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오프닝처럼

누군가에게 걸어가는 일은 인류의 클래식

by 봄작

목표나 목적은 늘 꼭짓점이나 정상을 향해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냥 마음에만 담아두어도 소원이 되는 것을, 굳이 정복이나 성공을 다짐해 두어야 할까요?

스무 살 청년이 아닐 바에 그런 건 참, 소비적이고 소모적인 마음이 상처일 것이라는 생각..

signal ↗↘


M:이소라- 바람이 분다.



장 뤽 고다르>가 우주과학 영화를 했다는 게 의아스럽긴 하지만 고다르여서 그럴 법도 싶었던 1964년작 <알파빌 Alphaville> 엔 그녀의 미모만큼이나 매혹적인 <안나 카리나>의 미혹적인 대화가 나옵니다..

"불 있어요?

"그럼요 이걸 주려고 9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걸요..."

↗↘


<레미>와 <나타샤>의 불멸 같은 대사를 떠올릴 수 있다면, 내 삶은 마냥 늘 치렁거리고 마냥 퇴보해도 아프지 않겠다 생각했었습니다.


어느 인류학자가, 정글에 들어가 실험이자 시험 같은 걸 치렀다죠.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장 먼저 돌아오는 1등에게 온갖 맛있는 것을 다 주겠다고...

승자독식을 감히 터득해 보겠다는 것이었는지...

그날 밀림의 아이들은 모두 맛있는 빵을 나눠먹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전부 손을 잡고 같이 뛰었기 때문이죠. 그런 숲과 나무와 마을이 아직 우리 곁에 있다고 믿고픈 것이 내 스타일의 <정글의 법칙>입니다,


시인 강은교의 <오래된 이야기>처럼..


/무엇인가 창문을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


세월아 네월아 하고 걸어가는 일, 지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티아고 길에 발을 들이는 일. 그 마지막 지점 성당 앞에서 점퍼를 벗어젖히며 <슈퍼 맨> 티셔츠를 내보이던 할아버지처럼

종국에 우린 누구나 (속도와 속력에 관계없이> 승자가 된다는 걸 믿고 싶습니다. 그때 내 옆엔 나란히 나란히 젓가락 같은 사람들이 있었으면 해요.

평생 알아온 사람이 아니라 그날 아침 같이 밥 먹고 의기투합해서 먼 길을 시작한 무모하고 무구한 사람들. Bomn

작가의 이전글라디오 오프닝처럼