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오프닝처럼

이스탄불->바그다드, 걸어 걸어서... 뭐 어렵다고

by 봄작

제목을 떠올리기만 해도 입안에서 비말처럼 터져 나오는 환호의 영화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 2003)에서 나의 0순위는 제이미와 오렐리아입니다.

실연과 상심을 안고 프랑스에서 온 제이미가 낯선 땅 포르투갈에서 너무도 포르투갈다운 여인 오렐리아와 밀당 하나 없는 일방적 시선을 보이다, 어느 날 달려와서 프러포즈를 하죠.

때마침 눈치를 챈 마을 사람들도 줄줄이 따라와 2층 난간에서 청혼을 받는 오렐리아를 같이 바라봅니다. 그때 제이미 <콜린퍼스>의 참 콜린퍼스 같은 마음을 전달받고 오렐리아 <루시아 모니즈 >가 했던 말,

"그래요! 그게 뭐 대수라고~~"


signal ↗ ↘


M: 조용필- 바람의 노래


그때 오렐리아의 숨길 수 없는 수줍음과 넘쳐나는 터프함과 차마 감춰지지 않는 환희의 표정은 역작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사랑 영화 중에 가장 어였뻤고 가장 따뜻했다고 믿고 있죠.

인생대계일 수도 있는 프러퍼즈를 받고 자기 마음 100%를 표현할 수 있는 연인이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은 표정관리를 못하고 포커페이스도 잊은 채 응수하지만 오렐리아는 꼭 백만 년을 기다려온 여인처럼 말해요..

"그럽시다, 그게 뭐 어려운가요?"


...

"생각이 많으면 바그다드에 못 간다"는 티르키에 속담이 있습니다.

티르키에 이전 시절에 여행했기 때문에 터키가 익숙한 내게 이스탄불은 꿈의 도시였습니다. 동양과 서양이 교차한다는 문장 하나로 초등학생의 가슴을 뛰게 했던 나라.

장난감 같기도 한 기차 모형이 있는 이스탄불 중앙역에서 카페 쪽으로 난 문으로 나가면 그리스까지 한눈에 보일 것 같은 바다.

그 바다를 끼고 날 생선을 구워 먹거나 두건을 휘날리며 시장을 가는 여인이거나 비린내도 잊은 채 뛰노는 아이 같고 싶었습니다.

오렐리아와 제이미는 그런 곳에서 사랑을 한 커플 같아요. 생각은 깊이 하는 것이지 많이 오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 한 번 다짐한 결정에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체득한 사람들 말입니다

조용필의 라이브를 보고 듣고 있으면 늘 그랬습니다. 어디선가 소나기처럼 몸을 후려치고 가는 바람의 노래 바람 속의 깨달음.

물론 노래가 끝나고 하룻밤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끔찍하게 복귀되지만 그 순간만큼은 바람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던...


난 지금도 앞으로도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단박에 쉬운 결정을 못하고 살아가겠지만 꿈은 갖고 있습니다. 포르투갈 여인의 근성처럼 깊이 생각한 것을 포텐처럼 날리는 순간을 살아내 보겠다고...


"시詩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죠

세상의 모든 시는 사랑을 말하고 토로하고 터트리는 것이라고 나도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시인은 사랑의 고백록이겠네요.

짧아서 간결한 게 아니라 응축해서 담백한 시인들 중에 황인찬은 으뜸입니다.

내 어린 날 앞마당에 아빠가 심어주셨던 무화과나무처럼 속으로만 꽃을 피우고 속으로만 사랑하는 엉큼한 식물성 마음이라니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 <무화과 숲 2012>

...


위대하나 대수롭지 않은 극과 극의 고백들에게 B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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