금은 세상을 등진 누군가가 체감되고 육화 돼서 물이 터져 나오는 게 아닐지요. 두 눈도 모자라 온몸에서 첨벙거리는 눈물로.. B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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